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의 경제학
[Cover Story] 환율 떨어지면 물가는 안정되지만…수출업체는 채산성 악화로 한숨…적정환율의 딜레마
통화 가치(환율)는 국제교역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변수다. 통화 가치의 변화, 즉 환율의 등락에 따라 교역 규모 자체는 물론 교역의 채산성(수익성)도 크게 변한다. 수출만을 고려하면 자국의 통화 가치가 약해져야 수출여건이 좋아진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이 ‘자국 통화 가치 끌어내리기’에 신경을 쓰는 이유다. 국가 간 통화전쟁의 핵심도 ‘자국 통화 가치 낮추기’다. 하지만 통화 가치 하락이 경제를 풀어가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당장은 수입물가가 올라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유학생들의 학비나 해외여행 부담도 크게 늘어난다. 원론적으로 따지면 통화 가치가 약해진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체력(펀더멘털)이 그만큼 허약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움직이는 환율·통화가치

최근 우리나라 통화인 원화의 가치는 강세기조가 뚜렷하다.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20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거의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원·달러 환율이 낮다는 것은 원화 가치가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면 원화 1100원을 주고 1달러와 바꾼다는 의미다.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 1000원을 주고도 1달러와 교환이 가능하다. 이때 환율은 달러당 1000원이다. 원화 가치와 환율이 반대로 움직이는 이치다. 하지만 이것은 원화를 기준으로 한 입장이다. 미국 측에선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달러 가치도 그만큼 약해진다는 의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의 공동통화인 유로와 달러의 환율은 유로가 기준이다. 따라서 유로당 1.3달러 식으로 환율이 표시된다. 이 경우 환율이 상승하면 유로 가치가 강하고, 환율이 하락하면 달러 가치가 강하다는 의미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불거질 당시 달러·유로 환율이 크게 낮아진 것도 이런 이유다. 통화가치는 기본적으로 그 나라의 경제기초체력(펀더멘털)이 좌우하지만 통화의 수급, 지정학적 리스크, 정치상황 등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수출과 물가의 딜레마

환율은 국가경제의 큰 변수다. 환율은 외국과의 교역은 물론 여행, 자본이동 등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환율을 결정하는 통화 가치는 바꿔 말하면 그 통화의 구매력이다. 구매력이 강하면 같은 단위의 돈을 가지고도 더 많은 상품을 살 수 있다. 환율이 변한다는 것은 구매력이 변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인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국제무역의 60% 정도는 달러로 결제된다. 유로나 엔도 대표적 결제 통화다.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의 위상을 높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이다. 위상이 다소 약해졌다 해도 세계의 기축통화는 누가 뭐래도 달러다. 달러 가치 변화가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출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원·달러 환율은 우리나라 수출에 어떤 영향을 줄까.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100원이라면 우리나라 수출기업은 1달러어치를 수출해 1100원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환율이 1000원으로 하락하면(원화 강세) 같은 1달러어치를 수출해도 매출이 1000원으로 줄어든다. 당연히 수출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수출경쟁력도 약화된다. 수출단위당 이윤이 적어지면서 할인판매 등 마케팅에서도 제한을 받게 된다. 반면 1달러어치 상품을 수입하기 위해 1100원이 필요했던 수입업체는 수입비용이 1000원으로 줄어들어 수입채산성이 좋아진다. 결과적으로 국내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 가끔 불거지는 적정 환율 논란도 환율이 수출과 물가에 정반대의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약달러는 글로벌 인플레 주범?

원화 강세(환율 하락)는 외국으로 나가는 한국 관광객의 경비나 유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여준다. 같은 액수의 달러를 사는 데 필요한 원화가 적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드는 이유다. 달러표시 자산이 많은 나라는 달러 가치 하락으로 국부(國富)가 줄어들 수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은 저절로 많아진다. 원화를 달러로 환산한 액수가 커지기 때문이다.

달러 가치는 글로벌 물가에도 큰 영향을 준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즉 달러의 구매력이 떨어지면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등 국제적으로 거래되는 상품 가격은 상승압력을 받는다. 원유를 예로 들면 달러 가치가 약해지면 산유국들은 달러의 구매력 약화를 가격 인상으로 보충하려 한다. 중국이 미국을 겨냥해 ‘글로벌 인플레의 주범’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약달러가 가팔라지면 경기가 둔화되면서도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분석한다.

통화 가치는 두 얼굴을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수출 위주의 경제구조에서는 약달러가 부담이 크지만 제조기반이 약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달러 약세가 나름 도움이 된다. 적정 환율을 보는 시각이 나라마다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총성없는 싸움 ‘환율전쟁’…본질은 ‘통화가치 절하’

[Cover Story] 환율 떨어지면 물가는 안정되지만…수출업체는 채산성 악화로 한숨…적정환율의 딜레마
국제 간 환율전쟁(통화전쟁)은 영원한 휴화산이다. 잠시 멈춘 듯하다 또다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환율전쟁은 글로벌 경제위기 등 각국의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주로 불거진다. 환율전쟁의 초점은 ‘자국의 통화 가치 끌어내리기’다. 각국이 자국 통화 가치의 하락을 유도해 수출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상대국이 동시에 통화 가치를 낮추면 ‘약효’가 없기 때문에 ‘우리 통화 가치는 좀 낮출 테니 너희 통화 가치는 그대로 두거나 높이라’고 목소리를 키운다.

환율전쟁의 ‘전사 4인방’은 미국 중국 일본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이다. 특히 중국과 미국은 수시로 통화전쟁에서 불을 뿜는다. 중국은 미국이 지난 5년간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엄청난 돈을 풀어댄,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서 ‘글로벌 인플레’를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미국은 중국이 위안화 변동폭을 제한함으로써 실질적으로 환율을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중국을 공식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하느냐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최근엔 일본의 아베노믹스를 놓고도 양국은 날카로운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을 의미하는 아베노믹스는 엔화 가치 하락 유도로 수출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국제 무대 곳곳에서 일본 제품과 경쟁을 벌이는 중국은 인위적인 엔화 가치 하락이 부당하다고 비난한다. 반면 미국은 이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다. 엔화 약세는 미국 제품의 수출에도 부담을 준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까지 고려해 엔저를 용인하는 것이다. 환율전쟁에는 경제를 넘어 정치라는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는 셈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