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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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후사(先公後私).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익(公益)을 앞세운다는 뜻으로, 주로 공직자나 기업·조직의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중국 역사서 십팔사략(十八史略)에는 선공후사의 유래와 관련된 일화가 나온다. 제나라 초나라 진나라 등 7대 강국이 중국 천하의 패권을 다투던 전국시대. 염파와 인상여는 약소국 조나라를 신흥 강국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하지만 군사를 통솔하는 염파에게 인상여는 ‘눈엣가시’였다. 자신은 죽음을 무릅쓰고 공을 세우는데 외교를 맡은 인상여가 ‘세치 혀’로 자기보다 높은 벼슬에 오른 것이 늘 억울하고 분했다. “내 그를 보면 결코 살려두지 않겠다.” 그는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비굴할 정도로 염파를 피했다. 조회 때도 병을 핑계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았고, 길을 가다가도 그가 온다는 소리를 들으면 귀퉁이로 몸을 숨겼다.

인상여의 측근이 참다못해 물었다. “대감의 직위는 염파보다 높고 임금과 백성의 신망도 두터운데 어찌하여 염파를 그리 두려워하십니까?” 인상여가 답했다. “흉폭한 진나라가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는 건 나와 염파장군 때문이다. 둘이 다투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내가 수치를 모르고 그를 피한 것은 나랏일을 중히 여기고 사사로움을 더 가벼이 생각한 때문이다.” 자신의 경솔함을 깨달은 염파는 그 후 인상여와 ‘죽음도 함께할 수 있는 우정’을 맺었다. 문경지교(刎頸之交)란 사자성어가 생겨난 연유이기도 하다.

선공후사 일화는 나라를 이끄는 자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겉으론 명분이나 정의를 외치면서 속으론 사리사욕을 채우고, 공익이란 그럴 듯한 포장으로 사사로운 잇속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인기에만 연연하는 정치인들이 많다. 최근 한국 정치권이 ‘뇌물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씁쓸한 자화상이다.

지도자가 인기만 좇으면 ‘다스림의 본질’을 놓친다. 정치 지도자는 국가의 번영, 국가 영속성 유지가 핵심 책무다. 막강한 원유자원을 쥐고도 베네수엘라가 전기조차 제대로 못 쓰고, 한때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던 아르헨티나가 나랏빚도 못 갚는 처지에 몰렸던 것은 눈앞의 인기에 연연한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 국가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을 약화시킨 탓이다. 반면 민영화, 복지 축소, 노동시장 개혁으로 ‘만성적 영국병’을 치유한 대처리즘(대처 전 총리의 경제정책)은 역사의 평가가 지도자 인기보다 그의 업적에 초점을 맞춘다는 걸 보여준다.

그리스가 수시로 디폴트(채무불이행) 문턱에서 서성대는 것은 지도자들이 ‘국가의 영구적 번영’이라는 본질보다 당장의 표를 얻으려는 자극적 구호나 정책에 매몰된 탓이 크다. 한정된 재원을 복지에만 쏟아부으면 국가의 성장동력은 당연히 약해진다. 포퓰리즘에 취한 정치인보다 진정으로 나랏일을 중히 여기는 정치인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4, 5면에서 그리스가 세계경제의 뇌관이 된 이유, 민주주의의 딜레마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