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쇼크 이후 관심 커져…"지속불가능하고 '모럴 해저드' 초래할 것"
스위스 국민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의 기본소득을 무상으로 주는 것에 반대하면서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본소득제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길래 스위스 국민은 ‘공짜’를 거부했을까? 기본소득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기본소득의 개념
기본소득(basic income)은 재산이나 소득이 많든 적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국민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자는 취지다. 일부 경제학자는 기본소득 제도를 소득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꼽기도 한다. 기본소득은 세 가지 점에서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와 다르다. 첫째, 기본소득은 가구가 아니라 개인에게 지급된다. 둘째, 다른 소득의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된다. 셋째, 취업하려는 의지가 있다거나 노동을 했다는 등의 증명이 필요 없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앙드레 고르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사회구조 변화에서 찾는다. 그는 《경제이성비판》이란 책에서 한 사회의 생산력은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더 적은 노동으로도 같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어 노동의 양으로 임금이 결정되면 (임금이 점점 적어져) 사회 구성원들이 삶을 지탱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는 대안으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소득을 주장했다.
특히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간 대결에서 알파고가 승리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인류가 개발한 AI나 로봇 같은 첨단기술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노동의 종말’을 초래하면 구글과 같은 거대 정보기술(IT) 기업과 이를 소유한 극소수만이 엄청난 부를 쌓을 것이고, 사회 양극화는 극에 달할 것이란 두려움에서다.
“인간적 비참으로부터 해방” vs “달콤한 유혹”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부가 최소한의 생활비를 지급한다는 점에서 받는 사람 입장에선 ‘환상적’이다. “기본소득은 일종의 문화혁명으로 인간적 비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문주의적 의제”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누군가가 그 돈을 대야 한다. 기본소득제의 문제는 크게 △지속가능한가 △도덕적 해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라는 두가지 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기본소득제는 지속가능성이 낮다. 어느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느냐에 따라 다소간 차이는 있겠지만 오랜 기간 유지하기 어렵다. 기본소득을 줄 수 있는 정부의 수입보다 지출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구글 같은 대기업에게서 왕창 세금을 거둬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것도 한두 해라면 모르겠지만 한계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아무도 대기업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핀란드는 당초 모든 국민에게 월 800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검토했다. 이렇게 하려면 매년 467억유로(약 59조원)의 돈이 필요하다. 2016년 핀란드 정부의 예상 재정수입액은 491억유로다. 재정수입의 거의 전부를 기본소득으로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500~700유로(66만~92만원)로 줄여 2017년부터 무작위로 선정된 1만여명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본 뒤 성공적이라고 판단되면 전 국민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기본소득제의 또 다른 문제는 ‘일할 동기’를 빼앗는다는 것이다. 놀고 먹어도 웬만큼 생활할 수 있는데 누가 땀흘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하려 할 것인가?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광범위한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기본소득 주는 대신 복지는 왕창 줄인다
그래서 핀란드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면 다른 사회복지 제도를 대부분 폐지할 계획이다. 핀란드 정부는 현재 실업자에게 주는 복지급여가 임시직 임금보다 높아 적지 않은 국민이 일하는 걸 꺼리는 게 실업률이 높은 이유로 보고 있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저임금 일자리라도 일할 것이기 때문에 실업률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모든 복지정책이 기본소득 하나로 단순화되면 복지 관련 공무원 수도 줄일 수 있다. 네덜란드,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 선진국도 핀란드와 비슷한 이유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기본소득제는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얼핏 ‘매력적’인 제도로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스위스 핀란드 등에서 보듯 기본소득의 지급은 다른 사회복지제도의 축소 및 폐지를 뜻한다. 기본소득도 주고 현재의 복지제도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지속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기본소득제에도 적용된다.
◆일하면 복지 혜택 주는 負의 소득세제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가 도와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회복지 정책과 관련해 정부의 딜레마 중 하나는 무상 복지제도가 복지 혜택을 받는 국민의 일할 의욕을 감퇴시켜 스스로의 힘으로 서려는 의지를 꺾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영국 등 선진국도 근로와 복지를 연계시키는 쪽으로 복지제도를 바꾸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부(負)의 소득세제(negative income tax)’다.
부의 소득세는 근로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국민에게 정부(국세청)가 거둔 세금 중 일정액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점 이하의 소득계층에 적용된다. 부의 소득세제가 도입된 건 1975년 미국이 최초다. 한국도 근로장려세제란 이름으로 2009년부터 시행됐다. 근로장려세제는 소득이 가장 낮은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 바로 위 소득계층인 차상위소득계층의 저소득 근로자가구를 대상으로 한 근로연계형 소득지원제다. 일하는 사람에게 복지 혜택을 주기 위한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