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이례적인 ‘권고’ 사항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전했다. 논란이 된 권고는 ‘불법시위 단체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원 제한 규정을 삭제하라’는 내용이다. 불법시위 단체에도 정부 예산이나 기금에서 지원이 가능하도록 기재부가 각 부처에 주는 ‘예산집행지침’을 바꾸라는 것이다. 국민 인권 신장이 설립 목적인 인권위는 의결사항을 정부의 다른 기관에 권고한다. 이 권고에 법적인 강제력은 없지만, 감사원이 권고사항의 이행상태를 점검하고 있어 단순히 권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기관에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는 지시도 했다. 불법단체로 나랏돈이 갈 수 있게 하는 이 권고는 정당한가.
○찬성
“집회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행정 지침’으로 제한돼선 안돼”
인권위 권고 판단의 기본 전제는 무엇보다 ‘집회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헌법상의 이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인권위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지침에 주목했다. 이 지침은 매년 1월 기재부가 각 부처에 통보해 예산편성(나랏돈의 지출)에 적용하라는 일종의 기준이다. 2009년부터 이 지침에는 불법 집회를 주최하고 주도한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규정이 담겼다. 보조금 교부를 결정했더라도 불법시위 활동 등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는 지급을 취소할 수 있게 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에 반대하며 불법 집회를 한 단체에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일면서 만들어진 규정이다.
인권위는 예산집행의 이 규정이 직접적으로 집회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집회 참가 단체들을 위축시키고 이로 인해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기준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행정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며, 국제적인 인권규범에 따른 높은 차원의 권리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권리인 집회권에 대한 제한은 법적 단계가 낮은 ‘지침’ 차원이 아니라 그보다 상위인 ‘법률’에 의해 한정적으로만 가능하다는 논리다.
인권위는 ‘불법 시위’라는 것의 정의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판단이 다르고, 법원 판결이 달라 기준 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
“정부가 법질서 훼손하는 조치 불법집회 조장하는 결과 초래할 것”
인권위 권고에 대해 일부 법조계 등에서는 법질서가 훼손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의 수호자이면서 집행 주체인 정부가 불법 집회를 일삼는 단체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법리를 떠나 과연 상식적이냐는 비판이다. “정부 예산으로 불법을 조장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불법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은 오히려 더욱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엉터리 판정이 난 ‘광우병 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불법 집회에 참가한 단체는 경찰 발표로 1842개에 달했다. 이런 단체 가운데는 불법 시위나 집회를 반복적으로 주도하며 실정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단체도 있다. 이런 단체에 재정적 지원은 국민의 납세 의식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인권위 권고안의 수용률을 높이라고 했고, 그 결과는 기관장 인사에도 반영된다. 예산집행지침 개정 권고도 시행될 공산이 크다. 보완조치 없는 규정 개정은 정부가 불법 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게 반대 논리다. 법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시민의 인권이나 안전은 뒷전인 채 불법을 일삼는 단체을 비호하는 권고안으로 보고 있다. 너무 앞서가는 ‘인권보호’라는 지적이다.
인권위가 법에 의거해 설치된 국가기관이라는 점도 중시돼야 한다. 국가기관의 판단이나 결정은 민간단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 법 감정도 감안해야 한다. 인권위의 방침도 문제지만, 기재부가 어떻게 수용할지가 더 관심사다.
○생각하기
"법 안 지키면 권리도 없어… 법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기관 특성상 인권위는 집회의 자유권에 중점을 둘 수 있다. 하지만 법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법치는 무엇보다 중요한 민주 가치다.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인권위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법치부터 전제돼야 한다. 인권위 권고는 “불법시위 단체라 해도 정부 예산이나 보조금의 지원 제한은 안된다”는 것이어서, 법치의 원칙을 훼손할 수가 있다. 침묵하는 더 많은 시민의 권리 보호가 고려돼야 한다. 기재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인권위 권고를 어느 정도로 수용할지가 주목된다. 인권위의 의도도 고려하면서 국민들 법 감정이나 법치의 중요성도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찬성
“집회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 ‘행정 지침’으로 제한돼선 안돼”
인권위 권고 판단의 기본 전제는 무엇보다 ‘집회의 자유’가 존중돼야 한다는 것이다. 불법 시위를 주도한 단체에 대해 정부 보조금이 지급되지 못하도록 한 것은 헌법상의 이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식을 깔고 있다.
