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세계경제의 '뇌관' 그리스…성장보다 복지에 취하다
그리스는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 사상을 가졌다. 유권자인 국민이 다수결 방식으로 권력자와 정부를 바꾼다는 의미다. 민주주의가 여러 정치 수단 중 가장 번성하는 이유도 이 같은 평화적 교체의 장점에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모두 잘살까? 그렇지는 않다.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고 있지만, ‘민주주의=잘사는 나라’는 아니다.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세우지만 거기에 장자크 루소의 주권재민은 없다. 오히려 독재와 가난만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원조인 그리스조차 요즘 엉망진창이다. 정치와 경제가 파탄 직전이다. ‘민주주의 함정’에 빠진 때문이다. 우리가 신(神)처럼 떠받들고 있는 ‘데모크라시(Demos:시민+Kratos:권력)’에 함정이 있다고?

대리인들의 낭비

아테네 전당포 거리
아테네 전당포 거리
민주주의에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첫째, 우리가 경제학에서 많이 배우는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이 숨어 있다. 공유지의 비극은 한마디로 ‘모두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뜻을 품고 있다. 1968년 생물학자 가레트 하딘이 말한 대로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목초지는 주인 없는 목초지이기 때문에 금방 황무지가 됐다’는 얘기 아니던가.

한스 헤르만 호페라는 학자는 민주주의도 이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주권이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말은 국민 모두에게 없다는 말과 같지 않으냐는 것이다. 주인 의식이 흐리면 무엇이든 마구 쓰게 돼 있다. 주권자들은 국가에 대한 소유권적 의식이 부족해 포퓰리즘에 노출되기 십상이다. 그리스가 딱 그렇다.

여기에서 또 다른 약점이 노출된다. 둘째 문제는 바로 ‘주인-대리인(pricipal-agency)’이다. 만일 유권자가 주인이라고 상정할 때 유권자가 뽑은 정치인과 정부는 대리인이 된다. 소유권을 갖지 않은 대리인은 패악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주인 의식이 없는 대리인들은 나라의 귀중한 재화를 국민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사용 하려는 유혹에 빠질 때 예산을 마구 늘리고, 특정 집단에 아부하는 정책을 만들고 지원한다.

복지도 무차별적으로 늘려 인심을 얻으려 한다. 다음 선거에 이겨야 하기 때문에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책에 자원을 집중한다. 대리인의 타락이다. 유권자 역시 지역별로, 업종별로 나뉘어 특혜를 요구하고, 표를 준다. 그리스도 대리인들이 타락한 끝에 유럽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그리스 상점 종업원들이 쇼핑객으로 북적이는 아테네 에르무 거리에서 ‘일요일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그리스 상점 종업원들이 쇼핑객으로 북적이는 아테네 에르무 거리에서 ‘일요일에는 절대 일하지 않는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다.
다수결의 폭력성

민주주의가 철칙으로 여기는 다수결(rule of majority)도 완벽한 것은 아니다. 다수결은 민주정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다수의 표를 받은 권력은 공권력 사용권을 갖는다. 쟁점은 다수의 표를 받은 자의 사후 행동이다. 정당성을 부여받은 후에 다수는 타락할 수 있다. 독일 히틀러가 그랬고, 북한 김일성이 그랬고, 소련 스탈린이 그랬고, 베네수엘라이 차베스가 그랬고, 수많은 민주주의 나라도 그랬다. 다수가 만들어내는 대중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 같은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인류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갔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다수의 힘을 배경으로 전체주의 악마로 변했다.

다수가 모든 것을 갖는 체제는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그리스 역시 다수표를 얻기 위해 정치세력이 ‘복지천국’을 약속했고, 유권자들도 여기에 동조했다. 놀고먹은 결과, 그리스는 더 이상 놀고먹을 것이 없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다수결의 비극이다.

민주주의는 또 입법 과잉의 주범이 되기도 한다. 국회의원은 선출되기만 하면, 거의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휘두른다.

특정 이익집단을 위한 지원법도 만들고, 특정 계층을 위한 세금감면법도 만들 수 있다. 몇 년 사이 논란이 된 각종 경제민주화 법률은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악법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음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국회의원들은 예산을 감안하지 않고, 풀빵 찍어내듯 마구마구 법을 만들어낸다. 그리스도 예외가 아니다. 소방관, 교사, 철도원, 우체부 지원법 등이 홍수를 이뤘다.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病

무제한적 민주주의를 절제된 또는 제한적 민주주의로 단속해야 한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앞에 지적한 대로 무제한적 민주주의는 정부 지출 증가, 세금 증가, 규제 증가 등을 필연적으로 초래한다. 국가 권력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으로 변한다.

이런 현상은 모두 다수표를 얻어 재집권하려는 데서 비롯된다. 작은 정부와 입법부 견제가 제한적 민주주의의 관건이다. 유권자의 성숙도와 교육도 중요하다. 프랑스 철학자 알시스 드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했다. 놀고먹자는 국민에, 놀게 해주겠다는 그리스 정부가 예다.

■ 두 권의 책…민주주의는 실패한 神·역사의 종언

본문은 한스 헤르만 호페의 ‘민주주의는 실패한 신인가(Democracy: The God That Failed)’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서 인용했다. 두 권은 고교생이 읽기에 조금 벅찰 수 있다. 하지만 석학들이 쓴 책이어서 문장과 글의 흐름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호페는 민주주의를 의심하고 부정한 대표적인 학자에 속한다. 그는 민주주의보다 군주정의 장점을 더 옹호하기도 했다. 그의 군주정과 민주주의 대비는 우리의 상식에 의심을 품어볼 것을 가르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신으로 우러러 본다. 요즘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비판하면 이상하게 볼 게 뻔하다. 하지만 호페는 군주정에도 장점이 많다고 했다. 나라에 소유권을 갖는 사람은 소유권이 없는 민주주의보다 여러 면에서 분명히 책임을 진다고 평한다.

후쿠야마는 1989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괴멸되자 이념전쟁은 끝났다며 ‘역사의 종언’을 썼다. 기나긴 이념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정부형태로 굳어졌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자유민주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설정됐다고 그는 봤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방만한 정부를 불러왔다. 민주주의가 타락하고 있는 셈이다. 무차별적 복지국가가 되고 있는 현실은 사회주의화의 또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