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평가 시험대에 올라선 정부의 외환시장 대응 역량
정부가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공개하라”는 IMF의 거듭된 권고와 미국 요구 등을 받아들인 결과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불필요한 ‘환율조작’ 논란이나 ‘환율주권론’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 더 이상 휘말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외환시장 투명성 강화 방안은 내년 3분기부터 정부가 운용하는 외국환평형기금과 한국은행의 외환거래에서 순거래내역(총매수에서 총매도를 뺀 것)을 3개월 이내에 공개하는 것이다. 다만 경과조치로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는 6개월분 반기 내역을 3개월 시차를 두고 공개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이런 정보를 아예 내놓지 않았던 점과, 이 정보를 월간으로는 물론 매일·매주 단위로 내놓는 국가도 많다는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소한의 정보 공개로 국제적 신뢰제고를 도모하게 된 셈이다.
이 정도 공개만으로도 환율이 급변동하는 국면에서는 정부의 시장대처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정부의 개입패턴이 한 번 읽히게 되면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처럼 수출에 기대는 개방형 교역국에서 외환시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충격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외환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며, 외환시장에 대처하는 정부의 진짜 역량은 정보 공개 이후에 드러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차제에 무리한 환율정책으로 단기 성과를 내겠다는 식의 후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도 수출 실적 등에서 환율만 주시할 게 아니라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 돈의 대외가치는 한국 경제의 총체적 실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드러난 국제수지 외에 올바른 경제정책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고용·노동시장 여부, 기업의 역량 등에 안보·사회 여건까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런 ‘펀더멘털’이 잘못 관리되고 비정상적 방향으로 갈 때 국민 지갑은 나라 밖에서 반쪽이 나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피눈물 나는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 군(軍)이 영토를 수호하듯, 금융당국은 원화 가치를 일정 범위에서 지키고 환율도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5월18일자>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의 외환시장도 외형적으로는 많이 커졌다. 1997년 ‘자유변동환율제’를 시행한 이래 은행 간 하루 외환거래 규모가 1998년 11억달러에서 2017년 228억5000만달러로 늘어났다. 터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국제 외환시장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보다 거래 규모가 크다. 한국 돈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본거래도 자유로운 통화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도 겪었지만 그 이후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39억달러까지 내려갔던 외환보유액은 지금 3984억달러(2018년 4월 말)로 100배나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한 외환보유액은 ‘블랙 스완’처럼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국제경제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외환시장 대책에 대한 시비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일련의 조치(개입)에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중 극단적인 것이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가 저평가되게 한 것 아니냐”는 미국의 환율공세다. 한국 제품의 수출 확대를 위해 환율을 조작했고, 그 결과 미국은 심각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되풀이돼 왔다. 요컨대 “환율을 조작한 게 아니라면 정부가 시장에 관여한 정보를 자세히 공개하라”는 요구였다.
‘시장안정조치’라는 점잖은 표현의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 정부가 외환을 얼마나 사고팔았는지 그 내역을 밝히라는 요구다. IMF도 한국과 연례협의 등을 통해 “적절한 시차를 두고서라도 시장안정조치를 공개해 시장 투명성을 제고하라”고 권고 또는 권유를 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압박에도 정보 공개를 미뤄왔지만, 최근 미국과 FTA 개정 협상 등을 거치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외환시장의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한 ‘국제적 약속’이 이번에 발표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이다.
우리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 쫓겨서 한 결정이지만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투명성이 좋아지고 자율성도 잘 다져지면 한국 외환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갈 것이고, 이는 나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진짜 고수들이 판치는 외환시장에서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이 잘 대처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투명성과 자율성이 강조된다 해도 외환시장을 내버려 두는 국가는 없다. 적절하게, 표시나지 않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게 시장을 다루며 환율을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비상상황이라도 발생하며 단호한 대응조치도 내려야 한다.
