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대로 떨어진 국채 10년물 금리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1일 사상 처음 연 1%대로 떨어졌다. 중국 성장 둔화와 국제 유가 급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국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07%포인트 하락(채권 가격 상승)한 연 1.995%에 마감했다. 전날 기록한 사상 최저치(연 2.002%)를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1월22일 한국경제신문 ☞ 만기가 10년인 장기 국고채 금리(이자율)가 사상 처음으로 연 1%대에 진입했다. 금리가 떨어지면 돈을 빌리는 가계나 기업들에 이익이다. 이자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고채 10년물(10년 만기) 금리 연 1%대 진입은 우리 경제에 희망보다는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이나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으로 가는 전주곡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국고채 금리란?
국고채는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의 씀씀이(지출)가 세수(조세 수입)를 초과하는 경우 발행된다. 채권(bond)이란 정부, 공공기관(공기업), 기업, 금융회사 등이 비교적 장기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다. 채권은 만기가 되면 채권에 표시된 원금을 상환한다. 또 정해진 기간마다 약정된 이자를 지급한다. 이자는 돈을 빌리는 대가로 지급하는 금액이다. 금리(이자율)는 빌린 돈(원금) 대비 이자 비율이다. 금리는 보통 △돈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수록 △빌리는 쪽의 신용이 낮을수록 △빌리는 기간이 길수록 높다. 빌려주는 위험(리스크)이 커질수록 금리는 올라간다.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는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발행하는 채권보다 신용도가 높다. 그래서 국고채 금리는 회사채나 금융채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
아무리 회사채나 금융채보다 안전하다고 해도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연 1%대로 떨어졌다는 건 ‘쇼킹한 사건’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5%로 낮추면서 ‘1%대 금리’ 시대가 열렸지만, 10년짜리 장기 금리까지 연 1%대로 내려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고채 금리는 이후 약간 올라 연 2%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금리는 우리보다 훨씬 경제 규모가 크고 1인당 국민소득도 많은 미국의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 10년물 금리보다 더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국고채 금리가 떨어진 것은 한국의 장기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이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단기 악재보다는 경기 전망 등 장기 요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원석 LS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의 연 1%대 진입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 디플레’에 빠졌던 일본과 비슷
금리가 떨어져도 경기가 오히려 뒷걸음질하는 현상은 버블(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일본에서도 벌어졌다. 일본은 당시 제로(0)에 가까운 초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20년’ 수렁에 빠졌다. 최근 우리 상황을 보면 ‘잃어버린 20년’에 돌입하기 직전의 일본과 놀라울만치 비슷하다. 한은이 사상 최저 기준금리를 8개월째 유지하며 돈을 풀고 있고, 정부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10% 늘린 343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경기는 여전히 냉골이다. 한은에 따르면 2010년 전년 대비 4.4%였던 민간 소비 증가율은 2015년 1.8%로 급락했다. 민간 투자 역시 같은 기간 증가율이 10.6%에서 3.2%로 3분의 1토막 났다. 투자 부진은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지고,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키면서 시중 금리 하락이란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일본도 1992년부터 3년간 64조2000억엔의 재정을 쏟아붓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1995년 기준금리를 연 0%대로 끌어내렸다. 시중의 부동자금 규모가 1000조엔이 넘었다. 하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경제 주체들이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6~1990년 연평균 4.7% 성장했던 일본 경제는 1991~1995년 연평균 1.5% 성장에 그쳤다. 1995년 물가상승률은 -0.12%로 195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1990년대 초 연 8%대에서 1998년 연 0%대로 급락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장기 국채 금리가 반영한 것이다. 저금리 상황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이어갔다.
구조개혁 부진이 원인
1990년대 일본과 현재 한국이 처한 여건엔 다소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세계 경제가 좋았던 반면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거품 붕괴 당시 일본과 현재의 대한민국은 상당 부분 닮았다.
일본의 장기 디플레 원인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게 구조개혁의 지연이다. 버블 붕괴 당시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미봉책만 추진했다. 경쟁력이 없는 ‘좀비 기업’ 퇴출을 미적댔으며, 금융과 노동개혁도 지지부진했다. 1985년 금융개혁제도법 제정에 착수했지만 7년 동안 회의만 90여차례, 보고서만 33개 내고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 또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도 디플레의 원인이다. 1995년 만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만 15세 이상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05년에는 고령자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를 맞이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생산과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 규모는 쪼그라든다.
최대 걸림돌은 국회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도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2016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3704만명이다. 이게 30여년 뒤인 2050년에는 2535만명으로 1000만명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점도 비슷하다. 정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며, 파견근로와 기간제 근로를 확대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 노조와 정치권의 반대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포로가 돼 과거 일본처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경제 위기를 야기한 주범쯤으로 몰려 기를 못 펴고 해외로만 나가려고 한다. 이 와중에 중국 기업들은 한국을 추월해 세계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인데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때처럼 지도자들은 4월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한때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넘어섰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2만달러에서 맴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전에 저성장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며 “전 국민이 합심하지 않으면 과거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피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21일 사상 처음 연 1%대로 떨어졌다. 중국 성장 둔화와 국제 유가 급락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한 가운데 국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겹치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07%포인트 하락(채권 가격 상승)한 연 1.995%에 마감했다. 전날 기록한 사상 최저치(연 2.002%)를 하루 만에 갈아치웠다.
-1월22일 한국경제신문 ☞ 만기가 10년인 장기 국고채 금리(이자율)가 사상 처음으로 연 1%대에 진입했다. 금리가 떨어지면 돈을 빌리는 가계나 기업들에 이익이다. 이자 부담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고채 10년물(10년 만기) 금리 연 1%대 진입은 우리 경제에 희망보다는 우려를 던져주고 있다. 일본처럼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이나 장기 디플레이션(경기침체)으로 가는 전주곡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왜 그런지 알아보자.
