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집단지도 체제
문화대혁명(문혁)은 중국의 공산주의 지도자 마오쩌둥이 장기 집권을 위해 벌인 일종의 ‘자작극’이라고 볼 수 있다. 문혁 10년 동안 중국 인민의 삶은 ‘무산계급(노동자와 농민)’이 최우선이라는 공산당 강령(최고가치)과는 정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혁의 선봉부대인 홍위병(마오를 지키는 붉은 병사라는 뜻)들은 부모에게까지 ‘반동’이라며 폭력을 가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혁은 중국의 발전을 수십년간 뒷걸음치게 했다. 마오쩌둥과 그 뒤를 이은 중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자를 뽑는지, 그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마오쩌둥(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공산주의 지도자다. 1920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1949년 중국 대륙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쩌둥은 1976년 사망 때까지 중국을 이끌었지만 이 기간 동안 중국민의 삶은 특별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을 지금처럼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시킨 지도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그는 150㎝의 작은 키로 ‘작은 거인’, 세 번이나 실각했는데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고 해서 ‘오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의 편협한 이념에서 탈피해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고 중국이라는 ‘거인’을 뛰게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그가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국민을 잘살게만 하면 좋다는 뜻이다. 이렇게 탄생한 게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다.
이후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에 이어 현재 국가주석과 공산당 총서기직을 함께 맡고 있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을 이끌고 있다.
‘7룡이 중국을 이끈다’…중국의 지도체제
중국 지도체제의 특징은 여러 사람이 모여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라는 점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상무위원은 예전엔 9명이었는데 현재는 7명이다. 그래서 ‘칠룡치수(七龍治水,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권력을 나눠 중국을 통치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위정성 정협 주석, 류윈산 이데올로기 담당,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장가오리 상무부총리 등이 현재의 ‘칠룡’이다.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권력체계는 공산당원, 공산당 전국대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중앙위 위원, 정치국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어지는 6중 동심원 구조”라며 “정치국 상무위는 이 동심원 구조의 최고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집단지도체제가 약화되고 시진핑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도자 선출 방식과 장단점
중국의 지 도자 선출은 △공산당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가(당성) △일을 맡고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 △글로벌 마인드는 갖췄는가가 기준이다. 중국에서 출세하는 길은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도 여러 차례 떨어졌을 정도로 공산당에 들어가는 건 어렵다. 공산당원이 되고 나선 ‘업적’이 있어야 한다. 공산당 학교인 중앙당교에 입학해 학습할 정도가 되면 비로소 베이징의 중앙 정치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
중국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어 있는 규칙(잠규칙, 潛規則)’이 있다. △최고 지도부는 10년마다 교체한다 △고위 인사는 연령·정치경력·업무능력 등 3가지를 보고한다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는 그럴 수 없다(칠상팔하, 七上八下)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뽑는다고 해도 중앙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리더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청년 조직), 태자당(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를 뜻하는 용어), 상하이방(상하이 출신의 인사들) 출신이란 말이 생겨났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 중국식 선출 방식은 장단점을 갖고 있다. 능력 있는 지도자가 10년 동안 장기적 관점으로 국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권력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 독재에 빠지거나 부패하기 쉽다는 건 약점이다. 마오쩌둥에 대해 ‘잘한 일 30%, 못한 일 70%(功3, 過7)’로 평가하는 것처럼 지도자를 평가할 때 ‘옛일을 잊지 않고 훗날의 스승으로 삼는(前事不忘 後事之師)’ 전통은 본받을 만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분발유위'<奮發有爲>로…중국 외교정책 적극 행보로 변화
덩샤오핑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중국의 외교 정책도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빛을 감추고 그믐달을 키운다’는 뜻이다.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는 얘기다. 아직 국력이 약하니 경거망동하게 나서지 말고 진중하게 실력을 키우는 정책이다. 과거 덩샤오핑이 내세운 중국의 외교 방침이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은 ‘유소작위(有所作爲, 힘쓸 곳이 있으면 힘을 쓴다)’를,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외교의 최우선 방침으로 추진했다. 시진핑 현 주석은 ‘분발유위(奮發有爲, 할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분발해 한다)’는 게 외교 정책 방향이다.
‘분발외교’로 대표되는 중국의 현 외교 정책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입김을 약화시키고 태평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동중국해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것도 분발외교의 영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문화대혁명(문혁)은 중국의 공산주의 지도자 마오쩌둥이 장기 집권을 위해 벌인 일종의 ‘자작극’이라고 볼 수 있다. 문혁 10년 동안 중국 인민의 삶은 ‘무산계급(노동자와 농민)’이 최우선이라는 공산당 강령(최고가치)과는 정반대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혁의 선봉부대인 홍위병(마오를 지키는 붉은 병사라는 뜻)들은 부모에게까지 ‘반동’이라며 폭력을 가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문혁은 중국의 발전을 수십년간 뒷걸음치게 했다. 마오쩌둥과 그 뒤를 이은 중국의 지도자들에 대해 살펴보고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지도자를 뽑는지, 그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오쩌둥에서 시진핑까지
마오쩌둥(毛澤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탄생시킨 공산주의 지도자다. 1920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하면서 공산주의 운동에 합류,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과의 치열한 전쟁 끝에 1949년 중국 대륙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쩌둥은 1976년 사망 때까지 중국을 이끌었지만 이 기간 동안 중국민의 삶은 특별하게 나아지지 않았다.
