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투쟁노조…슬픈 '발레오 이야기'
우리나라 최고법원인 대법원이 지난 19일 노동조합 활동에 큰 변화를 예고하는 판결을 내렸다. ‘개별 기업노조는 산별노조에서 탈퇴해 독자적으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 판결이 나오자 주요 언론들은 ‘지난 20년간 막강한 힘을 휘둘렀던 산별노조가 타격을 입게 됐다’고 크게 보도했다. 왜 언론이 이 판결을 비중있게 처리한 것일까?

이 재판은 프랑스계 자동차 부품업체인 경북 경주의 발레오전장(電裝) 노조가 산업별 노조인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기로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발레오 노조는 민노총의 불법 과격투쟁이 조합원의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금속노조 탈퇴를 결정했다. 조합원의 탈퇴 찬성률은 97.5%에 달했다.

2010년 초부터 발레오전장은 금속노조 주도의 과격한 단체행동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회사 측은 직장폐쇄로 맞섰다. 회사의 경영 상태는 악화됐고 한국 철수까지 거론됐다. 직원들의 일자리가 통째로 흔들렸다. 노조와 조합원은 위기감을 느꼈다. 탈퇴를 결정하자 금속노조는 소송을 걸었다. 1심과 2심은 산별노조 탈퇴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독립성과 조직을 갖춘 지회가 자체 의결을 통해 탈퇴를 결정했다면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가입이 자유라면 탈퇴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다.

발레오전장 사건은 지난 30년간 지속된 과격한 노동운동을 되돌아보게 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산업계에는 노동운동 바람이 불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산업별 노조가 허용되자 노동운동은 더욱 과격해졌고, 정치 투쟁으로 오염됐다. 노조의 힘에 눌린 기업들은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로 떠났다.

노동운동은 노동법이 보장하는 근로자의 권리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과격해 질 경우 회사가 어려워지고 오히려 근로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조가입률이 1989년 19.8%에서 최근 10%로 급감한 것은 노동운동이 근로자의 공감을 얻지 못한다는 증거다. 미국 노조가입률이 1950년대 35%에서 작년 11%로 떨어진 것과 맥을 같이한다. 자동차 조선 등 대기업 중심인 10% 노조가 전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대기업 노조는 파업하면 임금 인상 등의 이익을 보지만 납품업체들은 납품 중단 등의 후유증에 시달린다.

투쟁 일변도의 노동운동은 한물간 ‘마르크스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본은 노동의 적’ ‘자본가는 착취자, 노동자는 피착취자’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에게 대화가 아닌 투쟁을 부추기는 배경이다. 자본과 노동은 적이 아니라 친구다. 노사가 화합해야 기업이 잘 되고 기업이 잘 돼야 근로자의 몫도 늘어난다. 대법원 판결이 노동운동에 미칠 파장과 의미, 노동조합의 명암을 4~5면에서 알아보자.

■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뭘까?

커버스토리 ‘발레오 전장의 산별노조 탈퇴 사건’은 지난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다뤄졌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13명이 참여해 다수 의견으로 결론을 내는 재판을 말한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바꿔야 하는 등 사안이 중대할 경우 대법관 모두의 의견을 물어 선고한다. 원래 대법관은 14명이지만 법원행정처장은 재판에 참여하지 않는다. 발레오 전장 사건에선 다수인 8명이 “발레오 전장 노조의 산별노조 탈퇴 정당”의견을 냈다. 대법원은 서울 서초동에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