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의 경제학
[Cover Story] 부모 "더 일하고 싶다"  vs  자식 "저도 일 좀…"
국회는 지난해 ‘고용상 연령 차별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라 3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과 공공기관의 정년은 2016년부터 60세로 늘어난다. 300명 미만 중소기업은 2017년부터 적용된다. ‘정년 연장’ 문제는 대학 논술이나 면접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주제다.

맬서스 함정

정년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류가 ‘맬서스 함정’에서 벗어나면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맬서스 함정이란 영국의 경제학자인 토머스 맬서스가 주장한 이론이다. 그는 1798년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인류는 기근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암울한 전망을 내놨다. 당시만 해도 인류는 먹을 것이 부족해 평균수명이 40세 미만이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고 식량은 먹고도 남을 만큼 생산됐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전해 농업생산성이 높아진 결과다.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것은 그 나라의 제도와 정치적 상황 때문일 뿐이다.

맬서스 함정에서 인류가 벗어난 지금, 인류는 거꾸로 ‘장수의 저주’에 걸려들었다. 평균 수명이 지난 210여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 저주일 수는 없다. 인류 진보의 증거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만 해도 남녀 평균수명이 70세를 넘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1%를 넘는다. 이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라고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빠르게 늙어가고 있는 셈이다.

세대간 일자리 충돌

바로 여기에서 정년 문제가 불거져 나온다. 이 법이 개정되기 전 우리나라의 평균퇴직 연령은 53세였다. 70세는 보통이고 ‘100세 시대’라는 요즘 53세 퇴직은 많은 문제점을 낳는다. 너무 일찍 퇴직시킨다는 논란이다. 53세 정도면 일할 체력과 의사는 물론 업무 숙련도가 절정기에 들어설 나이다. 이런 인력의 조기 퇴출은 사회적으로 낭비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특히 요즘은 자식들이 부모를 부양하지 않은 세태여서 부모들의 정년 연장은 건강과 노후준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년 단축에 따른 각종 사회보장 비용보다 정년 연장이 가장 실질적인 사회보장책이라는 것이다. 정년연장 찬성론자들은 우리나라의 정년이 특히 이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럽의 법정 정년이 평균 65세이고 실제 퇴직연령이 62세인 것에 비하면 10년이나 짧다고 주장한다.

반론도 강하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업들에 그럴 여력이 있느냐는 것. 재계는 기본적으로 고령자가 노동시장에 더 남아있을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고령자의 경우 대부분 높은 임금을 받고 있어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부담이 커진다는 입장이다.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은 34세 미만보다 3배나 높은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신규 채용이 어려워져 젊은 세대의 일자리 몫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기업의 임금은 단번에 획기적으로 늘어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기업들은 매년 5% 이상의 신규채용을 통해 업무 노하우와 기술을 전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가뜩이나 청년실업이 높은 마당에 윗세대들이 일자리를 점하고 있으면 취업문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55세 이상이 직장에 남게 되는 2016년부터 1990~1996년도생의 취업신호등은 빨간불이다. 이 연령대의 인구는 320만명이나 된다.

성장만이 유일한 해법

60세 정년 뒤에는 생산성이라는 경제논리도 숨어 있다. 만일 60세로 정년이 늘어나더라도 생산성이 유지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즉 받는 만큼 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난색을 표한다. 임금 구조를 보면 기업들의 반응이 왜 이런지를 알 수 있다. 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 20~30년 근속자는 신입사원보다 3.1배 더 받는다. 일본의 2.4배보다 높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대로 55세 이상의 급여만 놓고 보면 34세 미만보다 3.02배 높다. 반면 생산성은 60%에 그친다.

정년을 연장하되 임금을 연차적으로 감액하는 방법이 논의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노동단체들은 임금삭감 없는 정년연장을 주장한다. 임금을 감액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임금피크제다. 최근 기업들은 정년을 연장하고 특정 나이부터 퇴직 때까지 매년 10%씩 임금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노사 간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년연장에 대비하고 청년에게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하 방법은 경제성장이다. 경제가 성장한다면 일자리는 자동으로 늘어난다.

정년제가 비스마르크와 관련 있다고?

[Cover Story] 부모 "더 일하고 싶다"  vs  자식 "저도 일 좀…"
정년제는 19세기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사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비스마르트는 독일을 통일하고 유럽을 장악하기 위해 프랑스와 전쟁을 벌였다. 그가 재상이던 시절 유럽은 끊임없는 국가 간 분쟁의 연속이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와의 일전을 위해 징집제를 실시했다. 이 전쟁에서 비스마르크는 프랑스의 나폴레용 3세를 꺾고 1871년 독일제국을 세웠다.

전쟁이 끝나자 징집된 젊은이 처리가 문제가 됐다. 젊은이들이 도시에 머물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낳았다. 대부분 가난한 청년들이었고 그 숫자가 100만명을 넘었다. 일자리를 줘야 했다. 그래야 딸린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었다.

이때 비스마르크가 생각해 낸 것이 정년이었다. 65세 정년을 실시해 나이가 든 사람들을 공장에서 내보냈다. 그 빈 자리를 젊은이들에게 내주기 위한 절묘한 아이디어였다.

비스마르크는 정년퇴직으로 나가는 노인들을 위해 사회보장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이었다. 연금제도의 효시가 바로 독일인 이유다. 노인은 사회보장제도로, 청년은 일자리 제공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정년은 나라마다, 문화에 따라 다르다. 일본은 65세, 싱가포르는 63세, 대만은 62세, 프랑스는 60세다. 미국 영국 캐나다엔 정년제도가 없다. 능력은 나이와 무관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