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구한 자본주의? 불평등 악화로 민주주의 위기?…자본주의의 성과, 明과 暗
[Cover Story] 성장-불평등의 함수

20세기를 달궜던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논쟁은 거의 사라졌다.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이 빈곤에 허덕이다 망했고, 중국이 자본주의로 급선회하면서 사회주의가 도태됐기 때문이다. 요즘 논쟁은 ‘자본주의가 인류문명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모아진다. 세상을 잘 먹고 잘 살게 했는지, 불평등만 더 심화시켰는지에 대한 토론이랄까.

최근 발간된 두 권의 책은 이 토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앵거스 디턴 교수가 쓴 ‘위대한 탈출(The Great Escape)’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다. 논술과 면접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아 정리해본다.

“자본주의가 인류를 구했다”

[Cover Story] 성장-불평등의 함수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가 인류를 빈곤, 궁핍, 질병에서 구해냈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가져온 경제성장과 부(富)의 증가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게 됐다는 설명이다.

사실 인류는 오랜 기간 절대빈곤에 허덕였다. 이른바 ‘맬서스 함정’에 갇혀 있었다. 맬서스 함정은 그의 이론에서 나왔다. 맬서스는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가 식량부족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엔 그랬다. 맬서스가 살았던 시대에 산업혁명이 시작되긴 했지만, 식량은 늘 부족했다.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유럽으로, 미국으로, 전 세계로 번지면서 인류 역사상 보기드문 생산성 향상과 소득상승이 나타났다. 그래프가 그것을 보여준다.

디턴 교수는 이 점을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류가 고안해낸 가장 좋은 문명진화 방법이라는 것이다. 디턴은 돈은 삶의 질과 행복을 좌우하는 요소라고 확신한다. 이 점은 ‘이스털린 역설’을 공박한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1974년 논문에서 ‘소득이 높아져도 꼭 행복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디턴 교수는 삶의 만족도는 소득에 정비례한다는 것을 통계분석으로 입증했다.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의 성과를 빈곤탈출에서만 찾지 않았다. 질병퇴치와 평균수평의 획기적인 증가, 지식확대에도 주목했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전 인류의 평균수명은 매우 짧았다. 오늘날 선진국이라는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평균수명이 30~40세에 불과했다. 200~300년 전 인류는 이랬다. 유럽의 현재 평균수명은 거의 80세를 바라본다. 한국도 조선시대보다 두 배가량 긴 70세에 달한다. 이는 일찍 죽는 영아사망률이 뚝 떨어진 덕분이다. 소득증가와 경제성장으로 영양 및 위생 상태가 나아져서다.

디턴: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

디턴 교수는 자본주의가 확산된 결과 세계의 불평등은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가난한 나라들이 성장해 많은 중산층을 낳고 있다는 것. 한국,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가 대표적인 국가다. 이들 나라에서도 발명, 혁신, 경쟁이 작동해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다. 개방화와 자유무역으로 기술과 자본이 유입됐고, 국제분업이 활성화돼 가난한 나라들도 성장의 기회를 잡았다. 한국은 살아있는 증거다.

경제학자들은 아프리카도 100년 안에 오늘날 중국의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현재 가장 많은 중산층을 만들어내고 있는 인류의 중산층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자본주의는 가진 것이 없던 사람을 부자로 만들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애디슨 등이 당대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수많은 사람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높은 소득을 안겨줬다. 자본주의는 전례없이 인류의 삶을 풍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디턴 교수의 결론이다.

피케티:불평등이 민주주의 위기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이룬 성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악화시켰고,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디턴 교수도 자본주의 성장과정에서 불평등이 수반된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피케피보다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피케티는 ‘쿠츠네츠 이론’이 잘못됐다는 전제에서 책을 썼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쿠츠네츠는 ‘경제발전 초기에는 불평등이 심화되다가 발전이 성숙하면서 불평등이 완화된다’고 했다. 피케티는 300년간의 자료를 분석해봤더니 쿠츠네츠가 틀렸다고 주장했다. 부(富)가 세습되면서 불평등이 더 심화되는 게 자본주의의 특성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했다. 모든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는 경제성장률보다 부자들의 자본수익률이 더 높다면 잘 사는 사람, 즉 부를 세습받은 사람들이 더 잘 살게 된다는 뜻이라고 그는 해석했다.

하지만 자본이익은 자동적으로 늘어나지 않는다. 축적된 자본은 리스크가 있는 곳에 투자돼야 이익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손해가 날 수도, 이익이 날 수도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기존 자본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자본가가 등장하기도 한다. 피케티는 자본축적이 생산성을 높이고, 일자리를 만들고, 결국 임금을 올리는 자본작동 원리를 무시하고 있다. 디턴 교수는 “피케티가 왜 불평등에만 그렇게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는 말로 평가절하했다.

스티븐 핑커'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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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과거는 현재보다 더 폭력적이었다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현대는 과거보다 더 폭력적인가’라는 데 의문을 갖고 연구를 했다. 18세기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인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도덕적으로 더 황폐해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는 온갖 역사적 자료와 통계를 연구한 뒤 결과물을 1400쪽에 달하는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펴냈다.

그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전쟁, 살인, 영아살해, 인간제물, 마녀, 노예, 사형, 집단살해, 구타, 강간, 고문, 박해, 처형방법 사례와 통계를 모조리 뒤졌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가 훨씬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 인류의 폭력성은 근대 이후 획기적으로 줄었다.” 매일매일 텔레비전에 학교 총격사건, 강도, 살인, 지역분쟁 소식을 듣는 우리로서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과거에 대한 향수는 망상이라고 그는 일갈했다.

요즘 어린이 책들은 원주민의 삶을 낭만화해 그린다. 하지만 전쟁 사망률이 현대 세계대전보다 훨씬 높았다고 통계로 입증했다. 부족 간 전쟁에서 진 부족은 몰살됐다. 영아살해와 인간제물은 흔했다. 중세유럽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그는 고문도구와 잔인한 살해방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한다. 중세의 살해위험은 오늘날의 30배였다고.

폭력성을 줄인 것은 근대성이었다. 이성, 과학, 인도주의, 개인의 권리가 폭력 감소에 기여했다. 인간은 똑똑해지고 있고, 국가를 만들고, 상업을 통해 경제적 풍요, 도덕, 평화, 협동, 자기통제에 공감한다. 이젠 동물 하나를 죽여도 공분을 나타내는 시대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