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을 한결같이 발휘하고 사려깊은 사람되는 게
인간으로서 탁월한 삶이며 궁극적 행복이다"
인간으로서 탁월한 삶이며 궁극적 행복이다"
![[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9) 아리스토텔레스(중) 행복론](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AA.14202459.1.jpg)
참나무는 도토리의 목적
가령 도토리는 참나무가 되기 위한 가능태이고, 참나무는 도토리의 현실태다. 도토리가 참나무가 됨으로써 도토리의 고유한 기능이 발휘된 상태가 현실태이다. 참나무는 도토리의 목적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론을 이끌어낸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세상 전체는 항상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향하는 목적을 갖고 이를 완성하고자 하는 사물들의 작용으로 가득 차 있는 셈이다.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모든 사물을 해석하고 만물이 목적에 따라 움직인다는 세계관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철학자가 아리스토텔레스다. 이런 목적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인간의 행복을 설명하고 있다.
중용은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
![[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9) 아리스토텔레스(중) 행복론](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AA.14202427.1.jpg)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은 인간의 기능에 일치하는 현실태, 곧 이성의 기능을 완전하게 발휘하는 삶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인간으로서 기능을 다 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는 인간의 기능을 크게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영양을 섭취하고 생식을 하는 기능이고, 둘째는 무엇을 감각하고 욕구하는 기능이며, 셋째는 이성을 발휘하여 깊이 생각하는 기능이다. 이 중 처음 두 가지는 식물이나 동물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은 결국 이성을 잘 발휘하는 기능뿐이다. 따라서 이성적 기능을 잘 발휘하여 사려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 탁월한 삶이며, 그것이 곧 인간의 행복이며,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이성의 발휘만으로는 행복해 질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한 마리의 제비가 난다고 하여 봄이 온 것은 아니듯이’ 일생을 통해 한결같이 이성이 탁월하게 발휘될 때 비로소 행복이 실현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성을 항상 잘 발휘하게 하는 성품이 필요하다. 이 성품은 지나침도 모자람도 아닌 중용을 선택하는 습관을 뜻한다. 물론 중용의 덕은 그 자체가 행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행복을 위하여 불가결한 바탕이 된다.
좋음을 추구할 때 행복 얻어
행복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고 중용을 따르는 영혼의 활동으로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은 우리가 보통 운이라고 부르는 것 간에는 차이가 있다. 운은 우리의 의지를 벗어나 있어서 우리로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생겨 우리를 기쁘게도 좌절하게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과 운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우연이 따르는 운이 우리의 삶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리스토
![[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9) 아리스토텔레스(중) 행복론](https://img.hankyung.com/photo/201706/01.14215698.1.jpg)
생각해봅시다
인간의 행복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능태와 현실태를 통해 행복의 조건을 추론했다. 옳음을 추구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행복으로 이끈다고 했다. 운이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