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추가 양적 완화

일본은행(BOJ)이 시중자금 공급량을 지금보다 연간 10조~20조엔(약 100조~200조원) 더 늘리는 추가 양적 완화를 전격 결정했다. 한국에는 또 한 차례의 ‘엔저 쇼크’가 예상된다. 엔·달러 환율은 111엔대를 가볍게 돌파했다. 일본은행은 31일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고 연간 본원통화 증가액을 현재 60조~70조엔에서 약 80조엔까지 확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11월1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아베의 질주…돈 찍어 20조엔 더 푼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행보가 거침없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양적 완화 정책을 종료하겠다고 선언한 이틀 뒤 미국과는 거꾸로 양적 완화를 확대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제 살리기에 ‘올인’하는 모습이다. ‘말만 무성하고 행동은 없는(NATO·No Action Talk Only)’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QE) 정책은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 돈을 무제한적으로 찍어내 시중에 직접 공급하는 것이다. 기준금리가 제로에 근접해 기준금리 인하만으로는 경기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현재 일본의 기준금리는 연 0.1%다. 시중 통화량을 늘리면 소비나 투자를 부추겨 경기를 살릴 수 있다. 중앙은행이 시중의 국채나 채권을 사주는 방식으로 돈을 푼다.

아베는 선거에서 승리하고 총리가 된 직후인 2013년 3월 구로다 하루히코를 일본은행 새 총재에 임명했다. 임기가 남아 있는데도 사라카와 마사아키 전 총재를 끌어내렸다. 사라카와 총재가 양적 완화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로다 총재는 취임 이후 아베의 뜻대로 60조~70조엔의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지금까지 돈풀기 정책을 이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양적 완화 규모를 더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 종료와 달리 일본이 양적 완화를 더 늘리는 것은 일본 경제가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경제정책을 ‘아베노믹스’라고 한다. 아베노믹스는 △양적 완화 △재정전략 △성장전략 등 이른바 ‘3개의 화살’이라는 전략이 핵심이다. 일본은행은 통화를 무제한 살포한다. 정부는 재정을 동원, 지출을 늘리며 경영 규제를 풀어 기업들의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

[강현철의 시사경제 뽀개기] 아베의 질주…돈 찍어 20조엔 더 푼다
양적 완화는 소비와 투자 확대 외에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시장과 외환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실물경기를 부양할 수 있게 된다. 일본은행이 통화 공급을 늘리면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뛰고 이는 소비나 투자 확대로 이어진다. 또 엔화 공급 확대는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를 떨어뜨려 일본 기업들의 수출에 큰 도움이 된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225지수는 추가 양적 완화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급등해 4.83% 오른 16,413.76에 마감했다. 7년 만의 최고치다. 엔·달러 환율도 장중 달러당 111엔을 넘어서 2008년 1월2일 이후 약 6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만큼 엔화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문제는 엔화가치 급락이 한국에 ‘메가톤급’ 폭탄 같은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이다. 추가 양적 완화 조치가 발표된 이후 원·엔 환율은 100엔당 950원 선 밑으로 급락했다. 엔화와 비교한 원화가치가 치솟은 것이다. 2011년 10월 100엔당 1575원과 비교할 때 3년여 만에 원화가치가 40%가량 뛰었다. 원화가치가 뛰면 한국의 수출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한국은 1997년과 2008년 달러화가 부족해 외환위기를 겪었다. 두 차례 모두 요즘처럼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엔화가치가 약세일 때 발생했다. 엔화 약세가 한국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일 간판 기업의 실적을 보면 이 같은 우려가 이미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현대중공업 등 우리 주요 기업의 실적이 줄줄이 하강곡선을 타고 있다. 삼성전자는 매출과 이익이 크게 줄었으며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 9월까지 무려 3조200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반면 일본 기업은 엔저(円低) 효과 등에 힘입어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내놓고 있다. 전자부품업체인 무라타제작소는 상반기(4~9월) 순이익이 680억엔(약 661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증가했다. 중공업업체인 IHI도 상반기 순이익이 64% 급증한 209억엔(약 2032억원)에 달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조선업체인 가와사키중공업은 순이익이 39% 증가한 181억엔(약 1770억원)에 달했다. 히타치는 순이익이 910억엔(약 8849억원)으로 178% 늘었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상반기 609억엔의 순이익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경신했다. 도요타 역시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3000억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카가미 료타 SMBC닛코증권 투자분석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3년간 이어진 엔고의 시련기를 극복한 힘이 ‘엔저 훈풍’을 타고 실적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은 법인세를 낮추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적극 나서고 있다. 농업 부문 개혁과 원자력발전 재가동도 추진 중이다. 모두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반면 우리는 경제가 가라앉는 징후가 농후한데 위기감도 부족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끌고가는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사회의 최대의 문제는 바로 리더십과 행동력의 부재(不在)이다.

■ 대형주 주가 급락에 손실 커지는 종목형 ELS

○ELS의 수난


대형주들의 주가 급락으로 원금을 날린 종목형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가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 ELS 등 지난해 이전에 출시된 상품들이 뒤늦게 손실구간에 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11월6일 한국경제신문

☞ 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ies·ELS)은 주가 또는 주가지수의 변동에 따라 만기 지급액이 달라지는 증권이다. ELS에는 투자 구조에 따라 여러 종류의 상품이 있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삼성전자 주가가 한 번이라도 130만원 이상이 되거나 코스피지수가 2000선을 넘어서면 10%의 수익이 확정되는 구조의 ELS는 ‘녹아웃(knock-out)형’ ELS라고 한다. 또 특정 주가나 주가지수를 3개월이나 6개월마다 중간 평가하고 평가일 현재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약정된 수익을 지급하고 원금을 조기 상환하는 ‘스텝다운(step down)형’, 주가가 가입 시 정해놓은 하락폭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수익을 주는 ‘리버스컨버터블형’ 등도 있다.

ELS는 주식보다 투자위험(리스크)가 적으면서도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이다. 그래서 요즘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자들로부터 인기를 얻어왔다.

하지만 주식보다 리스크가 낮은 ELS라도 해도 완전히 투자위험이 없는 건 아니다. 최근처럼 증시가 약세이고 ELS의 기초자산인 개별종목 주가나 주가지수가 급락하면 손해를 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전에 판매된 스텝다운형 ELS 가운데 최근 손실구간(녹인·knock in)에 진입하는 상품이 늘고 있다.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등 조선·정유·화학주를 기초자산으로 발행된 ELS는 이미 대부분 녹인 상태다. 현대중공업은 주가가 15만500원이었던 지난 7월31일 이전 판매된 상품 전부가 손실구간에 진입한 상태다. 주가가 9만7000원대로 급락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련 ELS도 손실구간 이하로 밀리기 시작했다. 증권 전문가들은 만기가 남은 미상환 ELS 중 올 들어 기초자산이 이미 녹인 지점 이하로 떨어진 종목형 상품이 2조원어치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주가가 10%가량 더 떨어지면 손실구간에 진입할 위기에 있는 상품은 1조원어치에 달한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