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인공지능의 '섬뜩한 진화'…알파고, 인간두뇌를 넘어서다
인공지능(AI)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바둑 고수’ 이세돌을 연거푸 이겼다.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셈이다. 신문 지면 제작상 2~5국의 승패는 반영하지 못했지만 두 판의 결과만으로도 인공지능의 진화속도를 가늠하기엔 충분하다. 인공지능은 자기학습(deep learning)을 통해 하루하루 인간의 뇌를 닮아간다. 알파고가 10의 170승이라는, 거의 무한의 ‘경우의 수’가 얽키고설킨 바둑에서 ‘인간 최고’를 누른 건 AI가 인류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영민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인간보다 똘똘해진 인공지능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인류를 대표’하는 이세돌 9단의 대결은 세계적 관심사였다. 인공지능의 진화 정도를 가늠하는 시험대이기도 했다. 대국전 분석은 ‘이세돌 우세’였다. 이 9단이 다섯 판을 모두 이길거라는 전망도 많았다. 한데 결과는 의외였다. 첫 대국도, 둘째 대국도 인공지능 알파고가 모두 이겼다. 그것도 이 9단이 두 판 모두 중간에 손을 들었다. 그만큼 알파고의 ‘수읽기’는 정확했다.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바둑 국가대표팀 감독)은 “알파고가 초일류 기사도 감행하기 부담스러울 정도의 초반 승부수를 1분도 안돼 던졌다”고 평가했다.

알파고는 침착하고 날카로웠다. 형세를 보는 판단력, 수를 읽는 직관력이 인간을 뺨쳤다. 정책망(수의 위치 계산)과 가치망(승률 계산)을 활용해 프로기사를 뛰어넘는 바둑을 뒀다. 알파고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인공지능이라 실수를 해도 당황하지 않고 최선의 다음수를 찾았다. 실수하면 평정심이 흔들리는 사람과는 달랐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는 국면에선 과감히 공격적 수를 뒀다. 20여년 전 체스 세계 챔피언을 이긴 IBM의 인공지능 ‘딥블루’는 1초에 2억가지의 착점방법을 계산했지만 알파고는 1초당 10만가지를 계산하는데 불과하다. 처리데이터가 적어지면서 대응수가 빠르고 정확해진 것이다. 이 9단이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허를 찔렀지만 자가학습으로 응용력을 키운 알파고는 그 때마다 날카롭게 대응했다.

산업생태계 바꾸는 ‘인공지능’

제프 딘 구글 브레인팀 연구원
제프 딘 구글 브레인팀 연구원
1996년 2월10일 IBM의 컴퓨터 딥블루가 당시 체스 세계 챔피언인 가리 카스파로프를 꺾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부터 미국 일본 등 선진국과 각국 기업은 인공지능에 주목하고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딥블루 이후 IBM은 인공지능 기능을 고도화한 자연어 소통 슈퍼컴퓨터 왓슨에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했다. 구글은 2001년 이후 지난해까지 14년간 인공지능 관련 기업을 인수하는 데만 280억달러(약 33조7000억원)를 쏟아부었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진화는 미래를 내다본 구글의 과감한 투자의 결과다.

반면 한국의 인공지능 관련 투자액은 미미하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의 인공지능 분야 투자는 180억원에 불과했다. 민간 기업들이 자율주행자동차, 빅데이터, 로보어드바이저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에 따르면 2015년 정보통신기술(ICT) 수준 조사에서 한국 인공지능은 선진국과 2.6년의 기술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공지능이 몰고 올 산업혁명에 올라타기 위해선 관련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최두환 포스코ICT 사장은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계기로 인공지능의 수용이 굉장히 빨라질 것”이라며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야에 인공지능을 적용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계도 상상을 할까?

알파고는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컴퓨터 연산능력의 급속한 발전과 빅데이터, 디지털은 인공지능 진화에 속도를 붙인다. 체스, 퀴즈, 바둑 등의 대결을 통해 인류와 두뇌싸움을 벌인 인공지능은 최근 예술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구글의 인공지능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 29점은 9만7000달러에 판매됐다. 인공지능은 가상현실, 자율주행자동차, 드론, 가전제품 등에도 탑재돼 기능을 업그레이드한다. 인공지능이 진화하면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지혜로운 공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공지능이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처럼 상상력을 갖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상상력, 자의식 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인류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