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탄생 100년
[Cover Story] 부정과 반항으로 출발…우애와 휴머니즘으로 승화
키위 작품들이 주목받는 이유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들은 존재한다’ ‘부조리 작가’ 알베르 카뮈가 《반항하는 인간》에서 제시한 유명한 명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적 명제로 17세기에 ‘합리적 이성’이라는 화두를 던졌다면 카뮈는 ‘실천적 감성’이라는 또 다른 논제를 20세기에 던진 셈이다. 카뮈의 수필《시시포스 신화》《반항하는 인간》이나 소설 《이방인》《페스트》의 공통점은 한마디로 ‘부조리’다. 부조리는 삶의 존재 방식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 골자다. 따라서 인간 존재의 무의미성, 인간 의지의 무력함, 야수성과 비생명성 등으로 인간의 본질(essence)이 이성적으로 쉽게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인 ‘실존(existence)은 본질에 앞선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카뮈의 위대성은 이런 부조리한 세상에서 희망과 절망의 균형점을 찾고, 행복을 찾고, 이를 문학으로 승화했다는 점이다.

#'부조리'라는 화두를 던지다

‘부조리’의 사전적 의미는 ‘도리에 어긋나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학에서 부조리의 의미는 좀 더 특수하고 구체적으로 정의된다. 부조리 문학은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이 기본적으로 부조리하다는 것이 대전제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 전역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반휴머니즘적 인식을 핵심적인 주제로 표현한 소설과 희곡 작품들을 일컫는다. 부조리 문학은 제임스 조이스와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이 출발점이지만 카뮈와 사르트르가 대표적 작가다. 특히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는 부조리 문학을 널리 확산시킨 대표작이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인간 존재를 부조리한 상황에서 무의미하게 존재하는 ‘부조리적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희곡에서는 새뮤얼 베케트의《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 부조리 문학으로 꼽힌다.

부조리 문학은 소설뿐 아니라 희곡이라는 장르에서도 주목받는다. 마틴 에슬린은 ‘부조리극’이라는 저서에서 새뮤얼 베케트, 이오네스크, 아다모프, 장 주네 등의 희곡 작품을 예로 들면서 이들 작가가 생의 무의미와 이상의 상실을 표현하면서 카뮈나 사르트르보다 더 참신한 형식으로 인간 존재의 비합리성과 부조리성을 표현했다고 평했다. 또한 그는 “부조리하다는 것은 목표가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부조리는 한마디로 존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인간의 본질이 이미 신에 의해 규정돼 있다. 반면 부조리 문학의 철학적 기반인 실존주의에 따르면 세상에 던져진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규범이나 본질은 없다. 한마디로 무슨 일을 해도 좋은 ‘무한의 자유’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무한한 자유, 이 공허하고 덧없는 자유가 사르트르에게는 ‘구토’(嘔吐)를 일으키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에게 ‘책임’이라는 행동의 규범이 생겨난다. 그의 유명한 명제 ‘인간은 자기 행위의 총합이다’가 탄생한 배경이다.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은 이런 실존주의 정신을 공유한다. 카뮈에게 삶과 죽음은 절대적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들은 존재한다’는 카뮈의 말은 모든 본질을 규범화하고 정형화한 기존 세대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하지만 카뮈는 단순히 반항과 저항에 그치지 않고 대립되는 두 가지 요소, 예를 들어 혼란과 통일,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을 평가한다. 부조리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으려 고민하고 이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것이 바로 그의 위대함이라는 뜻이다.

#구성의 전형을 파괴하다

부조리 문학은 글의 구성도 다르다. 기승전결이라는 전통 방식을 깬 것이다. 실존주의에 바탕을 둔 희곡《고도를 기다리며》가 대표적 사례다. 두 주인공이 기다리는 ‘고도’의 정체성이 모호할뿐더러 구성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밋밋하다. 클라이맥스도 없고, 극의 종결도 없다. 본질이 애매한 세상에서 구성도 틀에 박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난 카뮈는 2차 세계대전 기간에 레지스탕스 조직에도 참여해 나치에 저항했다. 사형제도를 반대하고 인권을 위해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사형반대협회 설립자인 아서 쾨슬러와의 공저《단두대에 관한 성찰》이라는 에세이로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1960년 겨울 가족과 함께 프로방스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파리로 돌아오다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실존주의란?…본질보다 인간이란 실존 자체가 우선

[Cover Story] 부정과 반항으로 출발…우애와 휴머니즘으로 승화
실존주의 철학은 카뮈, 사르트르 등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전반의 철학사조다. 전통적 철학에서 다루던 본질의 문제를 버리고 인간의 실존 자체를 중시하는 사상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이슈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와 같은 ‘나’라는 구체적인 존재를 중심에 놓고 고민하는 철학이다.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실존주의 영향을 받아 나타난 연극을 말한다. 이 작품은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상황을 설정해 인간의 허무함을 파헤친 아일랜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적 희곡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실존주의와 관련한 흔한 오류는 ‘실존’과 ‘존재’의 혼동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존재와 무’에서 존재의 대립항은 무(無)이고, 실존(existence)의 대립항은 본질(essence)이라고 규정한다. 실존은 인간을 포함한 어떤 물체의 덩어리이고, 어떤 물체를 다른 물체와 구별해주는 것이 바로 본질이다. 그러니까 ‘존재=실존+본질’의 공식이 성립하는 셈이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사물의 경우에는 본질이 실존에 앞서지만 인간은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인간이라는 육체의 덩어리는 실존의 탄생 이전에 그것을 규정할 수 있는 본질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사르트르의 생각이다. 실존주의 철학 이전의 본질 철학은 인간의 경우에도 본질이 실존에 앞선다. 예컨대 기독교에선 인간의 본질은 이미 신에 의해 규정돼 있다. 실존주의는 이처럼 기존 사고의 틀 자체를 바꾼 것이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