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기득권 집단과 싸울 의지 없다면 '혁신성장' 말하지 말라엊그제 정부가 발표한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은 고용 문제를 혁신성장과 바로 연계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 만했다. 심각해지는 ‘일자리 대란’은 기업 중심의 혁신성장으로 푸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혁신성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강조해온 핵심 정책 중 하나다.
하지만 경제장관회의를 거쳐 발표된 내용을 보면 진정으로 혁신성장을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든다. 지금 유력한 혁신성장 비즈니스 중 정부가 실행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는 게 보이지 않는다. 승차공유(카풀)는 택시업계 눈치 보느라 빠졌고, 수요가 늘어나는 숙박공유업도 1년 전 발표에서 조금도 진전된 게 없다. 한국에서 ‘공유 경제’는 이 정도 논의로 끝날 것이라는 위기감이 든다. 원격의료도 핵심 서비스인 ‘의사 대 환자 간 진료’는 또 빠졌다.
이런 혁신 과제나 미래형 산업이 논의만 반복되며 겉도는 것은 기득권·이익 집단의 반발이 큰 요인이다. 이전부터 ‘규제완화’를 외치지 않은 정부가 없었지만 성과는 미미했던 현실적 이유이기도 하다. 운전자 모집까지 시작한 카카오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가 막힌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승차공유’ ‘차량공유’라는 말은 언급조차 않은 채 ‘신(新)교통서비스 활성화’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또 어물쩍 넘어가려는 자세로는 혁신성장과 더욱 멀어질 뿐이다.
혁신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정부는 물론 여당까지 기득권·이익 세력과 적극 싸워야 하고, 반대 논리도 극복해 내야 한다. 때로는 지지세력과도 얼굴을 붉히게 되고, 경쟁력 떨어지는 쪽의 딱한 사정도 봐야 하니 피하고도 싶을 것이다. 하지만 더 많은 이용자의 편익과 미래를 보며 나아가야 하는 게 혁신이다. 용기와 뚝심이 필요한 일이다.
선심 정책만 늘어놓은 채 정작 혁신과제는 빠진 것이 더불어민주당 반대 때문이었다는 게 더 걱정이다. 정부·여당 공히 대통령이 언급한 19세기 영국의 ‘붉은 깃발법’의 폐해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차라는 전통 산업에 발목 잡혀 당시의 혁신 산업이었던 자동차를 31년간 규제한 결과가 어떠했나. 돈 풀기에나 기대겠다면 그것도 비(非)혁신적이다. 혁신성장 발표가 ‘혁신성장 포기’ 선언으로 들려서야 되겠는가. <한국경제신문 10월26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각종 규제들 획기적으로 완화하고
미래형 비즈니스 과감히 수용해야
혁신성장으로 한국 경제발전 가능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일컫는 ‘J노믹스’를 이루는 세 축이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이다. 표현만 달랐을 뿐 혁신성장을 외치지 않은 역대 정부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 창조경제도 그런 차원이었다. 그때는 전국 지역별로 대기업의 주요 산업을 배치해 지역성장 전략으로 삼았다.
혁신성장에 대한 개념은 정부와 정부 밖, 정부 안에서도 부처별로 조금씩 다른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규제완화를 통해 질적으로 획기적 발전을 하고, 미래형 비즈니스를 과감히 받아들여 성장 기반으로 삼으며, 이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규제완화가 기본으로 깔리고, 정부보다 기업이 중심이 되며, 과거와 현재의 유형보다 미래를 지향하는 비즈니스나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서비스 쪽에서는 이미 사업화에 성공한 우버택시와 에어비앤비를 비롯해 공유오피스 등도 모델로 꼽힌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쪽에서 발전이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문제는 말로는 그렇게 외치면서 실행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우버택시를 모델로 삼는 카카오의 카풀서비스에 대해서는 택시업계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입법 지원을 못하고 있다. 에어비엔비형 사업구조인 도심 내 숙박공유업도 시장은 커져가지만 외국인에게만 이용이 허용된 규정을 깨지 못하고 있다. 기존 호텔 등 숙박업계 반대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에서 미래형 사업 모델의 하나인 ‘공유경제’는 진행이 더 어렵게 된 듯하다. 대통령이 나서 “한번 해보자”고 했던 원격의료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혁신성장 지원 방안에 원격진료도 일부 포함되기는 했다. 하지만 의사가 다른 의사나 간호사와 원격으로 협진(協診)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정도뿐이다. 원격의료 서비스가 연구돼 온 것은 의사와 환자 간의 진료에 쓰겠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는데, 정작 핵심은 빠져 버렸다.
정부가 언론에 이 대책을 설명할 때 모습은 더 실망이었다. 현실적으로 가장 뜨거운 혁신 비즈니스가 안 되는 것에 대한 거듭된 질의와 문제 지적에 “향후 논의하겠다” “현재 단계에서 더 나아가는 설명은 하기 어렵다”는 식의 모호한 대답만 반복됐다.
이번에도 지금 지원책은 포함돼 있었다. 자금만 지원한다고 혁신이 가능할까. 돈 풀기 방식은 구태의연하다. 담당 공무원들조차 ‘골치 아픈 일은 적당한 선에서 방향이나 잡아두고 구체적인 내용은 후임자가 하도록…’이라는 식은 아닌가. 이렇게 되면 혁신성장은 말로 끝날 수 있다.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