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SNS혁명중'
페이스북이 10번째 생일을 맞았다. 하버드 대학생 마크 저커버그가 2004년 2월 기숙사에서 만든 이 서비스가 10년만에 12억명이 애용하는 SNS로 성장했다.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무료 1510억달러(약 161조8700억원). 188조5000억원인 삼성전자와 맞먹는다.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하버드 커넥션이 시초

저커버그는 1984년 치과 의사인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지만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 매니저로 일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지대한 흥미를 보여 치과 사무용 프로그램을 스스로 개발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저커버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11살 때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고용해 프로그래밍 ‘과외’를 받도록 했다.

‘프렙스쿨(대학진학예비학교)’로 불리는 미국 사립명문고 필립스엑서터아카데미에 진학한 뒤에는 인공지능 음악 재생 프로그램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를 만들었다. 이를 본 마이크로소프트·아메리카온라인(AOL) 등에서 고용 제의를 했지만 거절하고 2002년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한 저커버그는 2003년 10월 기숙사를 해킹해 하버드대 여학생 인기투표 사이트인 ‘페이스매시’를 만들었다. 학교에 발각돼 하루만에 사이트가 폐쇄되기 전까지 이 서비스에는 5000여명이 접속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사건으로 그를 알게 된 동창생 윙클보스 형제가 하버드 교내 데이트 서비스인 ‘하버드 커넥션’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페이스북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저커버그는 대학 동창인 더스틴 모스코비츠, 크리스 휴즈와 개발을 진행하던 중 방향을 틀어 하버드대생들을 위한 SNS ‘더페이스북’을 만들었다. 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2004년 6월 대학에 휴학계를 낸 것이 중퇴로 이어졌다.

이용자 수 매년 급증

페이스북 초창기에는 하버드대생들에게만 가입이 제한돼 있었다.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보스턴 거주자, 대학생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 나갔다. 북미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자 2005년에는 해외 대학까지 이용 대상을 넓혔다.

[Cover Story] 12억명이 쓰는 페이스북…시가 총액 161조 '성장'
이용자 수는 창업한 해인 2004년에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듬해에는 600만명으로 뛰었다. 2007년 5800만명까지 늘어난 이용자는 2008년 1억명, 2012년 10억명을 돌해 꾸준히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같은 해 창업해 2005년 일찌감치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에 인수된 마이스페이스의 이용자 증가세가 둔화되다가 결국 꺾인 것과 대조적이다.

마이스페이스가 창업자들의 손을 떠나 방향을 잃은 것과 달리 저커버그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역동성을 이어나간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특히 가상 공간의 편의성과 유연함을 잘 살리면서도 페이스북의 핵심 키워드인 ‘실명성’을 잘 살렸다. 페이스북은 “가면무도회 같았던 인터넷을 현실과 가깝게 했다”는 타임지의 평가처럼, 오프라인 인맥을 온라인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을 수 있도록 했다. 이메일 주소가 있는 13세 이상 인터넷 사용자는 누구나 페이스북에 가입할 수 있어 가입 문턱은 낮지만, 가입한 뒤에는 출신학교 기혼여부 등 개인정보를 차차 입력하게 해 신원 확인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2012년 5월 기업공개(IPO) 당시 대두됐던 ‘모바일 우려’도 현명하게 넘겼다. 많은 SNS처럼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 당시 공모가가 38달러였던 페이스북 주식은 같은 해 9월 절반 수준인 17.73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주식이 급락하는 것을 일컫는 ‘저크트(Zucked·저커버그꼴이 되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반전됐다. 지난해 4분기 페이스북의 모바일 광고매출이 처음으로 일반 PC를 넘어섰다. 회사 매출도 79억 달러(약 8조5400억원)로 전년 대비 76% 급증했으며 지난해 4분기 매출은 25억8500만달러(약 2조7000억원), 순이익은 5억2300만달러(5607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3%, 800% 증가했다.

'페이퍼'로 단점 보완

최근 페이스북이 받고 있는 지적은 북미를 중심으로 10대가 페이스북을 외면해 성장에 한계가 보인다는 것이다. 실명을 기반으로 한 SNS의 한계다. ‘엄마’나 ‘이모’와 같은 사이버 공간을 쓰기 싫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실명 인증 기능이 약하고 익명성·일회성 요소를 지닌 ‘트위터(2006년 창업)’나 ‘스냅챗(2011년 창업)’이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끈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페이스북은 지난해 스냅챗 인수 제의와 2012년 인스타그램 인수를 포함해 인수합병(M&A)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트위터처럼 이슈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해시태그’ ‘트렌딩’ 기능도 추가했다. 페이스북에서 이용자들이 뉴스를 공유하는 행태를 관찰, 10주년 기념으로 내놓은 뉴스 앱 ‘페이퍼’도 내놨다. 이 서비스는 모바일만의 사용자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경험(UX)을 잘 살린 수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페이스북은 그동안 축적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검색 서비스에도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싸이월드는 왜 페이스북이 못됐나?

[Cover Story] 12억명이 쓰는 페이스북…시가 총액 161조 '성장'
페이스북의 발자취를 언급할 때마다 단골로 거론되는 국내 서비스가 있다. 바로 ‘싸이월드’다. 이용자끼리 ‘일촌’을 맺어 서로의 ‘미니홈피’를 방문할 수 있는 이 서비스는 국내에 SNS의 개념을 처음 전파한 대표 서비스다. 한때 3500만여명이 이용할 정도로 인기를 누려 ‘국민’ 서비스로 불리기도 했다.

이동형 나우프로필 대표가 LG CNS를 퇴사해 1999년 KAIST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 2003년 인수돼 한동안 안정된 성장세를 유지했지만 2011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악재를 만나고, 모바일 서비스로의 전환이 매끄럽게 이뤄지지 않아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미국에도 한때 ‘마이스페이스’가 페이스북의 라이벌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 페이스북과 비슷한 시기인 2004년 1월 세워진 이 회사는 2008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SNS 자리를 꿰어찼다. 페이스북은 한동안 마이스페이스에 밀려 후발주자로 인식됐다.

페이스북이 하버드대생 전용 서비스로 시작해 해외 지역 학생들까지 끌어모으기 시작할 무렵인 2005년 마이스페이스는 5억8000만달러(약 6100억원)에 세계적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뉴스코퍼레이션에 인수됐다. 하지만 인수 이후 공동창업자들이 회사를 떠나고 재매각되는 등 우여곡절끝에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김보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