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철학 시대에는 신앙이 이성보다 절대 우위였죠… 스콜라철학은 이성이 신앙 의심하자 융합 꾀했어요"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7)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https://img.hankyung.com/photo/201710/01.14947888.1.jpg)
위기에 처한 그리스도교와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탈리아 나폴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퀴나스는 나폴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파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권위자였던 알베르투스에게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배웠으며, 파리 대학 신학부 교수로 취임한 뒤 그리스도교 신학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통합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그런데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인 파리 대학에서 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등장으로 인해 신앙과 이성의 갈등을 둘러싼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신을 부인한 아리스토텔레스
신앙과 이성의 관계와 관련하여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유입되기 전, 즉 교부철학 시대에는 ‘이성’보다 ‘신앙’이 절대적 우위에 서 있었다. 그런데 12세기경 이슬람 세계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저작의 번역이 역수입되어 그의 철학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자연의 세계는 자연 안에 있는 자신의 운동 원리에 따라 스스로 완성된 것이며 신과 같은 초월적인 다른 존재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받아들이면 우주를 신의 피조물로 여기기도 어렵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재발견은 당시 그리스도교 사회가 가진 신앙의 기초를 흔들어 놓았던 것이다.
당연히 중세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위험한 인물로 판단되었고 그의 철학은 그리스도교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금지되기까지 하였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그리스도교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신학에 조화롭게 편입시킴으로써 위기를 극복한 인물이 바로 아퀴나스이다. 그렇다면 아퀴나스는 어떻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화해시킬 수 있었을까?
이를 위해서 아퀴나스가 시도한 것은 이성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을 구분하면서도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이 상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퀴나스에게 철학과 신학은 신에 대한 지식을 인간에게 제시해주는 방식에서 서로 구별된다. 이 점을 잘 드러내주는 아퀴나스의 주장을 살펴보자. “철학은 창조된 사물에서 출발하여 신에게로 이르지만, 신학은 신에게서 출발한다.” 이 주장에서 보듯이 철학은 감각 경험의 직접적인 대상에서 시작하여 이성적 추론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존재의 최고 원리인 신에게 이른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로 봉합
반면 신학은 신에 대한 신앙에서 시작하여 모든 사물을 신의 피조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철학과 신학, 이성과 신앙은 둘 다 신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서로 모순일 수 없다. 다만 철학과 신학은 진리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진리는 오직 하나이며, 신에게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콜라 철학에서 철학의 기능은 오직 신학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서 그 역할이 제한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퀴나스가 제시한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7) 토마스 아퀴나스와 스콜라 철학](https://img.hankyung.com/photo/201710/01.14595040.1.jpg)
◆ 기억해주세요
스콜라 철학에서 철학의 기능은 오직 신학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도구로서 그 역할이 제한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아퀴나스가 제시한 “철학은 신학의시녀”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김홍일 <서울 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