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와 가격통제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
폭격보다 임대료를 통제하는 것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아주 중요한 정보는 가격에 나타나 있다.”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쉬운 방법?
폭격보다 임대료를 통제하는 것
‘자유주의로의 초대’를 쓴 데이비드 보아즈(David Boaz)가 제8장 ‘가격’ 항목에서 한 말이다. 그는 “가격은 단순히 가게에서 어떤 물건이 얼마 하더라는 것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가격은 누가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 그것에 얼마의 가치를 매기는지, 어떻게 생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등 경제에서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 보아즈의 생각이다.
생수·쌀 가격통제 에피소드
보아즈의 설명은 쉬운 것처럼 들리기도, 어려운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가격은 마술 같은 신호다. 가령 어느 지역의 물 가격이 높다는 것은 어떤 신호일까? 이것은 단순히 물값이 비싸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 먹을 물이 없는 지역을 상상해보자. 우연히 그 지역의 편의점 한 곳이 멀쩡하게 살아남았다면 그 집이 보유한 생수값은 엄청나게 뛰어 오를 것이다. 서로 그 생수를 사겠다고 돈을 싸들고 올 가능성이 높다. 이때 집주인이 생수 한 병을 5000원에 판다고 하면 악덕장사꾼일까?
5000원이라는 높은 가격은 큰 역할을 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여러 생수업자가 이 소식을 들었다고 해보자. 이들은 이 물값을 보고 서둘러 물을 싣고 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수 공급이 재빨리 늘고 피해지역 주민들은 곧 정상적인 물값으로 물을 마시게 된다.
하지만 정부가 애초부터 5000원을 못 받도록 했다고 해보자. 피해주민을 위한답시고 물값을 시중보다 싼 500원으로 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난다. 물값이 5000원인 것을 보고 물을 공급하려 했던 다른 생수업자들은 공급을 포기할 것이다. 이로 인해 피해지역 주민은 더 긴 시간동안 물이 없는 고통을 겪게 될 게 뻔하다. 이 경우 가격은 공급부족을 세상에 알리는 결정적인 신호가 된다.
과거 조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연암 박지원 얘기다. 어느 해 지금의 서울인 한성에서 쌀값이 폭등했다. 당시 왕은 쌀값 폭등이 백성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쌀값을 올리지 못하게 어명을 내렸다. 쌀값을 올려받다가 적발될 경우 홍역을 치렀다. 이때 박지원이 어명이 잘못됐다며 나섰다. 얘기인즉, “지금 한성의 쌀값이 뛰었다는 말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쌀을 짊어지고 팔러 오다가 되돌아가고 있는데 어명 때문에 한성의 쌀 부족사태는 더 오래 가고 가격은 더 뛸 것이다.” 이를 들은 왕은 어명을 거두었다.
임대료 통제 에피소드
가격통제에 관한 재미있는 사례는 더 있다. 한창 번창하는 도시를 생각해보자. 도시에 사람이 몰리면, 당연히 상가임대료와 전셋값,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다. 물론 가격이 치솟는 것은 집주인이나 상점주인의 잘못이 아니다. 이때 정부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임대료의 가격을 규제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경제학자들은 임대료 통제가 임대주택의 부족현상을 심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임대료가 높았다면, 주택건설업자들은 향후 추가적인 호경기를 예상해 더 많은 집을 지으려 했을 것이다. 그런 시장과 가격에 비즈니스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통제된다면 주택사업자들은 주택을 더 짓지 않는다. 이로 인해 집부족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집주인들은 별도의 계약으로 더 받는 편법을 쓰거나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임대료 통제는 또 해당지역을 슬럼화시킨다. 더 이상 임대료를 올려받지 못하게 된 주인들은 상가나 집을 고치려는 의지도 사라진다. 임대료가 높다면 그 돈으로 유리창과 인테리어도 바꿔보려 한다. 스웨덴 경제학자 린드벡은 “많은 경우에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폭격 외에 도시를 파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임대료 통제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최저임금제 에피소드
또 하나의 예는 최저임금제다. 가령 시간당 5000원으로는 살기 힘든데 왜 최저임금을 8000원으로 안 올리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착한’ 질문이다. 그러나 최고가격제가 공급부족을 야기한다면, 최저가격은 공급과잉을 낳는다. 생산성이 법정 최저임금(예를 들어 8000원) 이하인 비숙련 노동자는 서로 최저임금을 받으려 하지만 고용기회를 갖기가 어렵다. 고용주들은 생산성이 낮은 비숙련 노동자 2명을 쓰는 것보다 숙련노동자 1명을 쓰거나, 기계에 투자하려 할지 모른다. 경제학자인 위리엄 보물과 앨런 블라인더는 ‘경제학: 원리와 정책’에서 “최저임금법의 주요 결과는 비숙련 노동자들의 소득증가가 아니라, 그들의 고용기회의 제한이다”고 지적했다.
가격은 시장이 결정하도록 놔둬야 한다. 기업가들은 가격을 보고 혁신하고, 분업도 늘린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면 계획했던 결과를 얻기보다 더 큰 후유증을 남긴다. 정부가 통제하면 시장은 보복한다.
“가격이 없는 사회주의는 망할 수 밖에 없다”…현실이 된 미제스의 예언
경제학사에 유명한 논쟁이 하나 있다. 바로 사회주의 가격논쟁이다. 루트비히 폰 미제스라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가 1920년 내놓은 이론이다. 그는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유럽은 지상에 천국을 건설한다는 마르크스 사회주의 계급론과 레닌과 트로츠키의 1917년 러시아 혁명에 매몰돼 있었다. 이런 때에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외쳤다니….
시간이 흘러 1980년대에 이르자,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국가가 줄줄이 망했다. 미제스의 말은 예언이 아니라 현실이 됐다. 그는 불가능 이유를 ‘가격이 없는 사회주의의 기본속성’에서 찾았다. 사회주의자들은 생산문제를 주로 기술문제로 생각한다.
기술만 있으면 다 만들어 배급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우리는 생산이 모든 생산요소의 가격문제(희소성)이고 효율문제임을 안다.
사회주의 국가는 중앙관료들이 얼마를 생산할지, 무엇을 생산할지를 ‘계획’하는 체제다. 하지만 ‘무엇을 얼마나’는 가격이 제공하는 정보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맥주캔을 가장 저렴한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백금으로 만드는 식이다. 알루미늄과 백금 가격이 없는 상태에선 ‘가능한 최선의 생산방법’을 찾을 길이 없다. 사회주의에선 캔 개수만 맞게 생산하면 된다. ‘내 것이 없는 한’ 원가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빵, 고기, 냉장고, 유리 등도 마찬가지다.
희소성이 없고 모든 것이 넘쳐난다면 사회주의가 가능할지 모른다. 수시로 변하는 수천만 가지의 가치와 가격을 중앙관료가 알 수는 없다. 비효율의 극치인 사회주의가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미제스는 누구보다 미리 내다본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