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도서정가제 필요할까요
지난 11월21일부터 새 도서정가제가 시작됐다. 직접적 가격 할인은 10%를 넘지 못하고 가격 할인과 각종 마일리지 경품 제공 등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규모가 책 정가의 15%를 넘지 못하게 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 신간은 19%까지 깎아줄 수 있고 참고서 실용서나 발간 18개월이 지난 구간도서는 할인폭에 제한이 없었지만 이제는 모두 할인에 제한을 받게 된다.

도서정가제 논의가 시작된 직접적 계기는 인터넷서점의 출현이었다. 서점 운영에 따른 비용을 없애고 박리다매식으로 책을 팔면서 파격적인 가격 할인을 제시하자 오프라인 서점들과 출판사들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도서정가제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자연스레 정가제에 대한 찬반도 오프라인 서점과 온라인 서점이 반대로 나온다. 새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찬반 논란을 알아본다.

○ 찬성 "동네서점 살리고 책값 거품도 뺄 수 있어"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새 도서정가제가 지나친 저가 할인을 막아 중소서점을 보호하고, 출판사들이 할인을 염두에 두고 책값을 높게 매기지 못하게 돼 장기적으로는 도서의 가격 거품을 걷어낼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할인율을 제한하면 가격 안정화가 이뤄지고 18개월 이상 된 구간도서들은 가격 재조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가격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문체부는 정가제로 대학 도서관 예산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일반 교양 문화 서적은 가격 경쟁 때문에 좋은 책보다 싼 책이 납품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가제로 이런 방식이 바뀌면 도서관 수준도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주요 출판사와 서점들도 새 도서정가제를 지지하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관계자는 “‘반값 할인’ ‘폭탄 세일’로 오히려 질 낮은 도서가 판치고 책값 거품이 극심해졌다”며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면 유통 체계가 개선돼 책값이 전반적으로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 창비는 트위터를 통해 “도서정가제가 붕괴된 출판 유통과 출판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며 지지를 선언했고 사회평론도 정가제가 “동네서점을 살리고 책값의 거품을 뺄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일부 온라인 서점과 홈쇼핑의 ‘폭탄 세일’은 출판 유통 구조를 왜곡시킨 주범”이라고 지적하고 “정가제 강화는 이를 바로 잡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반대 "책값 부담에 수요줄어 독자·저자 모두 손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책값을 높이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시장에 잔류시켜 소비자 후생의 손실을 초래한다는 분석이다. 책값이 오르면 책 수요도 줄게 돼 오히려 서점·출판업계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KDI는 새 도서정가제가 3년마다 상황을 평가해 재검토하게 돼 있지만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고치고, 업계와 소비자 의견을 듣는 협의체 구성을 권고했다.

주요 출판사와 서점들이 도서정가제에 찬성하는 데 반해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 알라딘은 자사 사이트에 “불경기에 정가제까지 강화되면 국민들의 독서량 감소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성명서를 게재하고,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정가제로 독자들의 손해가 커지는 것은 물론 저자의 인세 수입도 줄어든다는 게 알라딘 측 주장이다. 알라딘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해당 법안 저지도 호소해나갈 예정이어서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대학 도서관처럼 대량으로 책을 구매해야 하는 곳들은 비용 상승을 들어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는 “도서관 입장에서는 10% 내외의 가격을 인상해 줘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구입 도서 수가 그만큼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는 도서 구입 여력이 줄다보니 학생들이 주로 찾는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입이 편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대학가 주변에는 불법 제본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대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 생각하기 책을 어떤 재화로 볼 지에 대해 합의가 필요

[시사이슈 찬반토론] 도서정가제 필요할까요
서정가제라는 이름이 붙기는 했지만 새 도서정가제 역시 완전한 정가제는 아니다. 단지 할인폭의 상한선만 정했을 뿐이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도 그 속내를 보면 결국 도서 출판과 판매를 둘러싼 온·오프라인 간, 그리고 공급자와 수요자 간 밥그릇 싸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주장이 무조건 옳고 다른 쪽은 잘못됐다고 쉽게 결론내기 힘들다.

경제적 측면으로만 본다면 정가제는 일종의 가격제한으로 시장가격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다. “가격 규제는 결국 시장에서 수요 공급을 결정하는 가격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는 시장경제주의자들은 이 제도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반면 책은 다른 일반 상품과 다른 측면이 있으며 따라서 무조건 자유경쟁에 맡기는 게 옳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도서정가제에 찬성할 수도 있다.

결국 책을 어떤 재화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책은 보통 말하는 공공재로 보기는 힘들다. 주로 민간 출판사들이 만들어 유료로 팔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도서관에서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통의 재화와도 약간 성격이 다르다. 결국 완전경쟁보다는 일정한 규제가 가해질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만 그 규제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역시 쉽지 않은 문제다. 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보다 책이라는 재화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루는 게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김선태 한국경제신문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