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의정치
[Cover Story] 시장과 거꾸로 가는 과잉 입법 '긁어 부스럼'
대의민주주의는 근대 사상이 낳은 정치체제의 한 형태다. 근대 정치·경제사상은 개인과 자유, 법치, 사유재산권, 시장경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왕의 권력에 도전한 결과다. 개인이 개인이기 위해서는 자유가 필요했고,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선 만인이 예측할 수 있는 법의 지배와 사유재산권의 보장이 절실했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이 인류문명에 가져다 준 가치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에선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은 대표자가 국가를 통치한다. 대표자의 권력은 투표를 통한 권한위임에 근거한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대의한다. 문제는 이들이 주인을 대리하지 않고, 자기이익과 당리당략에 매몰되면서 불거졌다.

# 과도한 정부 개입 부작용

이 같은 위기는 행정부와 입법부의 무제한적 개입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 많다. 과도한 정부개입으로 시장과 가격 메커니즘이 왜곡되고,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현재는 물론 미래세대까지 빚더미에 앉게 한다. 몇몇 국가는 과도한 복지개입으로 국가부채를 견디지 못해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정부개입은 ‘국가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에서 나온다. 경제학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는 저서 ‘치명적 자만’에서 이런 문제를 일찍이 지적했다. 정부가 개입하면 할수록 시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더 악화시킨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유럽의 복지개입은 결국 국가부도 위기까지 내몰았다. 대리인인 정부는 주인인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국가부채 규모를 숨기거나, 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남발했다. 재정을 건전화하기보다 미래세대가 갚아야 할 부채를 쓰고 보자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포퓰리즘적 복지정책을 시도하다 난관에 봉착해 있다. 전면 무상급식을 발표했다가 중단되다시피했고, 노인기초연금도 수정을 거듭했다. 미국과 일본은 자국경제를 살리기 위해 화폐를 많이 발행하는 방법으로 시장에 개입, 조만간 터질 거품을 키우고 있다.

# '약자'돕는 법이 되레 毒

입법부도 주인을 잊은 지 오래다. 국회의원은 지역을 대표하지만 업무는 지역민원 해결이 아니라 국가적 정책이다. 국회의원을 지역에서 뽑는 것은 지역주민들이 그나마 해당 후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법부의 무차별적 시장개입은 무더기 입법에서 비롯된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 수는 15대 국회 때 1144건, 16대 1912건, 17대 6387건, 18대 1만2220건으로 급증했다. 의원입법은 국회의원 10명 이상이 찬성하면 발의할 수 있다. 한 의원이 발의하면 서로 품앗이처럼 찬성해준다. 이 안에는 소비자보다 생산자를 보호하는 퇴행적 법,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법, 사적 계약을 부정하는 법, 국내기업의 손을 묶는 역차별법 등이 수두룩하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는 법이 도리어 해를 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대표적인 법이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금지법’이다. 당초 이 법은 대기업들의 일감이 가족회사 대신 다른 중소기업에 가도록 하는 데 목적을 뒀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일감 몰아주기는 중소, 중견기업에서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즉, 이 법에 걸린 기업의 98.5%가 중소·중견기업이었다. 지금은 중소기업들이 이 법을 없애달라고 할 판이다.

당사자 간 계약에 맡겨야 할 ‘프랜차이즈 이익보장법’도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가맹점포를 연 뒤 특정한 이익이 나지 않으면 프랜차이즈 점주가 보상해주도록 돼 있다. 입법부가 이익의 범위까지 보장해주라는 난센스다. 특정 거리 내 파리바게트 신규출점 금지, 대형마트 정기휴업제 등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에 납품하던 농가와 중소기업들은 판로를 잃었다며 호소하고 있다. 국회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과도한 개입으로 시장을 왜곡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전형적인 사례다.

# 대의정치 구원 해법은?

이 때문에 입법의회와 통치의회를 분리해야 한다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나왔다. 하이에크는 의회의 권한을 통제하기 위해선 의회 역할분담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입법의회는 정당과도 독립되고 재선출돼야 한다는 욕심이 없는 전문가로 구성할 수 있고, 통치의회는 그야말로 국민들에 대한 인적, 물적 서비스에 들어갈 예산마련과 지급, 관리과제를 수행한다는 것이다.

무제한적 입법권한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대통령의 거부권뿐이다. 최근의 입법부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권한까지 침해한다. 집행유예 선고 등 판사의 재량권을 제한해 어떤 범죄는 집행유예를 못 내리게 한다. 어떻게 하면 위기에 빠진 대의민주주의를 구할 수 있을까. 대리인들이 누리는 권한을 축소하면 어떨까. 공약 달성률에 따라 공천을 주거나 선거에서 가산점을 주는 방식은 어떨까. ‘유인 제약’ 처방이란 것이다. 쉽지 않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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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관료 개입 너무 심하다"…공공선택론 '쓴 소리'

[Cover Story] 시장과 거꾸로 가는 과잉 입법 '긁어 부스럼'
경제학은 시장에 초점을 맞춰 왔다. 경제학의 시조인 애덤 스미스(1723~1790)는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어떻게 시장에서 개인들의 이익추구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향상시키는지를 설명했다. 누가 어디서 커피를 재배하고, 커피를 볶고, 수입하는지를 몰라도 소비자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방식으로 커피를 소비한다. 커피 생산자는 물론 각 단계의 이해 당사자들도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시장에선 정치와 권력이 자의적으로 개입해서 커피를 만들고 유통시킨 것이 아니다. 스미스의 후학들은 궁극적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않는 시장실패란 없다고 본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선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바로 공공선택론자들이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시장주의자지만 행정부, 입법부 등 정치권이 공익을 내세워 빈번히 개입하는 만큼 이들의 영향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제도는 정치체제와 관료들의 법적규제에 따라 달라지는 게 사실이다. 독재정치이든 대의민주주의 체제든 정치가와 관료들은 정권유지와 선거를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꾼다. 정치가와 관료들은 공익만을 위해 이런 선택(공공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제임스 뷰캐넌 같은 경제학자는 정치가와 관료들도 시장의 개인들처럼 자기 이익을 위해 선택한다고 봤다. 그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개입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정부개입은 시장실패를 더 악화시키는 정부실패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입법부의 반시장적 법률 양산과 정부의 비대화를 우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