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의 먹이사슬 '관피아'
[Cover Story] 전관예우…낙하산 인사…관료, 그들만의 리그…그들만의 직업윤리
한국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관료가 있었다. 관료들은 국가 경제성장의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기업들을 독려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국가의 초기 경제성장 단계에서는 관료들의 주도성이 성장 속도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싱가포르 등 단시일 내 경제성장을 일군 나라들이 대부분 그렇다. 그러다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관료의 역할에도 조정이 필요하다. 민간이나 기업의 역할 비중을 점차 높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관료들은 퇴임 후에도 전관예우, 낙하산 인사 등을 통해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런 관행이 지속되면서 비리와 부실이 늘어나는,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사회적 병폐가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사회 흔드는 ‘전관예우’?

전관(前官)은 전직 관료의 줄임말이다. 전관예우는 말 그대로 퇴임을 한 전직 관료를 잘 예우해준다는 뜻이다. 퇴임한 판사나 검사, 장관, 정치인, 고위직 공무원 등이 유사한 조직이나 단체, 협회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판사나 검사의 전관예우가 상대적으로 도마에 많이 올랐다. 퇴직 후 로펌 등으로 자리를 옮긴 판·검사가 재판 절차나 정부의 정책 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공정사회를 가로막는다는 목소리도 컸다. 이들이 받은 보수 또한 논란이 많았다. 이런 비난이 거세지면서 2011년 5월 판·검사가 퇴임해 변호사 활동을 할 경우 퇴임 전 1년간 근무했던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하는 이른바 ‘전관예우금지법’이 시행됐다.

전관예우는 판·검사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다양한 정부 부처의 고위 공직자들 역시 퇴임 후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전관예우를 보는 시각은 조금 엇갈린다. 산하기관이나 조직·단체는 이들 전직 고위 관료들이 자신들의 방패막이 역할을 기대한다. 후한 조건을 제시하며 ‘전직 관료 모시기’에 힘을 쏟는 이유다. 하지만 그 방패막이가 바로 부실과 비리의 여지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이번 여객선 세월호의 참사도 이런 관행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이 퇴직 전 3년간의 직무와 관련된 업체에 2년간 취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 또한 이런 부작용을 막으려는 것이다.

방패막이 vs 부패 고리

전직 고위 관료나 정치인을 업무 적성과 무관한 단체장 등에 임명하는 소위 ‘낙하산 인사’도 사회적 병폐로 지목된다. 낙하산 인사는 정치적 성격이 강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이 많다. 낙하산 인사는 정치인의 ‘논공행상’ 성격이 짙다.

야권은 낙하산 인사를 없애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권이 바뀌어도 그 풍경은 그리 달라지지 않는다. ‘낙하산 인사’는 무엇보다 전문성 부족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금융지식이 전혀 없는 정치인이 금융회사나 단체의 수장을 맡는 일도 허다하다. 그러다 보니 조직의 소통에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 출신 관료들의 인맥을 의미하는 ‘금피아’, 재무관료 출신들의 인맥을 의미하는 ‘모피아’, 세무관료 출신들의 인맥을 뜻하는 ‘세피아’는 모두 ‘관피아’의 가지들이다.

특히 최근엔 세월호 참사로 해양수산부 관료들의 인맥을 의미하는 ‘해피아’가 화두가 되고 있다. 관피아는 한마디로 ‘제식구 챙기기’다. 전임자를 챙겨주면 스스로도 후에 챙김을 받는다는 고질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 원래 인맥이 강하면 효율성은 떨어지는 것이 상식이다.

관피아의 함정은 능력보다 인맥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인맥이 우선시되는 사회는 그만큼 비리나 부패가 스며들 여지가 커진다.

시험대 오른 엘리트집단 직업윤리

이른바 관피아는 우리 사회에 만연된 지연·혈연·학연과도 맥이 닿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뿌리를 뽑겠다고 강조한 ‘60년 적폐(積弊)’는 능력보다 연(緣)을 중요시한 탓이다. 관피아의 확산은 우리 사회 엘리트집단의 직업윤리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관피아의 뿌리를 뽑으려면 조직·사회·국가 전반의 전방위적 개조와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출신·성별·지역에 관계없이 능력을 평가받는 나라가 건강하다. 그래야 비리·부패가 줄어들고, 일할 의욕도 생긴다. 이런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고,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가다.

우리나라는 일제의 압박과 6·25전쟁이라는 동족 간의 아픔을 딛고 불과 반세기여 만에 경제강국에 진입했다. 하지만 행복지수, 투명지수, 부패지수는 여전히 경제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질과 정신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의 출발점은 엘리트집단의 직업윤리를 바로잡는 것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다.

“유착 고리를 끊어라”…일본도 관피아와의 전쟁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관피아’의 부작용이 심했다. 일본의 관료는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140여년간 국가 성장을 주도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빨랐던 것은 관이 치밀한 성장플랜을 마련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기업과 민을 이끈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많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작용도 속속 드러났다. 무엇보다 기존의 관료를 산하기관 수장으로 임명하는 이른바 ‘낙하산 인사’가 이어지면서 고속성장 시대 유착적인 행태의 악순환 고리를 끊지 못한 것이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정치권은 2001년 대장성을 재무성과 외무성으로 분리해 대장성의 힘을 뺐다. 그래도 옛 대장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관료집단의 뿌리 깊은 네크워크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낙하산 인사를 통해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업까지 깊숙이 장악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2008년부터 낙하산 근절에 총력을 쏟았고, 2009년부터는 퇴직 관료가 정부 부처의 주선으로 여러 직장을 옮겨가는 ‘낙하산 관행’을 한 차례로 제한했다. 그 한 차례도 투명하고 엄격한 절차를 거쳤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관피아와의 전쟁’으로 낙하산 폐해는 상당히 줄었다.

미국 영국 독일 싱가포르 등 선진국들은 관료 채용에 ‘부처별 자율 채용제’를 적용한다.

우리나라는 관료 채용 때 고시, 7급, 9급 등 계급을 중심으로 공직자를 채용하지만 선진국들은 일을 중심으로 관료를 채용하는 직위분류제를 채택하고 있다. 미국은 각 부처가 독자적으로 선발시험을 거쳐 관료를 뽑는다. 독일 역시 부처에 인재 선택권을 부여한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