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논 "이성과 지혜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자"
통제 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 곧 지혜다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2)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 창시자는 제논이다. 스토아 학파라는 명칭은 제논이 아테네 광장에 있던 ‘스토아(서양 건축에서 줄지어 선 기둥으로 된 주랑을 의미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 철학은 에피쿠로스 학파와 마찬가지로 헬레니즘 시대에 혼란에서 벗어나 평온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등장하였다. 하지만 스토아 학파는 쾌락에서 행복을 얻고자 한 에피쿠로스 학파와 달리 지혜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였다.

창시자는 제논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2)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의 지혜는 이성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진단하고 한계를 긋는 냉철함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스토아 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에픽테토스의 말을 들어보자.

“세상사 가운데는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이 있고, 속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내 권한에 속하는 것은 생각, 충동, 욕구, 혐오 등 우리가 하는 행위다. 내 권한에 속하지 않는 것은 육신, 재산, 평판, 직위 등 우리가 하는 행위가 아닌 것들이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에 의하면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쩌면 세상살이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다. 특히나 어지러운 세상에서 나와 같이 미미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가? 이것이 스토아 철학이 당대 사람들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은 무시하자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나에게 속한 것(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나에게 속하지 않는 것(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나누는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이 겪는 수많은 혼란과 어려움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서부터 초래된다. 이것이 정념이 발생하는 원인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통제 불가능한 것은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둘 사이를 구분하는 것이 지혜요 이성의 힘이다. 따라서 감정이나 욕망을 절제하고 철저하게 이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갈 때 정념이 없는 상태인 ‘아파테이아(aphatheia)’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테네에서 시작한 스토아 철학이 로마 제국에서 환영받게 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이제 모든 인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생각, 의지, 미래에 대한 태도에서만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스토아 학파의 행복은 로마 제국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열려 있다. 이 행복은 모든 사람이 그가 어떤 처지에 있든, 어떤 인생의 상황이든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로마 황제 네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같은 스토아 학파의 인물들인 점이 이상하지 않다. 어쩌면 스토아 철학은 노예와 황제가 함께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니까. 인간 모두는 하나의 이성 법칙 아래 있으며, 그 이성은 우주의 본성이자 인간의 본성이므로 모든 인간은 평등한 세계 시민이라는 스토아 철학. 로마와 같이 거대한 제국을 통합하고 유지하는 데 이만한 철학 이론이 있을까.

합리적 낙관주의와 연결

[김홍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12) 스토아 학파
스토아 학파의 지혜는 비단 헬레니즘 시대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잡혀 있던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의 이야기다. 다른 포로들은 근거 없는 막연한 희망(‘크리스마스가 오면 구출되겠지.’)을 가졌던 데 비해, 그는 희망을 잃지는 않았지만 막연한 기대가 아닌 현재의 비참한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자세, 즉 ‘합리적 낙관주의’로 일관함으로써 오랜 포로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다. 이러한 스톡데일의 마음 자세를, 희망과 현실적인 암울함을 모두 가진다는 의미에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 한다. 이런 스톡데일 태도의 핵심은 식사량과 같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는 실제적 해법을 찾지만, 석방 시기와 같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현실을 철저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데 스톡데일의 이런 합리적 낙관주의는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실제로 스톡데일은 이런 혹독한 현실을 견딘 힘이 에픽테토스의 철학이라고 밝혔다.

미국 사회윤리학자인 니부어의 기도에는 스토아 철학의 지혜가 잘 집약되어 있다. “신이시여,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생각해봅시다

스토아 학파는 통제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는 냉철한 이성을 강조했다. 행복도 11회에 소개한 에피쿠로스 학파와 달리 이성과 지혜를 통해 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학파의 행복 차이를 토론해보자.

김홍일 < 서울국제고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