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30년
문명과 기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인류는 기술발전과 함께 진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오늘날 학문적으로 망신(?)을 당한 것도 바로 인류의 기술개발 본능을 꿰뚫어 보지 못한 탓이었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인류는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급기야 망할 것’이란 그의 이론은 기술진보 앞에서 허망하게 깨졌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도 않았지만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술 발달로 절대빈곤은 발생하지 않았다(아프리카의 빈곤은 정치 실패 탓이다). 기술진보란 무엇인가? 더 나은 삶을 살려는 인간의 이기심, 즉 정신의 결과물이다. 최첨단 몽골 역참제도
그렇다면 30년 된 이동통신은 ‘인간, 경제,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먼 옛날로 돌아가 보자. 물리적 거리와 지리적 한계가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시대. 그리스쯤이 좋겠다. 이 시대에 재미있는 이론이 있었다. 한 철학자는 이렇게 제안했다. “통치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정도만 직접 통치하자.” 인공위성이 날아다니는 현대 시각에서 보면 참으로 우스운 얘기다. 이 철학자는 아마도 통치자가 직접 통치하려면 가능한 한 통치범위가 작아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원류는 이렇게 마을 정도의 국가 크기에 적합한 제도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통치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이 없다. 스마트폰을 앞세운 디지털 통신기기는 ‘목소리의 한계’를 무한대로 늘려놨다. 서울 종로를 걸으면서도 부산의 친구와 정치를 논한다. 미국 대통령은 우주정거장에 체류 중인 우주인과 접속, 리더십에 영향을 미칠 허리케인 폭풍의 상태를 묻기도 한다. 정치에서 나타난 각종 법안과 논란은 어떠한 차별 없이 전국 각지에 있는 유권자들이 바로 볼 수 있다. 몽골의 역참제도가 정보전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첨단제도였다지만, 이동통신의 속도전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시간을 저축한다
속도의 진화는 경제의 효율 증대, 생산성의 극대화로 나타난다. 생각해보자. 과거 10시간 걸려 전달되던 정보와 지식이 5시간에 가능해졌다면 우리는 5시간을 저축한 셈이 된다. 이 얘기는 남은 5시간을 저축해 다른 활동에 투자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것을 저축 혹은 우회생산이라고 한다. 지금은 5시간이 아니라 1분 안에 정보와 지식 전달이 가능하다고 보면 시간의 저축량은 어마어마하다. 맨손으로 10시간 동안 물고기 10마리밖에 못 잡던 로빈슨 크루소가 어망으로 단 1분 만에 10마리를 잡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된다.
첨단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와 지식, 기술을 전파하는 데 얼마나 유리한 위치에 있을까.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빛의 속도로 정보와 지식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스마트폰이 인류에게 가져다 준 긍정의 포인트다. 정보와 지식, 기술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데 지구에는 왜 여전히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있을까? 그것은 정보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제도와 경제제도가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인간의 이기심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기술이든, 단순한 농업기술이든 인간의 창의와 경쟁을 자극하는 이기심이 허용되지 않는 한 즉,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는 한 진화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이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난 근본 이유다.
30초 충전…정보유출 심각
최근 스마트폰을 30초 만에 충전하는 신기술이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 7일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의 ‘스토어닷(StoreDot)’이라는 회사가 삼성전자 갤럭시S4를 30초 만에 100% 충전시키는 기술을 선보였다. 시현 장면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번져 화제가 됐다.
이동통신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4G(Generation)라는 통신기술 덕택에 영화 한 편을 수 분 만에 내려받고 있다. 공간을 초월하는 업무도 가능케 됐다.
이동 중에 이메일을 열어보고, 화상회의를 할 수 있게 한다. 쇼핑도 단말기 하나로 국경 제한없이 구매와 배달까지 가능해졌다. 앞으로 교육 서비스도 이동통신 단말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하고 있다.
통신기술의 발달은 물론 문제점도 낳고 있다. 정보유출과 해킹이다. 국가 간 해킹은 정보전이라는 이름 아래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고, 수많은 개인정보는 범죄의 대상이 됐다. 최근 발생한 대규모 금융정보 유출은 대표적인 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기술은 더욱 진화할 것이다. 5G 시대가 되면 인류의 생활과 경제, 정치, 문화는 더욱 달라질 것이다.
휴대폰이 내 일자리를 빼앗는다?
과거 버스 안내양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버스 앞문과 뒷문에서 승객을 태우고 요금받는 일을 했다. 저임금에다 힘들었다. 당시엔 그런 일자리도 충분치 않았다. 시간이 흘러 흘러 버스카드로 요금을 내는 시대가 됐다. 버스 안내양의 일자리는 당연히 없어졌다. 그 누나, 언니들은 어디 갔을까? 일부는 집에서 쉬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대개는 경제성장기에 새로 생긴 다른 일자리를 찾았을 것이다.
예를 들면 버스카드를 만드는 중소기업, 반도체 공장이다. 수많은 조립공장은 어떨까. 조립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버스 안내양 일자리보다 힘들까? 개인에 따라 그럴 수도 있다. 월급은 어떨까? 분명히 소득은 늘어났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일자리가 줄었다는 것은 ‘미신(myth)’이다. 스마트폰이 생긴 결과 앱시장이 생겼고, 모바일 마케팅 시장이 새로 생겼다. 쿠폰시장도 탄생했다. 일자리는 대체될 뿐이다. 만화가게가 사라졌지만, 수많은 웹툰이 경쟁한다. 1인 기업도 탄생한다. 기계가 사람을 쫓아낸다고 믿었던 적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한국은 세계 최빈국이 돼 있어야 맞다. 현실은 정반대다.
스마트폰 교체 시기가 너무 빨라졌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경쟁은 불가피하다. 기존 업체들끼리 담합해 2G폰 이상을 개발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세계시장에서 누군가는 3G, 4G폰을 들고 나오는 게 현실이다. 쓰고 안 쓰고는 소비자의 자유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