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조품 천국이 혁신의 상징으로
드론·전기자동차 등 혁신 주도
IT 핵심기업들 선전이 본거지
美 실리콘밸리 넘보는 도시로
자본주의 시험 경제특구
개혁·개방 추진한 덩샤오핑이
중국내 첫 경제특구로 지정
작은 어촌 마을이 창업 중심지로
‘산자이(山寨·중국산 모조품)의 천국에서 혁신의 중심으로.’ 중국 광둥성의 도시 선전을 가리키는 말이다.드론·전기자동차 등 혁신 주도
IT 핵심기업들 선전이 본거지
美 실리콘밸리 넘보는 도시로
자본주의 시험 경제특구
개혁·개방 추진한 덩샤오핑이
중국내 첫 경제특구로 지정
작은 어촌 마을이 창업 중심지로
싼 임금으로 선진국 제품을 베끼던 ‘짝퉁 천국’은 옛말이다. 선전의 중국 기업은 드론(무인항공기), 전기자동차, 빅데이터, 핀테크(금융기술) 등 신산업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모바일 메신저와 핀테크 시장을 주도하는 텐센트, 미국 테슬라를 넘어 세계 1위 전기차 업체가 된 BYD, 세계 드론 시장의 70%를 장악한 DJI 등이 선전에 자리잡고 있다. 애플을 제치고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위에 오른 화웨이도 선전이 본거지다. 인구 8명에 기업 1개꼴
선전은 중국 공산당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12월 개혁·개방 추진을 선언한 뒤 중국에 지정한 첫 경제특구다. ‘사회주의 중국’에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위한 실험실이었다. 당시만해도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선전은 이제 세계 정보기술(IT) 중심지인 미국 실리콘밸리를 넘보는 창업 천국으로 변신했다.
인구 1200만 명가량인 선전에 자리잡은 기업만 150만4000여 곳(2016년 말 기준)이다. 인구 8명 중 기업 1개꼴이다. 창업 기업에 투자하는 중국 벤처캐피털의 3분의 1이 선전에 몰려 있다.
선전의 난산소프트웨어 산업단지는 선전시 정부가 전자상거래,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소프트웨어산업을 키우기 위해 2013년 조성했다. 단지 남쪽 끝에는 텐센트의 48층짜리 신사옥이 우뚝 서 있다. 검색포털 업체 바이두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신사옥도 광장 북쪽과 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주말이면 단지 내 카페에선 창업자와 투자자를 연결해 주는 벤처투자 설명회가 열린다. 창업자들이 많이 모이는 3W카페에서 만난 창업자 리잔졔 씨는 “설명회 현장에서 500만위안(약 8억5000만원)어치의 투자 계약이 바로 체결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텐센트는 중촹(衆創)공간이라는 벤처 인큐베이터(창업 초기 기업을 육성하는 곳)를 설립해 100개 스타트업에 100억위안(약 1조7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워 투자 대상을 찾고 있다. 중촹공간에서 일하는 장양양 씨는 “중국 전체 벤처투자 자금의 3분의 1가량이 선전에서 집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적의 창업 환경
선전은 혁신적인 ‘창업 생태계’의 본보기다. 정부부터 신산업에 너그럽다. 중앙정부는 물론 선전시 정부가 창업을 적극 장려한다. 구태언 테크앤로 대표변호사는 “중국 정부는 드론, 핀테크와 같은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가 나오면 기존 제도를 적용해 규제하지 않고 일단 지켜본다”며 “그러다가 체제 위협이나 심각한 사회 혼란을 일으킬 때만 제한적으로 규제한다”고 말했다. 신산업이 생겨나기 좋은 환경이다.
선전에는 기업-대학-연구소를 잇는 산학연(産學硏) 협력체계도 탄탄히 구축돼 있다. 베이징대, 칭화대, 하얼빈공대 등 중국의 최상위 대학 분교가 있고, 중국과학원 등의 부설 연구소도 많다. 이들 대학과 연구소는 벤처 창업자에게 끊임없이 신기술을 공급한다. 선전에서 나온 국제특허 출원 건수가 2016년 1만9647건으로 베이징(6651건)과 상하이(1560건)를 압도하는 배경이다.
폭넓은 생산 네트워크도 선전의 창업 생태계를 떠받치고 있다. 아이폰을 조립하는 폭스콘 공장을 비롯해 수많은 IT 기업이 선전에 있다. 부품 공장만 1만 개가 넘는다. 그 결과 선전에선 세계 어느 지역보다 손쉽게 부품을 구할 수 있다. 시제품이나 제품 양산이 쉬울 수밖에 없다. 선전은 외지인이 많고 평균 연령도 32.5세에 불과하다. 젊은 인재들이 선전에 몰려든다는 의미다.
중국의 빅데이터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 기술도 곧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 중심에 선전이 있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우리는 중국이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착각”이라고 지적했다. AI, 드론, 자율주행차, 핀테크 등 신기술은 중국이 한국을 한참 앞서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혁신 속도는 두려울 정도”라며 “이대로 가면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은 중국의 하도급기지에도 끼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승우 한국경제신문 IT과학부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