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만물은 쓰임에 따라 존재 의미가 달라진다. 군인에게 총은 평화를 지키는 도구지만, 강도에게 총은 사람을 죽이는 흉기일 뿐이다. 불은 인류에게 더없는 축복이지만, 잘못 다뤄진 불은 인류에 더없는 재앙이다. 빠르게 진화 중인 기술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쓰임에 따라선 축복이 될 수도, 재앙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다가오는 로봇시대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이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켄타우로스는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인간이면서 괴수다. 온전한 인간도, 온전한 괴수도 아닌 해칠 능력이 있으면서 선(善)을 추구하는 존재다. 마치 화학의 양면성처럼….” 폴란드 출신 미국인으로 1981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로알드 호프먼이 과학의 양면성을 따끔하게 꼬집은 말이다. 그의 비유처럼 과학은 문명의 열쇠지만 때론 재앙의 씨앗이 된다. 과학에도 빛이 있고, 그 빛이 만든 어둠이 있다.

핵은 현대 과학기술의 응집체다. 하지만 핵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최고 효율의 ‘청정 에너지’, 가공할 ‘살상무기’가 바로 그것이다. 핵은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고효율 에너지(원자력)인 동시에 인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공포스러운 살상무기(핵무기)다. 핵무기는 지구촌의 심각한 공포다. 미국 러시아 중국은 막대한 핵무기로 군사대국임을 과시하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무기를 고집한다. 약소국들은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키우는 데 핵무기만한 카드가 없다고 생각한다. 강대국의 틈새에서 존재감을 부각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바로 핵이라고 믿는 것이다.

핵무기를 만들려는 나라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이른바 ‘핵주권론’이다. 핵무기는 국가 주권에 관한 것이고, 핵보유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이를 만들지 말라고 압력을 넣는 것은 옳지 않다는 논리다. 얼핏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핵은 국가의 주권보다 인류의 평화라는 좀 더 거시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권보다 책임이 우선이라는 얘기다. 지구촌에 핵이 넘쳐 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핵무기 상호 보유로 전쟁이 억제된 상태)은 엄청난 재앙을 내재한다. 핵 보유국이 많을수록 통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 핵주권론이 간과하는 건 핵책임론이다.

‘운명의 날 시계’는 핵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위기감을 경고하기 위한 상징물이다. 시계가 밤 12시에 가까울수록 핵 위험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현재 시각은 밤 12시 5분 전이다. 이 시각을 뒤로 돌려 놓을 반가운 뉴스가 나왔다. 바로 이란의 핵협상 타결이다.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지구촌에 드리운 핵공포의 그림자를 조금이라도 거둬낼 소식임은 분명하다. 이란의 굿뉴스가 꽉 막힌 북한 핵 협상에도 새로운 물꼬를 터주길 기대한다. 4, 5면에서 한반도 핵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과 핵주권론의 함정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