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체결…자유무역 지평을 넓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우리나라의 무역 규모는 2억3000만달러였다. 이 중 2200만달러만 수출이었고, 나머지는 외국의 원조형 수입이 대부분이었다. 무역이라고 부를 것도 없는 수준의 형편없는 나라였다. 무엇을 만들어 팔 것이 없던 가난한 나라의 전형이었다. 이런 나라가 올해도 무역 규모 1조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2013년에 이어 2년 연속이다.무역만이 살길…잿더미의 기적
우리나라는 무(無)에서 유(有)를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과 일제 강점기,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황폐할 대로 황폐해졌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밑바닥에서 시작해야 했다. 축적된 자본과 기술력이 전무했던 터여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은 불가피했다. 민간조차도 가진 것이 없었다. 고속도로를 건설하려 해도, 무모하게조차 보였던 조선소를 짓는 데도 자생적으로 축적된 자본과 기술은 없었다.
우리나라는 수출, 즉 무역에서 길을 찾았다. 무엇이든지 만들어 팔아야만 국가적 ‘보릿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았고, 가발을 만들어 팔았고, 신발을 만들어 팔았다. 심지어 사람도 수출했다. 독일 광부 파견, 베트남전쟁 파병이 못먹고 못살던 나라가 할 수 있는 무역의 하나였다.
그랬던 한국이 지금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 체결국 중 하나다.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맺은 나라는 칠레, 페루뿐이다. 경제규모상 우리나라가 가장 크다고 볼 때 한국이 사실상 세계 최대 체결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2009년 칠레와 처음으로 FTA를 타결한 이후 미국 등 47개국과 협정을 체결해 발효한 상태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싱가포르, EFTA(스위스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ASEA(말레이시아 싱가포르다.
여기에 중국 호주 캐나다 콜롬비아 등 4개국과 FTA를 타결해 국회 비준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이 밖에도 다양한 형태의 권역별 협상도 진행 중이다.
무역은 운동장을 넓게 쓰는 것
요즘 경제영토란 말이 자주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번 중국과의 FTA로 경제영토 확보 순위가 기존 세계 5위(60.9%)에서 3위(73.2%)로 올라섰다고 해석한 적이 있다. FTA 체결 국가의 경제 규모를 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 GDP의 73%를 차지할 정도로 크다. 이들 나라와 무역을 하는 셈이다.
무역을 축구로 비유하자면 운동장을 넓게 쓰는 것과 같다. 내수 시장 규모가 작고,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나라로서는 운동장을 넓게 쓰는 방법이 곧 이기는 방법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한다. 무역에 관한 한 대외 의존도라는 표현은 틀렸다. 긍정적인 시각에서 보면 우리나라만큼 무역 리스크가 분산돼 있는 나라도 드물다. 이 나라 경제가 나빠지면, 저 나라와의 교역을 늘리면 된다. 자유무역 협정은 관세를 떨어뜨리는 데 목적이 있다. 세금이 많이 붙으면 물건 가격이 높아진다. 우리의 경쟁자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이런 협정을 체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세계 각국은 대한민국을 신기한 나라라고 본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자유무역협정은 개방성, 경쟁력, 자신감이 없이는 체결하기 쉽지 않다. 자유무역은 자국 시장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만 수출하고 네 것은 수입하지 않는 식’으로 국부를 일방적으로 늘리겠다는 심보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을 경쟁에 노출시킬 때 체질이 강해진다. 한국이 정확하게 그런 국가다.
농업도 개방길 찾아야
한국은 ‘메기론’을 신봉한다. ‘미꾸라지를 살려 놓으려면 통 안에 메기 한 마리를 풀어놓으면 된다’는 것이 메기론이다. 메기를 피해 살려면 몸부림쳐야 한다. 한국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일어나기 위해 자신을 경쟁과 개방에 내던졌다. 이 덕분에 원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가 석유화학제품 수출 1위국에 올랐다. 미꾸라지처럼 작았던 한국이 자동차, 반도체, 조선, IT(정보기술), 철강, 중공업 분야에서 거대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농업 부문에서도 같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중국 신선식품 시장은 우리 농업에 기회다. 중국 상류층은 자국 농산물을 기피한다. 공업화된 농업을 지향한다는 제2의 자동차, 반도체가 농업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중국 시장은 거대하다.
칸트의 영구평화론 "무역은 평화를 가져온다"
무역은 평화를 좋아한다. 무역을 하려면 세상이 조용하고 편안해야 한다. 어느 나라의 정세가 불안하면 그 나라에 물건을 팔기가 어렵다. 배가 포탄에 맞아 침몰할 수도 있다. 국경을 넘어가던 트럭이 납치될 수도 있다. 잔뜩 투자한 상품과 서비스가 전쟁 속에 제대로 거래될 리가 없다.
그래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사진)는 ‘영구평화론’에서 무역을 강조했다. 세상이 평화롭게 살려면 세 가지가 잘돼야 한다고 칸트는 강조했다. 하나는 민주주의이고, 둘째는 자유로운 무역이며, 셋째는 세계정부(국제기구)다. 국가들이 자유무역에 나설 때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포지티브 게임으로 서로가 윈-윈이 되고 결국 평화를 구가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무역은 국가 간 개방성을 중시하는데, 이렇게 되면 평화를 더 강화하는 효과를 낸다. 두 나라가 무역을 하려면 투명성과 명징성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먼저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홉스의 함정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이 자유무역 협정을 맺었다는 것은 단순한 교역 외에 경제사상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