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와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국내·해외 자동차 생산량을 노사 합의로 결정하자는 내용을 담은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 요구안을 마련했다. 노조의 통상임금 확대 요구에다 생산량 조절 요구까지 더해져 현대차의 올해 임단협은 타결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 5월14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생산성 형편 없는데 임금은 치솟고…해외로 공장 내쫓는 자동차 노조
☞ 자동차는 IT(정보기술)·전자와 함께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두 기둥으로 부를 수 있다. 생산이나 수출, 고용(일자리) 등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다. 자동차 수출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13%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자동차의 경영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는 건 수많은 협력 중견·중소기업들의 일자리와 밀접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 “해외생산량도 노사합의로”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안(案)에 ‘국내 생산량 및 전체 생산량(국내 공장 및 해외 공장 총 생산량)에 대해 노사 간 합의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현대차 노사는 그동안 국내 생산량에 대해서만 합의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노조가 해외를 포함한 전체 생산량까지 합의하자고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노조의 황기태 대외협력실장은 “2020년까지 172만대를 생산하는 해외 공장이 신·증설되면 국내 생산량과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며 “조합원의 고용불안을 막기 위해 임단협안에 생산량 합의를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미국 중국 인도 체코 러시아 터키 브라질 등에 공장을 갖고 있다. 중국에는 현재 제4, 5공장을 건설중이다. 미국 2공장(30만대) 신설, 인도 브라질 공장 증설 등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판매량이 늘어나는 데 맞춰 설비를 확충하는 전략이다.

현대차 노조는 또 정년을 65세로 연장하고, 임금을 평균 15만9900원(기본급 대비 7.8%) 올리며,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줄 것 등도 임단협 요구안에 포함시켰다.

이같은 노조측의 임단협안에 대해 “생산량은 회사의 고유한 경영판단 영역이라는 점에서 노조가 간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대차 노조의 요구는 경영권을 침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노조는 국내 공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전환배치 수용 등 회사 측 요청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김해룡 울산대 경영학부 교수도 “생산량은 절대적 경영권의 영역으로 노조가 합의하자고 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생산성은 낮고 임금수준은 높아”

현대차는 국내 어느 공장에서 어떤 차종을 얼마 정도나 생산할지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2012년 9월 현대차는 1000억원을 들여 울산 4공장 설비 개선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듬해 7월 ‘맥스크루즈’와 ‘그랜드 스타렉스’ 모델의 주문이 밀리자 4공장 1라인의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32대에서 38대로 늘릴 것을 노조에 요청했다. 하지만 노조 반발로 증산계획은 1년 이상 표류하다가 지난해 9월말에야 UPH를 36대로 늘릴 수 있었다.

기업들이 잘 팔리는 제품을 더 많은 근로자를 투입해 더 많이 생산하는 건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현대차는 잘 팔리는 차종을 생산하는 라인에 인원을 더 투입하려면(전환배치) 노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노조가 합의해주지 않으면 더 많은 차를 생산할 수 없다. 실제로 2011년 울산 1공장 노조원들이 전환배치를 거부하면서 2만4500대의 생산차질을 빚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대차 국내 공장의 경쟁력은 노조가 이처럼 잘 팔리는 차 생산을 늘리는 걸 반대해도 괜찮을 정도로 높을까?자동차 회사의 생산성은 △차량 1대를 만들 때 들어가는 시간(HPV·Hours Per Vehicle)이나 △시간당 자동차 생산대수(UPH·Unit Per Hour)를 기준으로 따진다.

현대차 사측에 따르면 자동차 한 대 생산에 소요되는 시간(2014년 6월 기준)은 현대차 미국 현지 공장이 14.7시간, 체코 공장 15.3시간, 중국 공장 17.7시간, 러시아 공장 16.2시간, 브라질 공장 20시간인 데 비해 국내 공장은 무려 26.8시간이나 된다. 현대차 국내외 공장 중 세계 꼴찌다. 국내 공장에서 차 한 대가 조립돼 나오는 시간이 해외 공장보다 30~40%나 긴 것이다. UPH를 따져봐도 마찬가지다. 미 앨라배마 현지공장의 UPH는 73대, 조지아 공장은 66대다. 반면 현대차 울산공장은 53대, 기아차 소하리 공장은 44대 수준이다.

생산성이 낮으면 임금도 낮아야 하는 데 국내 공장의 임금 수준은 어떨까? 현대차 국내 공장의 평균 임금은 2001년 4242만원에서 2008년 6774만원, 2013년 9458만원, 지난해 9700만원으로 치솟았다. 중국 브라질 체코 현지 공장을 크게 웃도는 것은 물론 미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노조도 사회의 일원으로 행동해야”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생산성 형편 없는데 임금은 치솟고…해외로 공장 내쫓는 자동차 노조
이렇듯 생산성은 낮고 임금은 높은 데 파업은 연례행사다. 게다가 현대차 국내 공장은 새 모델을 내놓거나 생산라인 일부 설비를 늘릴 때마다 인력 전환배치 등을 위해 노조와 협상해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짧게는 한두 달, 길게는 1년씩 지속되는 생산 차질은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밖에 없다.

한국GM도 사정은 비슷하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한국GM이 아시아 수출 기지의 역할을 부분적으로 한국에서 인도로 옮길 것이라고 보도했다. GM 전체 생산량의 20%를 담당했던 한국GM의 인건비가 최근 5년새 50% 이상 뛰면서 경쟁력이 떨어져서다. 세르지오 호샤 한국GM사장은 “(한국 자동차업계의) 인건비가 통상임금을 포함해 최근 5년간 50% 인상됐으며, 이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세계 100개가 넘는 GM 공장에서 한국 근로자들의 인건비가 가장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GM 한국 공장의 임금은 인도 공장의 10배 정도다. 스테펀 저코비 GM 해외사업부문 사장도 “강력한 노조는 큰 어려움”이라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국GM이 효율성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차가 해외 생산비중을 높이려 하고, 한국GM이 아시아 주력 공장을 한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건 강성 노조로 인해 기업을 정상적으로 경영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인건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비싼데 생산성은 낮고, 설비를 늘리거나 생산차종을 바꾸려면 노조와 협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투자를 하려 할 것인가. 회사가 경쟁력을 잃으면 일자리가 없어진다. 자동차 노조의 강성투쟁은 제 발등에 도끼를 찍는 격이다.

현대차엔 일종의 고용세습제까지 있다. 노조원 자녀가 현대차에 입사하려 할 경우 가산점 등을 주는 제도다. 매년 파업을 벌이고, 사측의 고유 경영권한에까지 간섭하는 현대차 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별로 좋지 않다. FTA(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국가적으로 자동차 산업을 밀어주는 것은 일자리를 늘리고 국민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에서다. 하지만 현대차 귀족 노조는 이런 국민적 후원을 자기 배만 불리고, 오히려 일자리를 줄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해외 공장 증설을 사전에 협의하라고 사측에 요구하기에 앞서 국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져야 기업이 해외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지 못하면 노조의 국내 공장 일자리 수호 구호는 공염불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최근 “한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는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으니 긴장하라”고 말했다. 기업에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있는 것처럼 노조에도 사회적 책임(USR·Union Social Responsibility)이 부여돼 있다. 사회가 기대하는 상식적 수준에서 책임있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