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그리스 몰락…운명은 34년전 결정됐다
나라마다 운명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있다. 한국에는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도입(이승만)과 경제개발 리더십(박정희)이 맞물린 ‘대반전의 계기’가 있었다. 이후 대한민국은 고속성장을 거듭해 오늘날 선진국 문턱에 바짝 다가설 수 있었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결정적 계기’다. 그리스에도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1981년이 바로 그 해다. 정치경제 분석가들은 사회당 출신의 안드레우스 파판드레우가 총리로 취임한 그 해를 그리스의 운명을 바꾼 해로 기록한다. 그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그리스의 쇠퇴는 가속화되었다..파판드레우와 망국의 길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는 1981년 사회당의 정치인 파판드레우를 총리로 앉혔다. 그가 집권하기 전 그리스 경제는 좋았다. 이전 50년 동안 연평균 5%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꾸준히 달성했다. 국가부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28% 수준에 불과했다. 1981~1989년과 1993~1996년 두 번 총리가 된 파판드레우는 과잉복지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을 다 줄 것”이라고 선언한 그는 연금과 임금을 올려 주었다. 의료보험을 대폭 확대했고, 대학입학 불합격자에게 해외유학 기회를 줬고, 해외거주자에게 항공권을 무료로 제공했다.
파판드레우 총리가 1996년 사임했지만, 그리스는 이미 복지에 중독돼 있었다. 보수당이든 사회당이든 복지공약 경쟁을 벌였다. 유권자들은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는 당에 표를 줬다. 퇴직 연금은 생애소득 중 최고 높은 수준의 95%까지 지급해줬다. 평균 생애소득으로는 120%까지 줬다. 근로자들은 퇴직하기만을 기다렸다. 여자는 50세, 남자는 55세면 퇴직할 수 있었다.
4명 중 1명이 공무원
그리스는 민간부문은 없고 공공부문만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공무원이 많다. 인구 1100만명 중 25%가 경찰, 소방수, 관료 등 공무원이다. 모두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다. 공무원들은 자신의 연금과 임금만 올렸다.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유로존의 채권단이 요구하는 긴축안에 반대표를 던진 유권자가 60% 이상인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공무원도 자기이익이 우선이었다.
공공부문의 비대는 전면 무상의료 시행과 함께 국가부채를 눈덩이처럼 불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국가에서 빌린 돈이 400조원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올해 예산이 376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는 관광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비율은 5.7% 대 90%다. 경쟁력 있는 제조업이 없는 점도 그리스 경제의 약점이다.
무리한 유로존 가입
무리한 유로존 가입도 경제위기의 한 원인이다. 그리스는 1999년 유로존에 가입하면서 드라크마화를 버리고 유로화를 사용했다. 그리스가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했다는 의미이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이자율을 낮추고 화폐가치도 하락시켜야 하는데 이를 전혀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드라크마화를 유로화로 바꿀 당시부터 경제체질에 비해 화폐가치가 높아 그리스는 무역적자를 내고 있었다. 무역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으나 손을 쓸 방도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리스의 대규모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시장에 알려지자 국채 가격이 폭락하면서 국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오디세이는 없고 조르바만
일각에서는 북유럽 국가나 독일도 그리스 처럼 복지 수준이 높다고 지적한다. 특히 그리스의 GDP대비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이 24%정도로 30%대인 독일 프랑스 보다 높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북유럽이나 독일 프랑스는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는 제도가 갖춰져 있다. 기업인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를 없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해서 소득이 늘어나면 세금도 많이 걷는다. 사회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없고 사유재산권과 외국인 투자도 철저히 보호한다.
온갖 유혹과 고난을 이겨내고 귀향하는 불굴의 오디세이가 지금 그리스에 없다. 그저 무책임과 자유만을 강조하는 조르바만 그리스에 가득한 듯하다. 그리스에는 경제에 필요한 시장, 자유, 개인, 혁신, 경쟁, 법치가 없다. 반면 나태, 방만, 무책임, 평등, 공짜만 넘치는 듯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이태훈 한국경제신문 인턴기자(세종대 경영4년) taehoon03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