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중국의 야망…21세기 '금융실크로드' 꿈꾸다
미지의 세계는 항상 궁금한 법이다. 2000여년 전 동서양이 서로 그랬다. 당시 서양이라고 해도 현재의 유럽·중앙아시아 대륙을 의미할 뿐 아메리카 대륙은 상상 속에도 없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동쪽 어딘가에 황금이 가득한 섬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중국 또한 서역이 항상 궁금했다. 뭘 입고, 뭘 먹고, 뭘 사고파는지 언제나 호기심이 가득했다.

호기심만으로 상대를 그려보던 동서양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게 만든 것은 이른바 ‘실크로드(Silk Road)’다. 중국 중원(中原)을 시작으로 중앙아시아 초원, 이란 고원을 거쳐 지중해 동안과 북안에 이르는 교역로 실크로드가 처음 열린 것은 전한(前漢·기원전 206년~기원후 25년)시대다. 이 교역로를 통해 중국의 비단, 칠기, 도자기, 화약·제지 기술 등이 서역으로 건너갔고 호두, 후추, 유리 제조 기술 등이 중국으로 전해졌다. 실크로드는 단순한 물품 교역의 경로만은 아니었다. 동서양 문화를 융합하는 핵심 통로였다. 실크로드는 중국이란 존재를 서역에 알린 도로였고, 중국이 서역에 눈을 뜨게 한 망원경 같은 길이었다.

중국이 다시 ‘新실크로드’를 꿈꾸고 있다. 2000여년 전 실크로드가 ‘교역의 고속도로’라면 21세기 중국판 신실크로드는 ‘글로벌 금융허브 구축’을 위한 금융 패권의 고속도로이다. 지난 수십년간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은 빠르게 높아졌다. 중국 경제는 지난 30년간 연평균 8% 이상 성장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의 경제 규모(GDP 기준)와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급부상했다. 정치적 영향력 역시 막강해졌다. 1971년 대만을 대신해 유엔 상임이사국 지위를 꿰찼고, 세계 2위 군사력을 자랑하며 옛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의 유일한 라이벌로 떠올랐다. 하지만 중국의 금융 위상은 정치적 위상에 크게 못 미쳤다. 지난 70년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을 두 축으로 하는 국제금융질서는 미국이 주도했다. 브레턴우즈체제(달러 가치를 금에 연동시키고 여타 통화 가치를 달러 가치에 고정시킨 체제)를 주도해온 WB와 IMF에서 미국의 투표권이 각각 15%, 16.8%인 데 반해 중국은 4.1%, 8.3%에 불과하다.

금융에선 변방이던 중국이 새로운 국제 금융질서 재편에 나섰다. 들고 나온 카드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이다. 중국과 유럽, 나아가 중국과 아프리카를 철도로 연결하는 신 실크로드 건설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주도의 AIIB 설립으로 70여년간 미국 중심으로 유지돼 온 세계 금융질서를 바꿔보겠다는 복안이다. 중국이 현대판 금융실크로드에 비유되는 ‘금융굴기(세계 금융질서에 우뚝 선다)’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4, 5면에서 AIIB의 성격과 추진 상황, 중국의 야심과 한계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