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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의 잘못된 해석으로 생긴 정책결정의 오류나 사회적 혼란의 사례를 찾아보자.
왜 엉터리 통계가 등장했는지도 토론해보자.
‘0.4%.’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성장률(전 분기 대비)이다. 이를 놓고 세간에는 “경제가 곤두박질친다”는 식의 부정적 해석이 쏟아졌다. 성장률이 전 분기(0.6%)보다 떨어졌고, 다섯 분기 연속 0%대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4분기 경제지표에 긍정적 신호가 많다는 반론 또한 팽팽했다. 설비투자가 6.3% 늘어 2012년 1분기 이후 최고치였고, 제조업 생산은 1.8% 증가해 전 분기의 부진(-0.9%)을 벗어났다. 당초 마이너스 성장 전망마저 무성했던 점을 감안하면 “선방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통계의 잘못된 해석으로 생긴 정책결정의 오류나 사회적 혼란의 사례를 찾아보자.
왜 엉터리 통계가 등장했는지도 토론해보자.
유명한 통계지표는 완벽할 것이라는 오해
물이 절반 채워진 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반이나 차 있다”고 한다. 경제를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도 비슷하다. 경기지표에는 긍정적·부정적인 것이 혼재돼 있기 마련이다. 경제를 분석할 때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여러 지표를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다.
소비지표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으로 백화점·대형마트 매출이 있다. 지난해 12월 백화점과 마트의 매출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3.8%, 0.7%. 이것만 보면 소비는 부진하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많이 찾는 편의점이나 온라인·모바일 쇼핑몰 매출은 10~30%대 고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온·오프라인을 합쳐 보면 밑바닥 경기에 대해 다른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유통업계에선 “소비 패턴 변화에 맞춰 지표 분석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들의 경제생활 방식은 계속 바뀌는데 구닥다리 통계지표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인 국내총생산(GDP)조차 그렇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서비스업 비중이 증가하고 디지털 경제가 확대되면서 GDP의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꼬집은 적이 있다. 예컨대 학원을 가지 않고 유튜브로 무료 강의를 들으면 수강생의 효용은 높아지지만 GDP는 감소하고, 에어비앤비 같은 공유 서비스는 GDP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숫자로 포장한 ‘악마의 편집’ 가려내자
인터넷에서 ‘잘 생기면 빨리 죽는다’ ‘강남스타일 춤을 함께 추면 빨리 친해진다’ 같은 황당무계한 연구결과를 다룬 기사를 종종 본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잘못 연결해 실험하거나, 차 떼고 포 떼어 단정적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통계의 세계에서도 수많은 지표 중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 왜곡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한국의 무역의존도가 102%나 된다며 “수출 대신 내수를 키워 무역의존도를 낮추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반(反)세계화·반기업론과 맥을 같이하는 이 주장은 ‘의존’을 ‘종속’으로 잘못 해석한 결과다. 무역의존도는 수출+수입액을 GDP로 나눈 것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11곳이 한국보다 높고 여기엔 유럽 선진국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인구 5000만명 중 30.1%가 토지를 소유했다”(국토교통부 보도자료)거나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미국(47.8%) 다음으로 높다”(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자료는 어떤가.
양극화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기에는 딱 좋지만, 자세히 보면 허점투성이다. 통상 한 집에서 부동산을 가장(家長) 명의로 등록하는 점을 감안하면 4인 가구에서 25%가 땅을 독식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소득 상위 10% 기준선이 억대 연봉자가 아니라 세전 연소득 4000만원 전후라는 사실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무조건적 낙관론·비관론은 위험하다
경제학 교수 찰스 윌런은 《벌거벗은 통계학》이란 책에서 “통계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더 똑똑할 수 없다”고 했다. 통계를 접할 때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볼 게 아니라 분석 방법과 기준, 인용자의 의도까지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경제 상황을 둘러싼 낙관론과 비관론도 마찬가지다. 시장 불안과 정치 혼란이 겹친 상황에서 이른바 ‘경제전문가’라는 직함을 단 전문가 집단이 한쪽 입장을 확대 재생산하는 측면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다. 경제 주체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과가 크게 좌우된다는 뜻이다. 낙관론에 취해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도, 비관론에 빠져 자괴감에 빠지는 것도 도움이 안 된다. 경제를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