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연구에서 큰 공헌한 위대한 사상가… 좋은 추억·기대를 '마음의 시간'에 가질 때 행복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5) 아우구스티누스 (중) 시간론
서양 철학사에서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철학자들이 연구를 해왔지만, 아우구스티누스만큼 시간 문제를 포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철학자 후설은 난해한 시간 문제에 대하여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해결을 보고 “아무리 지식을 자랑하는 현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간 이해에 있어서는 그 문제와 씨름했던 이 위대한 사상가보다 더 깊이 있고 의미심장한 발전을 보지 못했다” 라고 극찬했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5) 아우구스티누스 (중) 시간론
과거·현재·미래···탐구하기 어려운 시간

아우구스티누스도 시간 문제 탐구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였다. “도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을 때, 나는 막연히 대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해 설명하려니 비로소, 답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뭔가 알 것 같은데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시간의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시간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시간의 ‘존재’가 전제되어야 하는 법. 그러나 시간은 객관적으로 분명히 있는데, 냉철히 분석해 보면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세 축을 이루는 ‘과거’는 이미 흘러 지나갔기에 없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 그렇다면 ‘현재’ 하나만 있는 셈인데 그것도 순식간에 과거로 빠져 들어가고 만다면, 현재라는 것도 결코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된다.

마음의 시간 ‘카이로스’가 중요

이에 대한 해결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식의 내면에서 체험된 시간 이해를 제시했다. 의식이 지각하고 있는 시간을 현재로 놓고 현재 안에서의 기억 작용을 통해 시간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는 시간에 대한 연구에서 서양철학사에 천재적인 공헌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과거, 현재, 미래를 의식 내재적인 시간성으로 바꿀 때 과거, 현재, 미래는 비로소 존재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란 이미 사라져 버렸으므로 현재 존재하진 않지만 마음 속에서는 기억의 작용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현재 또한 미래에서 과거로 계속적으로 흘러가 버리므로 현재를 포착할 수 없지만 직관의 작용으로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미래 역시 마음 속에서 기대의 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을 시계로 잴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마음으로 잴 수 있는 ‘마음의 시간’으로 구분했다. 그가 말하는 마음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영혼인데, 인간의 영혼은 물리적 시간 안에서 살지 않고, 마음의 시간 안에서 산다고 생각했다. 물리적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아서 없고, 과거는 이미 사라져버려서 없기 때문에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이런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라고 부른다. 반면, 우리가 마음으로 파악하는 마음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언제나 현재 속에 함께 한다. 즉, 과거는 ‘기억’으로 현재 안에 있고, 미래는 ‘기대’로 역시 현재 안에 있다. 이런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고 하는데, 인간의 마음이 사는 시간이다.

시간론은 곧 행복론이다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5) 아우구스티누스 (중) 시간론
이와 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그의 행복론과 직결된다. 그의 시간론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도덕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이 순간이 기쁘거나 슬프다면 그것은 분명 현재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일 또는 다가올 미래의 어떤 일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나쁜 행동을 삼가야 하는 이유도 물리적 시간에 살기 보다는 마음의 시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잠깐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부도덕한 행동을 하는 것은 크로노스 속에서 현재만을 염두해 두고 살기 때문이다.

오히려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좋은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야 하며, 바람직한 기대들을 많이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카이로스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추하고 나쁜 기억들만 많이 갖고 바람직한 희망은 전혀 없으면서 행복할 수는 없지 않을까? “추억이나 기대가 없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보다 더 불쌍하다”는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기억해주세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은 그의 행복론과 직결된다. 그의 시간론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도덕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이 순간이 기쁘거나 슬프다면 그것은 분명 현재의 일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일 또는 다가올 미래의 어떤 일 때문일 것이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