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 개방의 경제학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은
기업과 산업을 경쟁에 노출시켜 더 강한 체질로 변화 유도

자급자족의 원시국가 아니라면
개방경제와 무역에 몸을 실어야
[Cover Story] 보호주의는 소탐대실…자유무역이 번영을 낳는다
시장개방은 늘 논란을 낳는다. 시장개방 얘기가 나오면 선진국들도 내부적으로 시끄러워진다. 후진국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당, 이익집단, 산업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른 탓이다. 어떤 나라는 자동차산업을, 어떤 나라는 영화산업을, 어떤 나라는 농업을, 어떤 나라는 미발달 상태인 유치(幼稚)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개방을 안 하거나 덜 하려 한다. 한 국가경제가 과거 원시부족처럼 폐쇄된 공간 속에서 자급자족을 고집한다면, 시장개방은 필요없다. 하지만 국가가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세계문명 속에서 단계적으로 발전하려면 개방경제와 자유무역에 몸을 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살아있는 역사

대한민국은 개방경제와 자유무역으로 성장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개방은 언제나 쌍방향이다. 우리를 외부 세계에 여는 대신, 열려 있는 다른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성공 스토리는 수치로 나타난다. 1965년 ‘수출액+수입액’은 5억달러 남짓이었으나 이젠 1조달러가 넘는다. 1인당 국민소득도 100달러 미만에서 2만5000달러에 육박한다. 자유무역과 개방이라는 시대조류를 탄 덕분에 한국은 지구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국가에 상품을 판다. 경쟁이 무서워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아직도 그저그런 나라 중 하나로 남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은 두 나라 모두를 잘 살게 만든다. 다른 나라에서 생산되는 싸고 좋은 재화를 살 수 있게 된다. 자유무역은 분업을 자극해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비교우위를 교환해 서로 이익을 얻는다. 칠레 사람들은 포도를 재배해 포도주를 만드는 대신 한국은 휴대폰이나 LCD TV를 만들어 무역하면 서로 이득이다. 물론 칠레가 더욱 성장해 휴대폰 기술을 만들 만큼 자본을 축적할 수도 있다. 한국도 가발, 신발을 만들다가 반도체를 만들 수 있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당장 두 나라는 그럴 필요가 없다. 부족한 것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잘하는 분야를 계속 넓혀 세계로 수출하는 것이 자유무역의 혜택이다.

부딪쳐야 강해진다

자유무역과 시장개방은 기업과 산업을 경쟁에 노출시켜 강한 체질을 갖도록 한다. 강한 체질은 곧 경쟁력을 말한다. 스크린 쿼터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 우리나라 영화산업은 후진적이었다. 극장도 엉망이었고, 시나리오와 작품 수준도 형편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 영화산업은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라는 보호막 속에서 그럭저럭 연명할 수 있었다. 영화관들은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일정 기간 틀어야 한다는 규제 덕분이었다. 2006년 정부는 스크린 쿼터를 대폭 축소했다. 외국영화가 더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경쟁에 노출된 한국영화는 무서워했다. 영화인들은 삭발하고 몇몇 정치인들도 ‘스크린 쿼터 반대 시위’에 합세했다.

보호막이 줄어들자 영화산업이 바뀌기 시작했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경쟁력 강화로 나타났다. 영화산업 투자가 늘어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생겼고, 거액투자 영화, 좋은 시나리오가 잇따라 나왔다. 1개 영화를 1000만명이나 보는 영화도 생겼다. 보호막을 걷어낸 결과였다.

자유무역하면 네덜란드

자유무역이 경제성장의 원천이라는 사실은 세계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네덜란드를 보자. 네덜란드는 한국처럼 천연자원이 거의 없는 작은 나라였다. 중세의 폐쇄적인 길드제도와 자급자족 경제로는 먹고 살 수 없었다. 네덜란드는 무역에 나섰다. 독일과 영국에서 양모나 주석, 구리를 수입했다. 수입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반대로 수출산업을 발전시켜야 했다. 선박업과 조선업을 키웠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유럽의 곡물 등을 실어나르는 해양무역 중심지가 됐다.

네덜란드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지 않았다. 당시 유럽국가들은 중상주의에 매몰돼 있었다. 중상주의는 국제무역을 제로섬(zero sum)게임으로 봤다. 따라서 무역으로 이익을 보려면 국내 시장은 닫고, 해외시장은 열어야 했다. 식민지를 개척해야 했던 이유다. 금 수출은 안 되고 금 유입만 바랐던 것이 중상주의다. 네덜란드는 반대였다. 금 수출도 금지하지 않았고 국내 산업도 보호하지 않았다. 순수한 자유무역 정책을 유지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가 됐다. 하지만 이후 네덜란드는 정부개입과 보호주의 강화로 급격히 쇠퇴했다.

보호주의는 소탐대실

자유무역과 개방은 새로운 제품과 기술 도입을 가능케 한다. 일자리와 산업발전도 개방경제에서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특정 이익집단의 요구에 따라 특정 산업을 보호하면 그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현실에 안주하게 한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한 책에서 “보호주의는 자본과 노동이 소비자 수요를 더 잘 만족시키는 쪽으로 옮겨가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쌀 시장 완전개방은 어떨까. 쌀 농사에 종사하는 인구는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쌀 산업 종사자가 줄어든다는 것은 쌀의 경쟁력이 없어진다는 의미다. 쌀시장 개방도 ‘스크린 쿼터제 축소’와 비슷하다. 두려움이 문제일 뿐이다.


쌀 소비 줄어 남아도는데 외국 쌀 의무수입물량은 올해만 40만8700t

한국은 연말까지 쌀 시장을 완전히 개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20년 개방유예’ 기간이 올해로 끝나기 때문이다. 쌀시장 개방 일정이 정해진 것은 1993년 세계적인 시장 개방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에서 비롯됐다. 수출 경쟁력을 갖춘 한국에 세계적인 시장 개방은 오히려 기회였다.

그런데 쌀만은 식량안보라는 특수성이 인정돼 단계적 개방 품목이 됐다. 한국은 1차로 2004년까지 개방유예를 선택했다.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쌀 의무수입량을 국내 소비량의 4%로 정했다. 공짜로 개방유예를 받을 수 없으니 비용을 지급하라는 의미다. 2004년 다시 협상을 벌여 한국은 의무수입량을 매년 2만t 늘리는 비용을 지급하고 2014년까지 개방을 재차 유예받았다.

그 결과, 올해 한국이 의무수입해야 할 쌀은 40만8700t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국내 쌀 생산량의 7.97%에 달하는 양이다. 지난 20년간 쌀 의무 수입에 쓴 돈은 3조원이다. 또 수입됐으나 팔지 않고 쌓아놓은 쌀 보관비도 수백억원에 달한다. 한국의 쌀 생산량은 매년 600만~700만t에 달한다. 쌀이 남아돌고, 1인당 쌀 소비량이 1995년 106.5㎏에서 올해 68.5㎏으로 줄어드는 상황에서 국내 쌀시장 보호를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면서 의무수입량을 늘리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쌀시장을 완전 개방하면 의무수입쌀을 안 들여올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입쌀에 높은 관세를 붙여 가격을 국내 쌀보다 높게 매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산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가 17만4000원 선이고 국제 쌀 가격은 6만원이지만 여기에 관세 200%를 물리면 18만원 선이 된다는 의미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