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지재권 도둑질" 비난에 中 "국채 더 팔겠다"
미국과 중국 간 통상전쟁이 확전 일로다. 미국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행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화웨이 등 중국 정보기술 기업의 추방을 예고했다. 중국도 1조1700억달러(약 1262조원)에 육박하는 미 국채를 팔 수 있다고 반격했다. 미국 내에는 철강 ‘관세폭탄’ 때와 달리 패권 경쟁국으로 부상한 중국의 불공정 행위를 이번에 손봐야 한다는 시각이 상당하다. 내수 시장이 커진 중국도 지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양측의 충돌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美, 철강 관세와 사뭇 다른 강경 분위기
미국은 지난달 23일 WTO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둑질’ 관행을 제소했다. 전날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 부과를 발표하며 예고했던 대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은 미국 기업 등의 기본 특허권을 부정하고, 강제적이고 불리한 계약 조건을 강요함으로써 WTO 규정을 어기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또 WTO 상품무역이사회(CTG) 회의에서 중국에 폐기물 금수 조치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중국은 지난 1월부터 플라스틱과 종이 등 고체 폐기물 수입을 중단했다. 미국은 지난해 56억달러어치의 폐기물을 중국에 수출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 ZTE 등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을 사실상 미국에서 내쫓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아짓 파이 FCC 의장은 최근 미 의회에 서한을 보내 “중국 기술 기업들의 안보 위협에 대한 의회의 우려를 공유한다”며 “가까운 장래에 적극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산 통신장비나 기기를 사용하는 미국 이동통신 업체에 대한 보조금 감축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는 버라이즌, AT&T 등 대형 이통사와 거래가 좌절된 화웨이가 최근 미국의 소규모 업체들을 공략하고 있는 데 대한 조치로 보인다.
철강 관세에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WSJ는 23일자 ‘무역전쟁은 중국이 먼저 시작했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중국에 무역보복을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비교우위 산업이 아니라 반도체, 항공산업 등을 정책적으로 육성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많은 나라가 중국을 두려워해 불공정 행위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WTO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中 “이익 지켜낼 자신 있다”
중국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추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23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분쟁이 격해질 경우에 대비해 모든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해 미 국채 매입을 줄이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계 1위 미 국채 보유국인 중국은 지난 1월에만 167억달러어치의 미 국채를 팔아치워 총 보유액을 1조1682억달러로 줄였다. 한 달간 매각 금액으로는 지난 14개월 새 가장 많은 규모다.
류허 중국 부총리는 24일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의 통화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는 국제무역 규정을 위배한 것”이라며 “중국은 잘 준비하고 있고, 국가 이익을 지켜낼 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중국의 내수 경제가 성장한 덕분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35%에서 지난해 19%로 떨어졌다. 캐피털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미국이 6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상품에 관세를 매겨도 중국의 성장률은 0.1%포인트 떨어지는 데 그친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의 대중국 무역전쟁이 ‘아프간 전쟁처럼 오랫동안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천보 대만 화중과학기술대 교수는 “미국의 무역전쟁 선포는 일자리를 늘리고, 중국을 누르려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며 “전자는 협상을 통해 끝낼 수 있겠지만 후자는 다소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김현석/베이징=강동균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