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정부·경제 모두 장악
1인 지배체제 구축 완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국제질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양대 지도자다. 중국의 정치·경제 권력을 모두 장악한 시진핑 주석이 궁극적으로 꿈꾸는 것은 ‘중화민족 부흥’이다. 그는 부패척결이라는 기치를 내걸어 중국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고, 급속히 커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힘의 외교를 펼치고 있다. 미국 일본에 초강경 대응을 하는 것도 막강한 경제·군사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는 2005년 당서기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으며 인생역정과 성격이 ‘닮은 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1인 지배체제 완성한 ‘시 황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가장 강력한 권력자로 뽑힌다. 혁명가였던 부친(시중쉰) 인맥의 지원이 막강하고, 혁명 원로그룹 자제 그룹인 태자당(太子黨)의 지지도 받고 있다. ‘시 황제’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다. 시 주석이 현재 맡고 있는 핵심 직책만도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10여개에 달한다. 최근엔 리커창 총리가 맡고 있던 경제권력까지 접수하면서 사실상 1인 지배체제를 굳혔다. 시 주석이 단시일 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것은 무엇보다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는 부석이다. 부총리를 지낸 시 주석의 부친은 공산혁명가로 당·군 전반에 걸쳐 인맥이 넓은데, 이런 인맥이 시 주석의 권력기반 강화에 큰 힘을 실어주었다는 것이다.

정계뿐 아니라 국영기업 등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이 있는 태자당 역시 시 주석의 든든한 원군이다. 장쩌민 전 주석은 텐안먼 사태로 지지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갑자기 권력을 잡았고, 후임자인 후진타오 전 주석은 2년 동안이나 군권을 물려받지 못했으나 시 주석은 후 주석으로부터 군권을 바로 넘겨받았고 태자당의 지지, 경제권력 장악 등으로 빠른 시일 내 공고한 권력체제 굳히기가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경제는 개혁·개방 - 외교는 힘으로

[Cover Story] '시 황제'로 떠오른 시진핑…'중화부흥' 목표 향해 뛴다
시 주석의 경제노선은 개혁·개방이다. 2012년 12월 집권하자마자 개혁·개방의 상징인 광둥성을 찾은 것은 그의 경제관을 잘 보여준다. 덩샤오핑 전 주석은 1992년 광둥·상하이 일대를 두 달간 순방하면서 ‘계획경제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쐐기를 박았다. 시 주석의 광둥성 순방은 경제에 있어서만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따르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는 분석이 우세하다. 시 주석이 광둥에서 “개혁·개방을 안했으면 중국의 현대화와 사회주의는 장례식을 치렀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가 지속적으로 경제 개혁·개방을 추진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경제 분야에서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 한국에도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시 주석의 대외관계는 경제력에 바탕한 ‘힘의 외교’다. 이는 중국 공산주의 혁명가로 1960년대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마우쩌둥과 닮은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 주석은 어릴적부터 혁명가였던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고 첫 경력을 쌓은 곳도 군(軍)이다. 시 주석이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숨어서 힘을 기른다)’는 전략대신 마오쩌둥의 ‘대파대립(大破大立·크게 부수고 크게 세운다)’ 외교전략을 쓴다는 분석도 나온다. 자국의 이익에 손상이 간다고 판단되면 미국이나 일본 등과도 정면으로 강경히 맞설 수 있다는 얘기다. 시 주석 스스로는 “중국엔 패권을 추구하는 유전자가 없다”고 강조하지만 밀어붙이기식 힘의 외교가 지속되면 패권싸움이 치열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집권 2년차를 맞은 시진핑의 중국은 정치는 좌파, 경제는 우파로 요약된다.

부정부패 척결 칼 빼다

시 주석이 내부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비리척결이다.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 중국의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생각이다. 주석직에 오르자마자 강력한 정풍(整風·사회 기풍을 바로잡음) 운동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다. 일부에서는 시 주석이 정치적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정부패 척결카드를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시 주석이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공무원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은 ‘삼신(三愼)’이다. 비리의 고리를 끊으려면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시신(始愼)’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이것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하고 올바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는 ‘독신(獨愼)’이다. 홀로 있을 때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지 스스로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 홀로 있어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대학의 신독(愼獨)과 의미가 비슷하다. 셋째는 ‘미신(微愼)’으로, 아무리 사소로운 일이라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스스로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 정·재계 핵심요직 포진 그물망처럼 촘촘한 태자당의 인맥들

태자당(太子黨)은 중국 당·정·군·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1997년에 사망한 덩샤오핑의 자녀 및 사위를 비롯해 각계 실력자들의 자녀 약 4000명이 중국의 핵심 요직에 포진하고 있다. 이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모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혈연, 결혼, 학교, 직장 등을 통해 그촘촘한 인맥을 형성하며 중국의 정·관계와 경제계를 주름잡고 있다. 중국 엘리트 정치의 중심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인물은 태자당의 황제로 군림하며 ‘중국제일태자’로 불리던 덩샤오핑의 큰 아들 덩푸팡이다.

장 애인연합회 주석인 덩푸팡은 중국 최고정치 자문기구인 제11기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에 선출되기도 했다. 정협 부주석직은 ‘국가 지도자급’에 속하는 막강한 자리다. 장남 덩푸팡이 1980년대의 태자당을 대표했다면 1990년대는 단연 막내 덩즈팡의 시대였다. 덩즈팡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87년 이후 중국국제투자신탁공사에서 일반 사무원으로 일했다. 그러나 결국 태자당 특유의 인맥인 ‘관시’를 최대한 이용해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에서 막대한 부를 구축했다.

정치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태자당 출신으로는 혁명열사의 아들로 저우언라이의 양자인 리펑,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지낸 예젠잉의 아들인 예셴핑, 국가부주석을 지낸 우란푸의 아들 우부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을 지낸 장중루의 아들인 장하오뤄 등이 있다. 이처럼 태자당은 중국의 정·관·재계 곳곳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1989년 6월4일 톈안먼 사건을 야기한 중국 민주화운동의 핵심 요구 중 하나가 ‘태자당의 비리 척결’이었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중국민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