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불균형 논란
이런 말이 있다. ‘먹을 것이 없다면 문제는 한 가지뿐이지만 먹을 것이 많아지면 모든 것이 문제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의 책 ‘21세기 자본론’의 내용을 보면 이 말이 딱 떠오른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좌파 경제학의 단골 메뉴인 부(富)의 불평등 심화다. 인류가 산업혁명을 계기로 절대빈곤에서 ‘대탈출’하기 시작한 이래로 부의 불평등 심화는 수많은 학자의 논문 주제였다. 이 책은 먹을 것이 없던 시대에 대한 책이 아니다. 먹을 것이 많아진 이후 나타난 빈부격차를 분석하려 했다. 방대한 양의 소득통계를 분석했다는 피케티의 주장은 통계 왜곡 없이 제대로 된 것일까.언제부터 잘 살게 됐나
피케티에 대한 찬반 논의에 앞서 인류가 언제부터 잘 살기 시작했는지를 잠시 들여다보자. 인류는 200여년 전까지 줄곧 절대빈곤에서 허덕였다. 먹을 것은 늘 부족했으며, 질병은 어린 목숨을 수없이 앗아갔다. 인류의 평균수명은 오늘날의 절반 수준인 30대 중반을 넘지 못했다. 원시적인 농경 기술과 더러운 환경 탓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는 그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역부족이었다.
절대빈곤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전환점은 산업혁명이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의 소득 수준은 수직 상승했고 인구도 급증했다. 그 유명한 대탈출이자 대도약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기술 발전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다. 즉, ‘먹을 것이 많아지면서 모든 것이 문제가 되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인류의 기적을 의미하는 위트 섞인 표현이다. 국가는 물론 개인별로 부가 축적되면서 국가 간, 개인 간 불평등 심화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15년간 데이터 분석
피케티는 세습을 통한 부의 불평등을 입증하기 위해 1700년부터 300년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수집과 분석에 1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모은 자료는 주요 20개국의 소득세 데이터였다. 각국의 자본과 소득의 증감은 물론 생산성과 인구 증감을 통계분석했다. 분석 초점은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하는 데 두었다.
자본수익률을 내세운 이유는 이 지표가 축적된, 즉 세습된 부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을 잘 반영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식이나 채권 예금 부동산 주택 공장 기계 등 모든 자산을 통해 들어온 수익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값을 자본수익’으로 봤다. 경제성장률도 요즘 주로 사용하는 GDP(국내총생산)가 아니라 인구 증가와 생산성 증가율을 더한 값으로 계산했다.
피케티는 300년간의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는 분석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가 도출한 자본수익률은 4~5%,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6%였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것은 선대에서 물려받은 부가 높은 이익을 줬다는(부의 불평등 심화) 의미를 갖는다. 땀보다 세습이란 뉘앙스, 즉 세습자본주의가 심해졌다는 복선을 깐다.
피케티는 또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소득세 데이터를 사용해 소득집중률도 분석했다. 100년 전까지 소득 상위 10%가 전체 부의 80~90%를, 소득 상위 1%가 50~60%를 차지하는 국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70%를, 하위 50%가 5%를 차지했다고 썼다. 피케티는 결론 부분에서 앞으로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부유세, 자본에 대한 누진세를 도입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학이 아니라 억측”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 주류경제학계는 한마디로 황당한 분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것은 경제학적 이론이 아니라 억측이나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다는 결론은 수많은 변수를 빼버린 허구라고 지적했다. 어떤 사람이 부자이더라도 망하는 사람이 많은데 지속적으로 세습된다는 전제 자체가 엉터리라는 것. 맨큐 교수는 또 자본가들은 자본수익을 기부하거나, 소비하기 때문에 피케티의 말처럼 세습용으로 축적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도 비판에 가세했다. 이들 신문은 피케티는 경제성장엔 관심이 없고 분배적 정의에만 초점을 맞춰 크게 부풀렸다고 꼬집었다. 1%의 소득이 오르면 99%가 가난해진다는 논리라는 비판이다.
피케티의 주장과 달리 전 세계의 빈부격차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들이 자본주의에 합류해 더 잘 살게 되면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세계적인 평등화를 피케티는 못보고 있다고 주류경제학자들은 비난한다.인류를 잘 살게 한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게 좌파 피케티의 목표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소득과 부의 분배는 시장경제의 결과이지 단순히 세습의 결과가 아니다. 소득 불균형이 존재하긴 하지만 ‘세습자본주의화’하고 있다는 분석은 무리다.
로마클럽 ‘성장의 한계’, 대표적 오류 보고서…곳곳에 엉터리 통계
논문과 책은 많은 오류를 안고 있다. 아예 잘못 쓰거나 수치를 조작한 논문도 비일비재하다. 의도된 목적에 따라 통계를 조작하는 것은 많은 학자에게 유혹으로 다가온다.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피케티에 대한 비판도 여기에 모아진다. 지나치게 변수를 단순화해 결론을 도출해냈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
로마클럽이 후원한 ‘성장의 한계’가 대표적인 오류 투성이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인구 증가로 자원이 고갈된다는 결과를 담았지만 엉터리 분석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성장의 한계’가 나오자 세계는 들썩거렸다.
자원이 고갈돼 인류 문명이 곧 위기에 처할 것이란 경고는 지구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분석에 이용한 통계가 엉터리여서 후원자인 로마클럽은 거짓 보고서라는 결론을 냈다. 자원은 더 개발되고 늘어났는데도 ‘성장의 한계’는 성장의 끝을 외쳤다.
통계 조작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단순한 실수(팻 핑거), 수치 늘리기, 엉터리 평균치, 가공 데이터 만들기, 잘못된 연도 비교 등이다. 아예 조작된 수치를 넣는 경우도 있다. 피케티의 경우도 이런 비판 대상에 올라 있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이 10%나 부풀려졌다거나, 미국에선 소득 상위 1%의 소득이 꾸준히 줄어들었는데도 급증한 듯한 결론을 내는 식이다. 문제는 이렇게 조작된 보고서가 폐기되지 않고 끊임없이 재인용된다는 것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