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반성문 쓰는 남미
지도자의 신념으로 국가 설계는 안돼
시장·가격·개인·자유 부인하면 퇴보
“국가가 지상지옥이 된 것은 항상 국가를 지상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휄더린(1770~1843)은 유토피아론을 이렇게 질타했다. ‘지상 천국화’가 시도될수록 현실의 삶은 시간의 화살을 타고 빠르게 지옥으로 변한다는 경고다. “신자(信者)는 끝까지 가서 기어코 세상을 무너뜨린다”는 이안 부르마와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려는 노력은 언제나 타락으로 이어진다”는 마이클 오트쇼크의 말은 유토피아와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신봉자들의 종말을 예견한 것이다. 종교조차도 사후로 넘겨둔 천국을 정치권력집단이 현실에서 만들어 보겠다고 할 경우, 어떤 무리한 정책과 선동이 동원될지는 뻔하다.지도자의 신념으로 국가 설계는 안돼
시장·가격·개인·자유 부인하면 퇴보
이상국가의 뿌리는 플라톤?
국가가 모든 것을 해준다는 의미에서의 중앙통제식 사회주의 전통은 철학적으로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철인정치를 주창한 철학자 플라톤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아버지쯤 된다’는 해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물론 그가 지금의 사회주의나 포퓰리즘을 머릿속에 두진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자가 이상국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완벽한 이성을 가진 철인이 등장한다면 이상국가를 설계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 플라톤 국가론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계급마다 자기 본분에 만족하고 철인에 복종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래서 그는 노예와 피지배 계급을 당연시 했다.
이 같은 절대 지도자 개념은 시대를 넘어 19세기와 20세기 마르크스와 레닌,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에게로 전수됐다. 기존의 모든 틀을 부수고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며 나선 ‘괴물’들이었다. 괴물이 낳은 후손들은 북한, 남미, 동유럽, 남유럽, 아프리카에선 끊임없이 등장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몰락이다.
‘평등과 연대’…원시의 속성?
인류가 ‘우리는 하나다’ 식의 평등과 연대를 약속한 지는 오래됐다. 아주 오랫동안 원시 부족사회는 평등과 연대를 중요한 개념으로 체득했다. 부족들은 뭉쳐야 사냥할 수 있었고, 전쟁과 몰살을 피할 수 있었고, 풍족하지 않은 식량을 나눌 수 있었다. 루소는 ‘고상한 야만인’을 상정했다. 원시시대야말로 불평등이 없는 ‘고상한 야만인’이 살았던 시대였다고 루소는 그렸다. ‘인류는 시간이 갈수록 타락할 뿐’이라거나 ‘현재는 지옥’이라는 루소의 생각은 시대를 넘어 승계됐다.
하지만 최근의 진화심리학 이론과 진화생물학계의 객관적이고 지적인 조사 결과는 루소의 ‘고상한 야만인’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논박하고 있다. 원시는 잔인했으며 폭력적이었고, 전쟁과 몰살의 시대였으며 불평등의 시대였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최근 펴낸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수많은 통계를 통해 인류의 과거는 현대보다 훨씬 폭력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전쟁은 거의 매일 일어났으며 이긴 쪽은 진 쪽의 여자만 빼고 모조리 몰살했다고 했다. 인신공양과 잔인한 고문, 인육 섭취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썼다.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인간가치의 세 가지 근원’에서 원시사회에서 대규모 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이런 원시적 연대와 평등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평등을 앞세우는 것은 우리의 DNA 속에 아직도 원시적 본능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이 평등과 연대를 말할 때 우리가 쉽게 반응하고 열광하는 것은 이 원시성의 발현이라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은 왜 망하나?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은 강력한 권력자와 중앙통제 체제가 없으면 실현되기 힘들다. 모든 자원을 통제하고 분배하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특권적 관료체제가 불가피하다.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이 실패하는 것은 애초에 작동하지 않는 속성 때문이다. 경제학자 루트비히 미제스는 사회주의 계산논쟁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을 예고했었다.
남미 여러 국가의 지도자들은 모든 자원을 공동 분배해 불평등이 없는 사회건설이라는 ‘선한’ 의도를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7위권 경제대국에서 국가 채무를 갚지 못하는 ‘디폴트 국가’로 전락했고, 석유가 펑펑 나는 베네수엘라는 나눠먹기로 끝났다. 그리스, 북한 등 많은 사회주의 국가와 포퓰리즘이 만연한 국가도 마찬가지다.
포퓰리즘이 국가 발전에 얼마나 위험할까. 다수가 권력을 잡는 무제한적 민주주의 체제에선 공짜공약을 내세운 포퓰리즘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공짜를 좋아하는 인간 본성에 포퓰리즘만큼 잘 와 닿는 것도 없다. 표를 의식한 정치집단은 공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국민 모두가 공짜를 바라는 상황이 깊어지면 개인, 자유, 시장, 효율, 성장은 사라진다.
국가가 잘살기 위해서는 경제적, 정치적 제도를 잘 갖춰야 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쓴 대런 애스모글루는 중앙통제적 착취제도를 가진 나라보다 개방과 자유, 경쟁, 시장, 개성, 분업, 무역을 장려하는 제도를 가진 나라가 잘 산다고 말했다. 절대 빈곤자에 대한 지원도 나라가 잘 살수록 늘어난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어떤 체제가 성공하는가 알고 싶으세요? '위대한 탈출' '국가는 왜 실패…' 읽어보세요
어떤 체제가 잘 작동하는가를 공부하려면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 첫 번째로 권할 만한 책은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인류를 빈곤에서 구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이 책은 불평등이 성장을 촉발시켰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은 악이 아니라 성장동력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모두가 평등한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으며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평등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한다. 또 그렇다면 사회주의 체제에서 평등한가를 묻는다.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더 불평등하다는 얘기다. 불평등해야 성장이 촉발된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과 관계가 있다. 결과가 모두 같다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법이다. 혁신이 없는 곳에는 성장과 번영이 없고 정체만 있다.
대런 애스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도 읽어볼 만하다. 경제 자유도가 높은 나라는 잘살지만 자원 배분을 중앙기구가 통제하는 나라가 못 사는 이유를 쉽게 비교 분석해 놨다. 대한민국과 북한 사례가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하이에크의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도 찾아서 읽어보면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고교생에게는 조금 어려울지 모르지만 책의 두께가 얇아 긴 호흡을 가지면 읽을 수 있다. 원시시대에 형성된 인간 감정이 현대 거대사회에서 어떻게 악재로 작용하는지, 왜 쉽게 원시 감정에 기우는지를 설명해주는 대목이 유익하다.
액튼 경이 쓴 ‘시장의 도덕’도 참고 삼아 읽어보길 권한다. 시장이 어느 기구보다 도덕적인 이유를 잘 설명해놨다. 시장은 정글이고 약육강식의 장소라는 우리의 편견을 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