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으로 이끄는 키워드 '소통'
인류는 오랜 과정을 거쳐 크고 작은 소통 방법을 만들어 왔다. 원시 부족사회부터 현대 거대사회에 이르기까지 소통이 중요하지 않은 때는 없었다. 집단 전체가 어떤 소통체제를 갖추느냐에 따라, 또 지도자가 어떤 소통관(리더십)을 가졌느냐에 따라 한 나라, 혹은 한 집단의 흥망성쇠가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소통은 단순히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하는 수준을 의미하진 않는다. 보다 복잡하고 고도화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제 속의 소통을 말한다. 인류는 어떻게 고도의 소통기구와 체제를 만들어 왔을까.원시사회 소통은 단순
원시 부족사회를 떠올려 보자. 30~50명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소통은 간단했을 것이다. 족장이 부족민을 마당에 모으면 됐다. 족장이 부족민의 상태를 다 물어볼 수 있었다. 누가 아픈지, 누가 아기를 낳았는지, 사냥 날짜는 언제가 좋은지 등. 이러한 원시상태는 인류의 머리 속에 수 만년간 각인됐다. 진화론자들은 “이 같은 원시부족적 소통방법이 DNA로 유전돼 최첨단 현대사회에서도 부족 공동체적 소통을 찾는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원시 부족의 소통방법은 문명이 진화하면서 바뀌었다. 사회는 지리적으로, 인구학적으로 거대해졌다. ‘지도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정도의 크기로 국가를 제한하자’는 낭만적 정치철학은 퇴화했다. 거대사회에선 다른 소통방법이 필요했다. 바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제도다. 정치적으로 인류는 투표제도를 만들었다. 사람들을 마당에 모아 놓고 일일이 의견을 물어볼 수 없는 거대사회의 해결책은 투표였던 것이다.
처음엔 세금을 내는 남자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젠 특정 나이 이상이면 모두 투표하는 보통선거의 시대가 됐다. 투표를 통해 우리는 정치지도자를 바꾸기도 한다. 투표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소통방법이다.
시장(市場)과 화폐도 멋진 소통방법이다. 시장에선 차별이 없다. 좋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면 누구나 성공하는 곳이 시장이다. 남녀, 흑백인종, 기업 간 차별이 없다. 그것이 누구든 소비자의 선택을 못 받으면 도태된다. 시장이 생기면서 인류는 다양한 교환이 가능해졌으며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화폐도 그런 점에서 큰 역할을 했다. 국가별 화폐 교환비율을 통해 국제무역이라는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커피를 한국사람이 먹는 것은 경이적인 소통이다.
소통의 이중성
제도를 떠나 단순히 ‘지도자론’을 얘기할 때 소통은 이중성을 갖는다. 소통을 잘하는 대통령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어느 쪽이 나을까.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고도의 판단력이 필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소통에 기대어 국민들에 일일이 물어보는 것은 난센스다. 일반 국민들은 정책 결정에 필요한 고도의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 바로 소통의 한계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를 보자. 대처 수상은 오히려 소통에 연연하지 않았다. 영국을 ‘영국병’에서 구해내기 위해선 복지와 노조만능주의에 젖어 있는 국민에게 오히려 ‘물어보지 않는 길’을 택했다. 이것이 리더십이다.
소통이라는 방법과 타협했다면 영국은 결코 재생의 길을 밟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어볼 거면 왜 지도자가 됐나”라고 할 법하다.
노예 해방을 부르짖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인기영합적인 소통을 거부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그는 소통보다 오히려 전쟁을 통해 국론을 통일시켰고 남북을 연방체제에 머물게 했다. 소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는 아마도 “소통은 엉터리 지도자들이 기대는 둔덕”이라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도 이런 지도자에 속한다.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뒤섞인 혼란의 시대를 맞았다. 세계사적으로 당시엔 공산주의가 유토피아로 데려다 준다는 사상적 조류가 팽배했다. 그때 이 전 대통령은 “사회주의는 망하는 길”이라고 부르짖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전혀 몰랐던 당시 국민과의 소통에만 의존했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북한과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투자계획, 소통으로 결정?
기업은 어떨까. 최고경영자가 직원과 소통을 강화한다고 의사결정 회의를 하는 것은 옳을까. 체육대회에 참가해 직원들과 노는 것이 소통이라면 매우 원시적이다. 하지만 고도의 판단을 요하는 투자계획을 노조나 직원들과의 대화로 결정할 수 있을까. 없다. 직원들은 국제시장과 경쟁회사에 대한 정보가 없고 해석도 쉽지 않다. 가령 수조원이 드는 반도체 생산라인을 증설하는 결정을 직원들과 소통해(?) 결정할 수 있을까?
소통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역사도 많다. 나치의 파시즘이 대표적인 사례다. 히틀러는 국민들과 소통한다는 명분에 집착해 국가주의로 국민을 휘몰아 갔다. 국민들은 흥분했고, 지도자의 독재에 모든 것을 맡겼다. 그들은 그것을 ‘국민적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소통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이미지 정치로 흐를 가능성도 매우 높다.
긍정의 소통방법, 칭찬…고래도 춤추게 한다
칭찬은 긍정의 소통 방법 중 하나다. 남의 단점을 부각시키기보다 잘한 점을 칭찬해주면 기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칭찬이 인센티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다.
이 책은 대기업의 중역인 웨스 킹슬리가 어느날 범고래쇼를 보고 칭찬과 긍정의 힘을 깨닫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주인공은 바다의 포식자인 범고래와 조련사 사이에 형성된 믿음에 주목한다.
주인공은 범고래가 훈련을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했을 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을 받은 훈련이 고래의 감각에 박히고, 고래는 훈련을 반복해 수행한다.
고래가 제대로 못했을 때는 재빨리 다른 행동으로 유도한다. 주인공은 조련사로부터 명망 있는 컨설턴트인 앤 마리 버틀러라는 여성을 소개받는다. 그녀는 범고래의 조련 방법을 직장과 가정 내 인간관계에 적용시키는 법을 심층적으로 배운다. 기업 간부인 주인공은 이 같은 공부를 통해 기업에서, 가정에서 자기가 할 일을 훌륭히 해내게 된다.동기 부여는 많은수록 좋다.따끔한 충고도 중요하지만, 칭찬을 통한 소통은 보다 심도 있게 책임감을 느끼게 하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기분을 만든다. 꾸지람을 많이 받고 크는 아이와 칭찬을 통한 소통에 많이 노출된 아이 중 성공할 가능성은 후자가 더 높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