국고채 금리란?
국고채는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다. 정부의 씀씀이(지출)가 세수(조세 수입)를 초과하는 경우 발행된다. 채권(bond)이란 정부, 공공기관(공기업), 기업, 금융회사 등이 비교적 장기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종의 차용증서다. 채권은 만기가 되면 채권에 표시된 원금을 상환한다. 또 정해진 기간마다 약정된 이자를 지급한다. 이자는 돈을 빌리는 대가로 지급하는 금액이다. 금리(이자율)는 빌린 돈(원금) 대비 이자 비율이다. 금리는 보통 △돈의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수록 △빌리는 쪽의 신용이 낮을수록 △빌리는 기간이 길수록 높다. 빌려주는 위험(리스크)이 커질수록 금리는 올라간다.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국고채는 일반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발행하는 채권보다 신용도가 높다. 그래서 국고채 금리는 회사채나 금융채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다.
“우리 경제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
아무리 회사채나 금융채보다 안전하다고 해도 국고채 10년물 금리가 연 1%대로 떨어졌다는 건 ‘쇼킹한 사건’이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6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5%로 낮추면서 ‘1%대 금리’ 시대가 열렸지만, 10년짜리 장기 금리까지 연 1%대로 내려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고채 금리는 이후 약간 올라 연 2% 안팎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현재 금리는 우리보다 훨씬 경제 규모가 크고 1인당 국민소득도 많은 미국의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 10년물 금리보다 더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이처럼 국고채 금리가 떨어진 것은 한국의 장기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투자자가 많다는 뜻이다. 통상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단기 악재보다는 경기 전망 등 장기 요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원석 LS자산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의 연 1%대 진입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에 점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 디플레’에 빠졌던 일본과 비슷
금리가 떨어져도 경기가 오히려 뒷걸음질하는 현상은 버블(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0년대 초 일본에서도 벌어졌다. 일본은 당시 제로(0)에 가까운 초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20년’ 수렁에 빠졌다. 최근 우리 상황을 보면 ‘잃어버린 20년’에 돌입하기 직전의 일본과 놀라울만치 비슷하다. 한은이 사상 최저 기준금리를 8개월째 유지하며 돈을 풀고 있고, 정부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10% 늘린 343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경기는 여전히 냉골이다. 한은에 따르면 2010년 전년 대비 4.4%였던 민간 소비 증가율은 2015년 1.8%로 급락했다. 민간 투자 역시 같은 기간 증가율이 10.6%에서 3.2%로 3분의 1토막 났다. 투자 부진은 잠재성장률 저하로 이어지고, 우리 경제 전반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키면서 시중 금리 하락이란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일본도 1992년부터 3년간 64조2000억엔의 재정을 쏟아붓고,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1995년 기준금리를 연 0%대로 끌어내렸다. 시중의 부동자금 규모가 1000조엔이 넘었다. 하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않고 디플레이션이 심화되면서 경제 주체들이 현금을 장롱에 쌓아두는 현상이 나타났다. 1986~1990년 연평균 4.7% 성장했던 일본 경제는 1991~1995년 연평균 1.5% 성장에 그쳤다. 1995년 물가상승률은 -0.12%로 1958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0년 만기 일본 국채금리는 1990년대 초 연 8%대에서 1998년 연 0%대로 급락했다. 불투명한 미래를 장기 국채 금리가 반영한 것이다. 저금리 상황에서 수익을 내지 못한 금융회사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을 이어갔다.
구조개혁 부진이 원인
1990년대 일본과 현재 한국이 처한 여건엔 다소 차이가 있다. 1990년대 당시에는 세계 경제가 좋았던 반면 지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거품 붕괴 당시 일본과 현재의 대한민국은 상당 부분 닮았다.
일본의 장기 디플레 원인으로 우선 꼽을 수 있는 게 구조개혁의 지연이다. 버블 붕괴 당시 일본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 대신 미봉책만 추진했다. 경쟁력이 없는 ‘좀비 기업’ 퇴출을 미적댔으며, 금융과 노동개혁도 지지부진했다. 1985년 금융개혁제도법 제정에 착수했지만 7년 동안 회의만 90여차례, 보고서만 33개 내고 문제 해결에는 실패했다. 또 인구의 급속한 노령화와 저출산에 따른 ‘인구 절벽’도 디플레의 원인이다. 1995년 만 65세 이상 고령자 비중이 14%를 넘는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만 15세 이상인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2005년에는 고령자 비율이 20%인 초고령사회를 맞이했다. 인구가 감소하면 생산과 소비가 줄어들고 경제 규모는 쪼그라든다.
최대 걸림돌은 국회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도 올해를 정점으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기 시작한다.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 줄어드는 것이다. 2016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3704만명이다. 이게 30여년 뒤인 2050년에는 2535만명으로 1000만명 이상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개혁이 지지부진한 점도 비슷하다. 정부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며, 파견근로와 기간제 근로를 확대하는 등 노동시장의 유연안전성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일부 대기업 노조와 정치권의 반대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포로가 돼 과거 일본처럼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악화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대기업들은 경제 위기를 야기한 주범쯤으로 몰려 기를 못 펴고 해외로만 나가려고 한다. 이 와중에 중국 기업들은 한국을 추월해 세계 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다.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인데도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때처럼 지도자들은 4월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한때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렸던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를 넘어섰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2만달러에서 맴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에 진입하기도 전에 저성장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라며 “전 국민이 합심하지 않으면 과거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을 피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