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투자개형 병원
정부는 지난 7일 인천경제자유구역에 국제병원을 지으려던 계획을 바꿔 국내 종합병원도 지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국제병원은 외국 자본의 투자를 받아 외국 의사도 근무하는 병원으로 ‘투자개방형 병원’으로도 불린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부터 외국인 환자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건립이 추진됐다. 하지만 시민단체 등의 반발로 16년간 표류하다 결국 무산됐다. 투자개방형 병원이 왜 논란이 될까.
일반 병원은 외부 투자 못 받아병원은 누가 세웠는지, 이익을 어떻게 처리하는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 집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네병원은 보통 개인 소유다. 이런 병원은 의사가 번 돈을 어떻게 쓰든 큰 제약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규모가 큰 병원은 사정이 다르다.
서울대병원, 연세대병원, 삼성병원 등 흔히 우리가 아는 종합병원은 학교법인이나 공익재단 같은 곳이 운영한다. 동네병원보다 규모가 큰 중소형 병원은 지방자치단체가 허가한 의료법인 소유가 많다. 이들 병원은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 돈을 병원 주인에게 배당하거나 의료 관련 사업 외에는 재투자할 수 없다. 반드시 정관에 정해진 고유 목적 사업(의료 관련 사업)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 마음대로 자회사를 차릴 수도 없는 건 물론이다. 혹시 돈이 부족하더라도 외부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야 한다.
환자의 진료를 거부해서도 안 된다. 국내 병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무적으로 계약을 맺고 건강보험 가입 환자가 오면 무조건 진료해야 한다. 우리 국민은 건강보험 의무가입 대상이기 때문에 국내 어느 병원에서든 치료받을 수 있다.
투자개방형 병원 잘못 알려진 것 많아
반면 투자개방형 병원은 누구나 세울 수 있다. 외국인이나 외국법인이 직접 병원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돈이 부족하면 외부 투자도 받을 수 있다. 이익이 나면 투자자에게 이익금 일부를 돌려주는 것도 가능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계약을 맺지 않기 때문에 환자를 가려받을 수 있고 진료비도 병원에서 자유롭게 정한다. 그만큼 병원비가 비싸질 가능성이 있다. 대신 민간 보험사와 자유롭게 계약을 맺고 해당 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게 혜택을 줄 수도 있다.
국내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세울 수 있는 지역은 경제자유구역과 제주도다. 정부는 이 중 인천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인 국제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일각에선 투자개방형 병원이 생기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투자개방형 병원은 외부 투자를 받아 서비스 질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그만큼 병원비가 비싸져 아무나 가기 힘들어진다. 결국 부자만 이용하고 돈 없는 서민은 이용하기 어렵다는 게 투자개방형 병원에 반대하는 사람이 내세우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반대론은 과장된 우려라는 지적도 많다. 국내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을 지을 수 있는 장소가 제한된 데다 건강보험제도가 잘 갖춰져 있어 투자개방형 병원이 아니라도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해외에서는 활발히 운영
국내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이 무산된 것과 달리 해외에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적지 않다. 태국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병원이 심각한 재정난에 빠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이 병원 지분을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해외 환자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싱가포르는 투자개방형 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국민을 위한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 투자개방형 병원을 활용하는 나라도 있다. 프랑스의 투자개방형 병원은 백내장 수술이나 편도절제, 척추수술 등 일부 진료만 하는 소규모 전문병원 형태로 운영된다. 이들 병원은 외부 자본을 투자받아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특정 질환에 대한 기술력을 집중적으로 쌓고 있다.
이지현 한국경제신문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