인권위는 기획재정부의 예산집행지침에 주목했다. 이 지침은 매년 1월 기재부가 각 부처에 통보해 예산편성(나랏돈의 지출)에 적용하라는 일종의 기준이다. 2009년부터 이 지침에는 불법 집회를 주최하고 주도한 단체에 보조금 지급을 제한하는 규정이 담겼다. 보조금 교부를 결정했더라도 불법시위 활동 등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는 지급을 취소할 수 있게 했다.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등에 반대하며 불법 집회를 한 단체에 정부 보조금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비판이 일면서 만들어진 규정이다.
인권위는 예산집행의 이 규정이 직접적으로 집회를 막는 것은 아니지만, 집회 참가 단체들을 위축시키고 이로 인해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다고 봤다. 아울러 보조금 지원을 제한하는 기준도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행정기관에 의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집회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하며, 국제적인 인권규범에 따른 높은 차원의 권리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권리인 집회권에 대한 제한은 법적 단계가 낮은 ‘지침’ 차원이 아니라 그보다 상위인 ‘법률’에 의해 한정적으로만 가능하다는 논리다.
인권위는 ‘불법 시위’라는 것의 정의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경찰 판단이 다르고, 법원 판결이 달라 기준 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
“정부가 법질서 훼손하는 조치 불법집회 조장하는 결과 초래할 것”
인권위 권고에 대해 일부 법조계 등에서는 법질서가 훼손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법의 수호자이면서 집행 주체인 정부가 불법 집회를 일삼는 단체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법리를 떠나 과연 상식적이냐는 비판이다. “정부 예산으로 불법을 조장하는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불법단체에 대한 예산 지원은 오히려 더욱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엉터리 판정이 난 ‘광우병 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불법 집회에 참가한 단체는 경찰 발표로 1842개에 달했다. 이런 단체 가운데는 불법 시위나 집회를 반복적으로 주도하며 실정법을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단체도 있다. 이런 단체에 재정적 지원은 국민의 납세 의식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통령이 인권위 권고안의 수용률을 높이라고 했고, 그 결과는 기관장 인사에도 반영된다. 예산집행지침 개정 권고도 시행될 공산이 크다. 보완조치 없는 규정 개정은 정부가 불법 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게 반대 논리다. 법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보통 시민의 인권이나 안전은 뒷전인 채 불법을 일삼는 단체을 비호하는 권고안으로 보고 있다. 너무 앞서가는 ‘인권보호’라는 지적이다.
인권위가 법에 의거해 설치된 국가기관이라는 점도 중시돼야 한다. 국가기관의 판단이나 결정은 민간단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일반 국민들 법 감정도 감안해야 한다. 인권위의 방침도 문제지만, 기재부가 어떻게 수용할지가 더 관심사다.
○생각하기
"법 안 지키면 권리도 없어… 법치를 훼손하지 말아야"
기관 특성상 인권위는 집회의 자유권에 중점을 둘 수 있다. 하지만 법치가 지켜지지 않으면 권리도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점에서 법치는 무엇보다 중요한 민주 가치다. ‘민주적 기본질서 확립에 이바지한다’는 인권위의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법치부터 전제돼야 한다. 인권위 권고는 “불법시위 단체라 해도 정부 예산이나 보조금의 지원 제한은 안된다”는 것이어서, 법치의 원칙을 훼손할 수가 있다. 침묵하는 더 많은 시민의 권리 보호가 고려돼야 한다. 기재부가 어떤 판단을 할지, 인권위 권고를 어느 정도로 수용할지가 주목된다. 인권위의 의도도 고려하면서 국민들 법 감정이나 법치의 중요성도 훼손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