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른 기회' 주면서도 '역차별'도 없어야 공정
세상에는 다양한 관점이 있다. 현상이 같아도 해석이 다른 이유다. 계층이나 자신이 처한 입장, 또는 보수적 성향이냐 진보적 성향이냐에 따라서도 견해나 해석이 달라진다. 자유를 중시하느냐 평등을 중시하느냐에 의해서도 판단이나 평가가 다르다. 가급적 인적사항이나 스펙을 보지 않고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블라인드 채용’ 역시 논란거리다. 관점에 따라서는 기회가 균등해지는 새로운 평가시스템이 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선 노력의 가치를 등한시 하는 다른 형태의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학력·스펙 좋다고 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블라인드 채용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공약이다. 직무 연관성이 적은 스펙이나 학력, 성별, 출신지 등을 아예 취업지원서에 적지 않게함으로써 편견 없이 필요한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 기본 취지다. 명문대 출신이냐 일반대 출신이냐, 수도권 대학 출신이냐 지방대 출신이냐로 갈라 출발선을 달리해 평가하지 말고 오로지 업무적합성만으로 평가하라는 것이다. 성별이나 업무에 연관성이 적은 스펙들도 평가 기준에 포함하지 말라는 주문이다. 성적이 좋은 명문대 출신이 반드시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편견이라는 것이다.
이미 고용노동부는 새로 만든 공공기관 ‘표준이력서’에서 학력, 성별, 가족관계 출신지 등의 기재 항목을 삭제했으며 공공기관은 올 하반기부터 새로 만들어진 ‘표준이력서’에 기준해 입사 지원자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대신 직무관련 교육이나 자격증 등 직무에 직접 연관성이 있는 항목의 평가를 강화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의 취지는 ‘고른 기회’가 골자다. 학력·외모·성별·지역 등 채용시 차별받을 수 있는 요소들을 없애 오로지 실력만으로 업무 적합성을 평가한다는 것이다. 과도한 스펙 경쟁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도 깔려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인 자유보다 평등에 방점이 찍혀 있다. “노력의 가치 무시는 또 다른 역차별이다”
올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블라인드 채용을 점차 민간기업으로 확대시킨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하지만 블라인드 채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뽑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평가 항목인 학력이나 학점, 어학실력 등은 능력의 주요한 부분인 것이 사실이다. 한데 이런 항목을 제외하고 누군가를 평가한다면 그 평가가 객관적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성별에 따라 업무의 적합성에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인사의 핵심 원칙인 ‘적재적소’는 재능을 거기에 맞는 자리에 배치하는 것이고, 그건 단체나 기업의 효율적 운영과 직결된다.
또 하나는 ‘노력의 가치’다. 명문대 인기학과를 나오고 스펙이 좋다고 반드시 일을 잘 할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을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노력’이다. 스펙은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스펙 자체를 외면하는 건 어떤 사람의 ‘노력의 가치’를 무시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무관련 교육이나 자격증 등 업무적합성을 맞추기 위한 노력만을 인정하고 궁극적으로 능력의 토대가 되는 ‘기본’을 닦기 위한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모순이다.
“역차별 등 부작용 최소화해야”
명분이 옳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좋은 정책이 된다. 블라인드 채용도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잣대로 채용 기준을 규제하면 의도와는 다르게 또 다른 역차별이 생길 수 있다. 또한 자칫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이는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여론의 역설’도 경계해야 한다. 여론은 흔히 민주주의 나침반으로 불리지만 때로는 ‘대중의 사익 추구’를 반영하는 지표가 된다. 그 자체의 옳고 그름으로 어떤 사실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느냐’로 어떤 사실이나 정책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른 기회’를 주면서 ‘평가의 객관성’으로 역차별이 없어야 블라인드 채용이 본래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다.
NIE 포인트
블라인드 채용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생각해보자. 부정적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도 토론해보자.
신동열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