중국을 지금처럼 미국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시킨 지도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다. 그는 150㎝의 작은 키로 ‘작은 거인’, 세 번이나 실각했는데도 그때마다 다시 일어섰다고 해서 ‘오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덩샤오핑은 사회주의의 편협한 이념에서 탈피해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고 중국이라는 ‘거인’을 뛰게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은 그가 개혁·개방을 강조하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국민을 잘살게만 하면 좋다는 뜻이다. 이렇게 탄생한 게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를 접목한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다.
이후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에 이어 현재 국가주석과 공산당 총서기직을 함께 맡고 있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을 이끌고 있다.
‘7룡이 중국을 이끈다’…중국의 지도체제
중국 지도체제의 특징은 여러 사람이 모여 중요 사항을 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라는 점이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상무위원은 예전엔 9명이었는데 현재는 7명이다. 그래서 ‘칠룡치수(七龍治水, 7명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권력을 나눠 중국을 통치한다)’는 말이 생겨났다.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 총리,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위정성 정협 주석, 류윈산 이데올로기 담당,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장가오리 상무부총리 등이 현재의 ‘칠룡’이다.
강효백 경희대 중국법학과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권력체계는 공산당원, 공산당 전국대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 중앙위 위원, 정치국원,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이어지는 6중 동심원 구조”라며 “정치국 상무위는 이 동심원 구조의 최고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집단지도체제가 약화되고 시진핑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도자 선출 방식과 장단점
중국의 지 도자 선출은 △공산당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가(당성) △일을 맡고 얼마나 성과를 냈는가 △글로벌 마인드는 갖췄는가가 기준이다. 중국에서 출세하는 길은 공산당에 입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 주석도 여러 차례 떨어졌을 정도로 공산당에 들어가는 건 어렵다. 공산당원이 되고 나선 ‘업적’이 있어야 한다. 공산당 학교인 중앙당교에 입학해 학습할 정도가 되면 비로소 베이징의 중앙 정치무대에 설 수 있게 된다.
중국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숨어 있는 규칙(잠규칙, 潛規則)’이 있다. △최고 지도부는 10년마다 교체한다 △고위 인사는 연령·정치경력·업무능력 등 3가지를 보고한다 △67세는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할 수 있지만 68세는 그럴 수 없다(칠상팔하, 七上八下)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능력 중심으로 인재를 뽑는다고 해도 중앙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리더가 될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국 공산당이 운영하는 청년 조직), 태자당(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를 뜻하는 용어), 상하이방(상하이 출신의 인사들) 출신이란 말이 생겨났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 중국식 선출 방식은 장단점을 갖고 있다. 능력 있는 지도자가 10년 동안 장기적 관점으로 국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반면 권력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 독재에 빠지거나 부패하기 쉽다는 건 약점이다. 마오쩌둥에 대해 ‘잘한 일 30%, 못한 일 70%(功3, 過7)’로 평가하는 것처럼 지도자를 평가할 때 ‘옛일을 잊지 않고 훗날의 스승으로 삼는(前事不忘 後事之師)’ 전통은 본받을 만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에서 '분발유위'<奮發有爲>로…중국 외교정책 적극 행보로 변화
덩샤오핑 이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중국의 외교 정책도 드라마틱하게 변화했다.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도광양회(韜光養晦)’는 ‘빛을 감추고 그믐달을 키운다’는 뜻이다. 때를 기다리며 힘을 기른다는 얘기다. 아직 국력이 약하니 경거망동하게 나서지 말고 진중하게 실력을 키우는 정책이다. 과거 덩샤오핑이 내세운 중국의 외교 방침이었다. 덩샤오핑의 뒤를 이은 장쩌민은 ‘유소작위(有所作爲, 힘쓸 곳이 있으면 힘을 쓴다)’를, 후진타오는 ‘화평굴기(和平起, 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외교의 최우선 방침으로 추진했다. 시진핑 현 주석은 ‘분발유위(奮發有爲, 할 게 있으면 적극적으로 분발해 한다)’는 게 외교 정책 방향이다.
‘분발외교’로 대표되는 중국의 현 외교 정책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대한 대항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입김을 약화시키고 태평양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동중국해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여러 국가와 영토 분쟁을 겪고 있는 것도 분발외교의 영향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