우리 돈의 대외적 가치인 환율은 인위적으로 끌고 갈 수도 없다. 미국 같은 데서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건실하고 탄탄하게 잘 성장할 때 환율도 안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정부가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공개하라”는 IMF의 거듭된 권고와 미국 요구 등을 받아들인 결과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가 불필요한 ‘환율조작’ 논란이나 ‘환율주권론’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 더 이상 휘말리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외환시장 투명성 강화 방안은 내년 3분기부터 정부가 운용하는 외국환평형기금과 한국은행의 외환거래에서 순거래내역(총매수에서 총매도를 뺀 것)을 3개월 이내에 공개하는 것이다. 다만 경과조치로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는 6개월분 반기 내역을 3개월 시차를 두고 공개하게 된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이런 정보를 아예 내놓지 않았던 점과, 이 정보를 월간으로는 물론 매일·매주 단위로 내놓는 국가도 많다는 사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최소한의 정보 공개로 국제적 신뢰제고를 도모하게 된 셈이다.
이 정도 공개만으로도 환율이 급변동하는 국면에서는 정부의 시장대처가 용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정부의 개입패턴이 한 번 읽히게 되면 시장의 불안정성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있다. 한국처럼 수출에 기대는 개방형 교역국에서 외환시장의 혼란은 고스란히 국가 경제에 충격이 될 수 있다. 앞으로도 외환정책은 여전히 중요하며, 외환시장에 대처하는 정부의 진짜 역량은 정보 공개 이후에 드러날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차제에 무리한 환율정책으로 단기 성과를 내겠다는 식의 후진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도 수출 실적 등에서 환율만 주시할 게 아니라 본원적 경쟁력 강화에 매진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우리 돈의 대외가치는 한국 경제의 총체적 실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드러난 국제수지 외에 올바른 경제정책과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고용·노동시장 여부, 기업의 역량 등에 안보·사회 여건까지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런 ‘펀더멘털’이 잘못 관리되고 비정상적 방향으로 갈 때 국민 지갑은 나라 밖에서 반쪽이 나는 것이다. 외환위기 때 피눈물 나는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 군(軍)이 영토를 수호하듯, 금융당국은 원화 가치를 일정 범위에서 지키고 환율도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5월18일자>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의 외환시장도 외형적으로는 많이 커졌다. 1997년 ‘자유변동환율제’를 시행한 이래 은행 간 하루 외환거래 규모가 1998년 11억달러에서 2017년 228억5000만달러로 늘어났다. 터키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국제 외환시장에서 신흥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보다 거래 규모가 크다. 한국 돈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자본거래도 자유로운 통화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다.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도 겪었지만 그 이후 주목할 만한 성장을 한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39억달러까지 내려갔던 외환보유액은 지금 3984억달러(2018년 4월 말)로 100배나 늘었다. 사상 최대 규모에 달한 외환보유액은 ‘블랙 스완’처럼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국제경제의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외환시장 대책에 대한 시비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에 대한 일련의 조치(개입)에 비공개 원칙을 지켜왔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그중 극단적인 것이 “(정부가 개입해) 인위적으로 원화 가치가 저평가되게 한 것 아니냐”는 미국의 환율공세다. 한국 제품의 수출 확대를 위해 환율을 조작했고, 그 결과 미국은 심각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되풀이돼 왔다. 요컨대 “환율을 조작한 게 아니라면 정부가 시장에 관여한 정보를 자세히 공개하라”는 요구였다.
‘시장안정조치’라는 점잖은 표현의 핵심은 어떤 상황에서 정부가 외환을 얼마나 사고팔았는지 그 내역을 밝히라는 요구다. IMF도 한국과 연례협의 등을 통해 “적절한 시차를 두고서라도 시장안정조치를 공개해 시장 투명성을 제고하라”고 권고 또는 권유를 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압박에도 정보 공개를 미뤄왔지만, 최근 미국과 FTA 개정 협상 등을 거치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외환시장의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한 ‘국제적 약속’이 이번에 발표된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이다.
우리의 자발적 의지라기보다 쫓겨서 한 결정이지만 긍정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시장의 투명성이 좋아지고 자율성도 잘 다져지면 한국 외환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갈 것이고, 이는 나라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진짜 고수들이 판치는 외환시장에서 우리 정부와 한국은행이 잘 대처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무리 투명성과 자율성이 강조된다 해도 외환시장을 내버려 두는 국가는 없다. 적절하게, 표시나지 않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되게 시장을 다루며 환율을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안정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비상상황이라도 발생하며 단호한 대응조치도 내려야 한다.
우리 돈의 대외적 가치인 환율은 인위적으로 끌고 갈 수도 없다. 미국 같은 데서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건실하고 탄탄하게 잘 성장할 때 환율도 안정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