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9)

글을 '우리말답게' 쓴다는 것은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쓴다는 뜻이다.
무거운 한자어는 글을 딱딱하고 권위적으로 읽히게 할 뿐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도모하다'보다 '꾀하다'가 더 감칠맛 나죠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도수체조’란 말에 익숙하다. 기상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나 연병장에서 도수체조로 몸을 풀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한자로는 ‘徒手’라고 적는다. 徒는 ‘무리 도’자 쓰임새가 활발하지만 ‘벌거벗다, 비어 있다’는 뜻도 있다. ‘도수’라고 할 때는 그 의미다. 순우리말로 하면 ‘맨손’이다. 적수공권(赤手空拳: 맨손과 맨주먹이라는 뜻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할 때의 ‘적수(赤手)’도 같은 뜻이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도모하다'보다 '꾀하다'가 더 감칠맛 나죠
무거운 한자어가 글을 어색하게 해

국립국어원에서는 ‘도수체조’를 ‘맨손체조’로 다듬었다. 훨씬 알아보기 쉽고 뜻도 잘 들어온다. 언론에서 쓰는 말 중에는 자주 쓰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글의 흐름상 어색하게 느껴지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①부산 수송동에 ‘위치한’ 트렉스타 본사 공장. ②미 상무부는 오는 19~20일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③반도체 쏠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④김 부총리와 이 총재가 ‘회동한’ 것은 석 달 만이다. ⑤남은 기간에 제도 연착륙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⑥인근 이면도로에 식당과 카페가 속속 ‘형성되고’ 있다.

모두 우리말을 비틀어 쓴, 어색한 표현이다. ①어디에 ‘있는’ 하면 될 것을 굳이 ‘위치한’이라 하고, ②무엇이 ‘열렸다’를 ‘개최됐다’ 식으로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③어떤 현상이 ‘심화됐다’는 표현도 어색하다. 현상은 그냥 ‘심해졌다’ 또는 ‘깊어졌다’고 하면 그만이다. ④⑤‘회동한’ ‘도모할’보다는 ‘만난’ ‘꾀할’이라 바꿔놓고 보면 글이 더 감칠맛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⑥한자어를 쓰니 ‘카페가 형성되다’란 무리한 표현이 나온다. ‘들어서다/생겨나다’ 등 온전한 우리말 표현을 찾아 쓸 필요가 있다.

이런 무거운 한자어가 외래말투와 어울리면 난감한 표현이 된다. 흔히 볼 수 있는 ‘A는 야당 의원들과의 회동을 가졌다’ 같은 게 그런 문구다. 짧은 문장이지만 글쓰기 관점에서는 세 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우선 ‘회동’은 ‘만남’이라고 하면 좋다. 거창하게 ‘회동’이란 말을 쓸 이유가 없다. 그럴 경우 ‘만남을 가졌다’인데 이 역시 자연스러운 우리 어법이 아니다. 그냥 ‘만났다’라고 하면 된다. ‘회동’에 신경쓰다보니 ‘~과의 회동을 가졌다’라는 무리한 표현이 나왔다. ‘~과 만났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고유어 살려 쓰는 게 ‘쉽게 쓰기’ 지름길

글을 ‘우리말답게’ 쓴다는 것은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쓴다는 뜻이다. 무거운 한자어는 글을 딱딱하고 권위적으로 읽히게 할 뿐이다. 일상적으로 잘 쓰는 말이 아니다 보니 표현도 어색해진다. 그런 사례는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이 널려 있다.

‘도전정신을 보유한(→갖춘) 것이 강점이다.’ ‘계약 즉시 입주가 가능하다(→입주할 수 있다)’ ‘~을 표명했다→~을 밝혔다’ ‘총력전에 돌입했다→총력전에 들어갔다’ ‘감리를 실시할 예정→감리를 할 예정’ ‘희망을 상실하고→희망을 잃고’ ‘결론에 도달한→결론에 이른’….

모두 화살표 뒤처럼 쓰는 게 읽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좋다. 고유어로 풀어 쓰면 좀 더 편하고 친근한 표현이 나온다는 게 핵심이다. 그것이 곧 글을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쓰는 지름길이다. ‘비용이 소요된다’고 하지 말고 ‘비용이 든다’라고 써보자. ‘출전권을 획득했다’ ‘공사를 완료했다’라고 해도 되지만 ‘따냈다’ ‘마쳤다/마무리했다’라고 하면 글이 더 감칠맛 나고 살갑지 않을까.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