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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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안심하지 않기 위해,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의지하기 위해, 불행한 사람은 굴복하지 않기 위해 각각 신앙이 필요하다.’

독일의 휴머니즘 사상가이자 언어학자, 정치가인 훔볼트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종교도 많고, 신자도 많다. 신은 다양해도 신을 믿는 이유는 엇비슷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심판이 두려워서, 신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사후세계를 보장받으려고, 남들이 믿으니까 등등. 신을 믿는 이유의 절반은 세속적이고, 절반은 영적이다. 전통적인 우리나라 기복신앙은 속세적 성격이 강하고, 기독교의 천국은 영(靈)에 방점이 찍힌다. 불교의 윤회는 속세와 내세가 맞닿아 있다.

≪‘신을 믿는 50가지 이유’≫의 저자 가이 해리슨은 종교의 가장 큰 함정을 ‘편견’이라고 지적한다. 세상엔 10만개의 종교가 있고, 100만이 넘는 신이 있지만 각자가 ‘우리 신이 최고’라고 우기는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그는 타종교 경전을 전혀 읽어보지 않고 자신의 신이 월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팀과 한 번도 경기를 해보지 않은 축구팀이 대회의 우승자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꼬집는다.

십자군전쟁(1096~1270)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8차례에 걸쳐 200년 가까이 치른 종교전쟁이다. 역사상 가장 치열한 종교 간 싸움이 길어지면서 ‘종교의 성스러움’이란 초심은 많이 변질됐다. 영토 확장, 상업적 판로 개척 등 속세의 모든 것이 섞이는 ‘진흙탕 싸움’이 된 것이다. 마녀사냥 역시 종교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인류의 끔찍한 범죄다. 면죄부는 종교가 물질과 결탁해 신의 순수성을 훼손한 대표적 사례다.

나(나의 종교)만 옳다는 생각은 극단주의자들이 더 강하다.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은 그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종교와 언행을 극도로 배척한다. 납치테러, 자살폭탄 테러는 그런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이다. 최근 이슬람국가(IS)가 지구촌 곳곳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이런 극단주의 때문이다. 원리가 다르다고 다른 종교를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언론의 자유라는 우산을 쓰고 다른 종교를 조롱하는 것 또한 자제되어야 한다.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선 여전히 종교갈등으로 무고한 생명들이 스러져 간다. 자살폭탄이 터지면 한쪽은 순교자로 추앙하고, 다른 한쪽은 테러라고 규탄한다. 신의 존재 여부, 어느 신이 옳은가의 논쟁은 종지부 없는 싸움이다. 그보다 사랑과 관용이라는 종교의 기본 교리에 더 충실하는 게 참다운 종교인의 길이다. 인류 행복을 위한 종교가 인류 공포의 대상으로 변질되어선 안된다. 4,5면에서 종교의 빛과 그림자, 종교갈등으로 인한 테러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