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핵 주권론의 딜레마
"국제사회 경제제재 우려" 반대?
핵은 기존 재래식 무기 무력화
북한이 핵(核)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어야 할까, 아니면 미국이 제공해주는 ‘핵우산’으로 만족해야 할까.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했다는 분석이 많은 터여서 우리의 핵선택은 국가안보상 최대 현안이 됐다. 핵전력은 모든 재래식 군사전력을 무용지물로 만든다는 점에서 북한의 핵보유는 우리에 대한 군사력 절대우위를 의미한다.
북한의 핵 능력은?"국제사회 경제제재 우려" 반대?
핵은 기존 재래식 무기 무력화
북한은 스스로 핵무기 보유국이라고 선언한 반면 미국과 한국 등은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인정 여부를 떠나 세 차례의 핵실험을 한 나라는 핵보유국으로 보는 게 관례다. 북한이 이에 해당한다. 특히 최근 윌리엄 고트니 미군북부사령관은 북한이 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KN-08을 실전 배치하고 핵탄두 소형화에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이 핵무기 10기가량을 보유한 것으로 미국은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이 완벽한 ‘핵무기 시스템’을 가졌느냐로 모아진다. 핵무기 시스템은 핵탄두 경량화 기술과 장거리 발사 및 제어 시스템을 완성한 개념이다. 핵탄두가 무겁고 제어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미사일을 목표지점까지 멀리, 정확하게 발사할 수 없다.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이 이 목표에 거의 다다른 것으로 본다. 재래식 무기 무력화
핵 전력은 상대국의 재래식 무기전력을 헛것으로 만든다. 핵무기가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는 전쟁 자체가 안된다. 북한의 핵전력은 한국과 미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가령 북한이 휴전선 일대에 핵무기를 배치한다고 생각해보자. 또 그것이 서울을 겨냥하고 있다면, 한국은 북한에 대해 아무런 억지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2의 6·25전쟁을 일으킬 경우 남한은 속수무책이다.북한이 핵무기를 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쏠 수도 있다고 상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국가의 국방이다. 북한 핵이 존재하는 마당에 우리만 재래식 무기 개발과 구입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은들 소용이 없다.
미국의 핵우산이 도움이 될까? 이렇게 물어보자. 서울을 구하기 위해 미국은 로스앤젤레스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없다. 이 질문은 최근 미국 학계는 물론 국방부 쪽에서 실제로 나온 것이다. 이 논리는 프랑스가 핵무기를 가질 때 실제로 사용됐다. 소련의 핵무기에 대해 프랑스는 “소련이 파리를 핵공격하면 미국은 모스크바를 공격할 수 있나”며 미국에 따졌다. 미국이 모스크바를 때릴 경우 소련은 뉴욕을 때릴 것은 뻔하다. 이 논리에 미국은 프랑스의 핵개발을 묵인했다. 미국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나라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한다. 미국은 핵보유국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는 나라다. 북한이 핵시스템을 갖추는 날, 미국의 핵우산은 ‘찢어진 우산’이 될 것으로 국내외 군사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핵무기 개발 찬성과 반대
한미원자력협정상 한국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핵물질을 재처리하지 못하게 돼 있다. 농축시설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면, 우리에게 명분이 생긴다. 국제사회가 북핵을 못 막았다면 우리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도덕적, 전략적 정당성 주장이다. 비밀리에 만드는 방법과 공개적이면서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 합법적인 방법은 ‘핵확산금지조약(NPT) 10조’ 규정을 이용하는 것이다. 10조에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각 조약 당사국들은 자국의 주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본 조약의 주제와 관련된 비상사건이 자국의 최고이익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판단한다면 본 조약으로부터 탈퇴할 수 있다. 그 당사국은 탈퇴 3개월 전에 모든 조약 당사국과 유엔 안보리에 탈퇴를 통보해야 한다.’
10조에서 말한 ‘비상사건’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이며 ‘자국의 최고 이익’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국방이다. 북한의 핵무기만큼 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 있는가? 없다. 한국이 NPT를 탈퇴하더라도 북한 핵무기 보유를 막지 못한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할 말은 별로 없다. 우리가 작심하면 핵무기를 얼마만에 만들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2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할 때 나오는 반대론의 핵심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다. 고립된 북한 경제와 달리 개방된 한국 경제는 NPT 탈퇴와 동시에 제재조치를 받을 것이라고 하는 시각이다. 금융시장과 수출시장에 먹구름이 낄 것이라고 한다. 핵을 얻으려다 경제가 망할 것이란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은 경제 규모가 크고, 자유무역협정을 많이 체결해 제재하기란 쉽지 않다는 견해가 많다.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대면하고 있는 적국이 핵무기를 가졌을 때 못 갖게 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한국은 큰 나라다.
한국 핵보유 ‘독일식 제3의 길’ 있다
독일은 소련과 영국, 프랑스가 잇따라 핵무기를 갖자 급해졌다. 독일은 “우리도 핵무기를 가져야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반대했다. 미국은 독일에 핵우산 제공을 약속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독일이 공격당하면 미국이 핵폭탄으로 반격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의 반대가 심해지자 독일과 미국은 전쟁 발발시 핵 사용권을 공동으로 갖기로 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사용 승인하는 체제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방식이다. 핵의 공동사용권이다. 한국은 서울이 공격받았을 경우 핵사용권은 전적으로 미국에 달려 있다. 핵폭탄을 맞은 뒤 미국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한국을 빼고 북한과 미국 간 협상도 가능하다. 독일식이 제3의 길이다.
핵무기는 상대국끼리 연쇄적으로 개발되는 특징이 있다. 미국이 개발해 1945년 일본에 투하한 지 4년 만에 상대국인 소련이 핵무기를 만들었다. 뒤이어 위협을 느낀 영국이 개발에 성공했다. 프랑스가 소련의 위협을 들어 독자개발했고 중국이 뒤를 이었다. 중국과 적대관계였던 인도는 공산화를 우려해 핵무기 체계를 갖췄고, 사이가 안 좋았던 파키스탄 역시 정치 역학관계를 들어 핵무기를 만들었다. 중동의 외톨이 이스라엘이 미군 주둔 없이 나라를 스스로 지킨다는 전략에 따라 핵을 만들었다. 북한에 이어 한국 순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