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외친 사건이다.
[생글기자 코너] 적국의 심장에서 외친 2·8 독립선언
우리가 독립운동에 관해 얘기할 때 흔히들 3·1 운동이나 임시정부 수립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백범 김구 선생과 유관순 열사의 영향도 있을뿐더러 두 사건이 독립운동에서 가지는 상징적 의미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두 사건의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는 2·8 독립선언도 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에서 조선인 유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외친 사건이다. 그 이전에도 대동단결선언, 무고독립선언 등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선언이 있었다. 2·8 독립선언은 그간 중국 상하이나 만주 등지에서 제창된 위의 독립선언과 다르게 일제의 심장인 도쿄에서 제창된 독립선언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일본 경찰이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황에 위험을 감수하고 독립선언서를 제창한 것이다. 당시 지식인이었던 유학생들은 자신들의 이권을 포기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2·8 독립선언은 그 당시에 평범한 독립 선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보다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일제에 우리의 독립의지를 알리고 국권 침탈 이후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인 3·1운동의 계기를 만들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통합된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설립되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9년에 일어난 일이다.

우리는 먼 과거의 일인 2·8 독립선언에서 현재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건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이 이권을 포기하고 독립 전선에 뛰어든 희생정신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권에 해가 없는 선에서 선의를 베풀 수 있지만, 자신의 이권을 포기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를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다. 어쩌면 쉬워 보이는 신념 어린 말 한마디가 많은 사람을 움직일 수도 있고, 자신의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다.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자유와 평화도 앞선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런 희생이 바탕이 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쉽게 잊는 민족에게는 아픈 역사가 다시 되풀이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김시현 생글기자(거제고 2년) tlgusdk02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