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빛과 그림자…최대 함정은 '편견'
“종교는 폭력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실제로 대다수의 종교인들은 친절하고 점잖다. 하지만 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매우 폭력적이다. 어리석게도 역사상 종교를 앞세운 끔찍한 전쟁과 테러는 수없이 많았다. 종교 전쟁에 관한 한 중세나 현대나 변한 게 없다고 말해도 무리는 아니다.성서에 적힌 이교도 응징
문제는 세상에 여러 개의 종교가 있는 데서 발생한다. 세계지도를 보면 대륙별로 혹은 지역별로 종교 분포를 알 수 있다. 가톨릭 지역, 기독교 지역, 이슬람 지역, 불교 지역, 유대교 지역, 힌두교 지역 등이다. 나의 신은 유일하며, 다른 신을 믿는 너와 양립할 수 없는 지역처럼 보인다. 실제로 이슬람은 기독교를 적으로, 기독교는 이슬람교를 악으로 보는 적대세력이 많다.
종교 자체의 폭력성을 지적한 학자가 있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거다. 그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란 책에서 성서 내용 자체가 얼마나 폭력적인지를 정리해놨다.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자행한 대량학살과 집단살해, 전쟁 사망자 수는 2000만명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인용했다. 구약성서 ‘레위기’와 ‘신명기’ 등에 나오는 대량학살 등 야훼가 직접 폭력을 집행하는 장면이 1000군데는 된다고 그는 썼다. “숨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 모조리 전멸시켜야 한다. 주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신명기 20절에 이렇게 쓰여 있다. 전멸의 대상은 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히타이트,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이었다. 신약성서 마태복음 10장 34~37절은 어떤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오늘날의 종교 근본주의자들에게 이런 대목 은 어떻게 읽힐까? ‘이민족, 다른 종교를 전멸시켜라’로 오독할 수도 있지 아닐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이성을 배제하는 맹목적인 교리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무신론자로 행동학자(ethologist)다. 그는 근본주의자들에게 악마로 불린다.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라 단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실어나르는 유전자 생존기계(gene survival machine)일 뿐’이라고 했으니. 그는 종교의 배타성, 맹목성, 절대성, 신성성을 질타한다. 이 같은 종교는 인간의 생각 자체를 제한한다고 본다. 종교는 생각하지 못하게 하며, 의심하지 못하게 하며, 증명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과학의 세계는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려 한다. 45억년 전 지구 상태와 인간 유전자의 뿌리를 캐낸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불문(不問)을 요구하는 종교가 그에겐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그는 종교의 폭력성 이유를 ‘신에 대한 환상(The God Delusion)’이란 책에 담아냈다. 종교가 이성의 문과 증거의 세계를 거부하는 한 폭력은 교리상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종교도 도태
인류학자 앤서니 월리스에 따르면 6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 무덤에서 종교 흔적이 발견된 이후 인류에는 약 10만개의 종교가 있어 왔다고 한다. 이 중 몇 개가 살아 남았을까? 거의 모두 멸종하거나 원시림 속으로 사라졌다. 이런 표현은 종교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설명할 때 인용된다. 사실 현재의 종교들은 많은 문화적 진화과정을 거쳤다. 문화적 다윈주의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흙으로 인간을 만들었다거나,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갖게 했다거나,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신화는 깨졌다. 그 빈 자리를 커트 스테이저가 쓴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는 책이 차지하고 있다.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종교관도 박살났다. 종교가 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종교에도 이타주의가 있다. 억압적인 종교와 자비로운 종교 구분은 늘 가능해야 한다.
생태학에는 ‘최대 경쟁은 요구사항이 동일한 종(種) 사이에서 일어난다’라는 가우스의 법칙이 있다. 작금 서로 세력을 넓히려는 같은 요구사항이 종교 사이에 팽배해 있다. 이럴 때 정복자의 종교는 칼이 되고, 피정복자의 종교는 방패가 된다. 폭력의 다른 표현이다. 문화재를 부수고, 인질을 죽이는 동영상을 공개하는 이슬람국가(IS)의 무지막지함은 왜 벌어지는 것일까.
4가지 책이 던지는 질문 “당신이 믿고 있는 신은 있는가”
본문에서 인용한 책은 크게 4가지다. 에드워드 윌슨이 쓴 ‘인간본성에 대하여’ 중 종교 부분이 인용됐다. ‘신이 원한다’를 앞세운 십자군 원정의 맹목성을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신과 국가를 위해 순교한다는 극단적인 형태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진화론적으로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해석한다. 나아가 그는 인간을 유전자를 위한 기계로 해석한다. 유전자의 목적은 다음 세대로 자기를 복제해 생존시키는 데 있고, 이를 위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인간을 진화시켰다고 본다. 신에 대한 부정이 아닐 수 없다. 도킨스는 자기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인정한다. 인간의 기원을 밝혀내려는 저자의 학문적 접근이 이채롭다. 종교는 그의 이런 접근을 건방지다고 비판한다. 재미있는 책이다.‘신의 환상’도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다.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앞 부분에서 성서 이야기를 인용했다. 이 책은 원래 과거보다 현재가 더 폭력적이라는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 쓰여졌다. 루소는 “원시 상태의 인간보다 더 온화한 인간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핑커는 지금이 가장 덜 폭력적이라고 통계와 증거로 반박한다. 구약성서는 끔찍한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는 부분은 한 증거로 나온다. 성서 내용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어 다행이지만.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