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 바뀐 Fed
[Cover Story] 달러 '테이퍼링' 이 뭐길래?…몸살앓는 세계금융시장
미국 달러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이 난리라는 뉴스가 요즘 많이 나온다. 여러 나라의 환율, 금리, 주식, 채권 시장이 매일 출렁거리고, 우리나라도 조심해야 한다는 걱정이 많다. ‘달러발(發) 위기’로 시장이 얼마나 요동칠 것인가에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 왜 달러가 문제인지, 달러가 어떻게 환율, 금리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알면 된다. 금융시장을 보는 ABC라고나 할까.

돈 푼 양적완화

‘달러發 위기’라는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g)’를 알아야 한다. 미국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로 불황에 빠졌다. 금융회사들이 문을 닫고 기업들이 쓰러졌다. 실업률도 치솟았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Fed)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러를 시중에 대거 공급했다.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리는 것은 아주 고전적인 경기부양법 중 하나다. 미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선 안된다는 국제적인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강행했다.

미국은 달러를 어떻게 풀었을까. Fed를 통해서다. Fed는 기본적으로 국채를 사고 파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줄이기도, 늘리기도 한다. 국채를 팔아 달러를 거둬들이면 통화량이 감소, 반대로 국채를 사들여 달러를 풀면 통화량이 증가한다. ‘양적완화’는 달러를 양적으로 푼다, 즉 통화량을 늘린다는 뜻과 같다. Fed는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무려 3조2000억달러를 시중에 공급했다. 우리나라 1년 무역총액(수입+수출)의 3배가 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미국 내는 물론 세계 금융시장에서 달러가 넘쳐났다.


달러는 '말썽꾸러기'

풍부한 달러는 각국 화폐와의 교환비율에 영향을 미쳤다. 원·달러 환율, 엔·달러 환율, 유로·달러, 엔·유로 환율과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환율은 세계 통화의 맏형인 달러를 기준으로 보면 편리하다. 달러가 풀리자 전반적으로 달러가치 하락현상이 나타났다. 달러 공급이 빠른 속도로 늘었으니 당연한 기조였다. 미국 금융시장이 한숨을 돌리자 풍부해진 달러는 수익성이 높은 투자처를 찾아 길을 떠났다.

개방국가인 한 환율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인다. 다른 변동요인이 없다면 한 나라에서의 달러 증가는 그 나라 화폐 가치상승(환율하락)을 낳는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한때 한국에선 달러 유입이 많아져 달러가치 하락, 원화가치 상승이 나타났다. 옛날에는 1000원으로 1달러를 샀는데 900원에 살 수 있게 된 경우를 생각하면 쉽다. 물론 한국의 경우, 투자차원에서 들어온 달러 외에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달러와 외환보유액(3460억달러)이 많았던 이유도 작용했다.

테이퍼링 '홍역'

요즘 불거지고 있는 금융시장 불안은 이렇게 풀리던 달러의 물꼬가 막힌 데 따른 것으로 보면 된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테이퍼링(tapering) 탓이다. 테이퍼링은 벤 버냉키 전 Fed 의장이 작년 12월 양적완화 축소를 의미하면서 쓴 말이라고 한다. ‘점점 가늘어진다’, ‘줄인다’는 뜻을 가진 단어다.

달러 시장이 이렇게 변하면 미국 월스트리트 큰손들은 외국에 투자해둔 돈을 거둬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자 경제구조가 취약한 나라인 아르헨티나, 터키, 인도, 브라질 ,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같은 신흥국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런 요동은 이들 나라보다 위층에 있는 한국, 대만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금리 올려 환율 방어

요즘 신흥국들은 외환부족, 급격한 환율상승, 금리인상 등으로 홍역을 겪고 있다. 달러 부족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곧 디폴트에 빠질 것이란 전망도 있다. 디폴트는 채무 불이행을 뜻한다. 달러가 너무 풀리는 것도 문제지만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도 이런 부작용을 낳는다.

아르헨티나, 터키 같은 나라는 자국 화폐의 환율 급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대폭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금리인상은 달러가 나가는 것을 막을 때, 달러가 들어오게 할 때 쓰는 정책수단이다. 금리인상은 ‘투자하면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해 줄게’라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다. 달러를 가진 큰손들은 이왕이면 금리가 높은 곳을 즐겨 찾는 버릇이 있다. 달러가 없어 디폴트 위기에 몰린 아르헨티나가 금리를 대폭 인상한 이유다.

금리를 인상하면 자국 기업 등 경제주체들은 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금리가 높아 은행에서 돈을 빌려 투자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이미 진 빚도 금융비용 증가로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이 양산될 수도 있다.

채권값 하락은 왜?

주식시장과 채권시장도 덩달아 출렁였다. 주식시장이 개방돼 있는 나라의 경우 주식을 팔고 달러로 급히 바꿔가는 큰손들 때문에 주식시장이 약세를 면치 못한다. 한국처럼 시장이 활짝 열려있고 외국인 투자비중이 높은 시장일수록 충격이 크다.

채권값 하락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채권값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는 특징이 있다. 즉, 금리인상은 채권값 하락을 의미한다. 금리인상은 시중에 통화량이 줄어든다는 의미(즉 경기가 안좋다, 채권을 사려는 사람이 적다)이므로 채권값은 하락하는 것이다.

양적완화 후유증?…‘인플레이션의 복수’ 시작되나

[Cover Story] 달러 '테이퍼링' 이 뭐길래?…몸살앓는 세계금융시장
‘양적완화’와 ‘테이퍼링’이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면 “인플레이션은 화폐현상이다”라는 유명한 명제를 음미해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12~2006)이 한 이 말은 ‘통화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불러온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미국의 양적완화(달러 공급확대)를 강하게 반대했을 게 뻔하다. 이 기회에 그가 쓴 ‘화폐경제학’의 몇 장을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의 말을 살짝 뒤집어 보면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해 최악의 불경기를 해소한 듯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더 큰 파도를 맞을 것이란 점을 예상할 수 있다. 프리드먼은 가치 없는 종이로 교환하는 불태환제도 하에서는 단순한 통화량 증가는 재차 경기 침체를 남길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의 역할은 통화량을 급격하게 늘렸다, 줄였다 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의 먼 스승격인 루트비히 폰 미제스라는 경제학자도 ‘화폐의 증가는 어떤 사회적 이익도 낳지 않는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토지나 노동, 자본 같은 생산요소의 증가는 더 많은 생산과 생활 수준의 향상을 불러오지만 화폐 증가는 화폐의 구매력을 약화시킬 뿐이라는 설명이다.

엄격한 통화론자들은 그동안 풀린 달러가 인플레이션으로 복수할 것이라고 본다. 세계 경제가 또 한번 크게 출렁거린다면 프리드먼이 하늘나라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내가 뭐랬니.”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