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 탄생 100년
알베르 카뮈는 소설가에 머물지 않고 늘 시대의 아픔과 문제를 정면에서 대응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카뮈 전문가인 김화영 씨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소설과 희곡, 에세이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사이클’처럼 써가는 방식을 보여줬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계는 카뮈의 작품세계를 3단계로 나눈다. 작품에서 드러난 성찰과 감수성과 행동 방식의 궤적에 따른 구분이랄까. 제1단계는 ‘부조리’다. 제2단계는 ‘반항’이며, 제3단계는 ‘절도’다. 1단계에서 카뮈는 소설《이방인》《칼리굴라》, 철학적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등을 발표했다. 2단계에서 그는 소설《페스트》, 희곡《정의의 사람들》, 철학적 에세이《반항하는 인간》을 썼다. 3단계에선 소설《최초의 인간》, 희곡《동 파우스트》등을 구상했으나 교통사고 사망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 이방인
《이방인》은 카뮈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대표 소설이다. 소설의 줄거리는 주인공 뫼르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뫼르소는 엄마가 죽었는데도 무관심한 듯 생활한다.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라는 말 속에서 세상일에 무관심한 뫼르소의 삶을 그려낸다. 엄마가 죽어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자동차도 그대로 달리고, 구름도 흘러가고, 바람도 분다. 뫼르소는 자신과 세계의 사이에 무관심이 지배한다는 것을 대변한다. 바로 부조리다. 주인공이 엄마가 사망한 곳을 가서도, 장사를 지내는 곳에 가서도 커피를 뽑아먹고 농담하는 것이 대표적인 표현이다. 많은 주변 사람은 그를 욕한다. 뫼르소는 또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별 이유가 없다. 태양이 너무 밝아서다. 변호사와 재판관, 사제 등 그를 도우려는 누구도 뫼르소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 또한 세계와 소통하지 못한다.
청년 뫼르소는 결국 그렇게 많은 인파 속에서 개인 감정조차 모르게, 무관심하게,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는 부조리한 사회를 대변한다. 뫼르소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를 만난다고 하는 이유다. 바보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감정을 독자들은 경험한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도 신앙과 구원의 유혹을 버린다. 기존의 관습과 규칙에 맞서는 모습은 부조리에 맞서는 이방인의 모습에 다름아니다.
★ 시시포스 신화
《시시포스 신화》는 에세이다. 이 작품은 반항하는 인간을 묘사한다. 세계가 합리성을 열망하는 인간과 비합리성으로 가득찬 세계 사이에 부조리가 존재하지만 인간은 돌을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반항한다. 카뮈는 결국 그것을 행복한 시시포스로 승화한다. 에세이 중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항상 그의 짐의 무게(시시포스의 바위)를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시시포스는 신들을 부정하며 바위를 들어올리는 한 차원 높은 성실성을 가르친다. 그 역시 만사가 다 잘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 돌의 부스러기 하나하나, 어둠 가득한 이 산의 광물적 광채 하나하나가 그 것만으로도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다. 산정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시포스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 힘들여 굴려 올려봐야 또다시 굴러떨어질 바위를 끊임없이 반복해 올리는 시시포스의 비극적인, 부조리한 세계에서 행복한 시시포스를 본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표현했다.
★ 페스트
이 소설은 평범한 도시 오랑에 어느 날 페스트라는 병마가 들이닥치면서 시작된다. 페스트 확산과 혼란, 절망의 틈바구니 속에 나타나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린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취재차 이곳에 들렀다가 페스트에 갇힌다. 페스트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가 폐쇄되자 랑베르는 연인이 기다리는 파리로 탈출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랑시민이 겪는 고통을 목도하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불행 사이에서 나타나는 부조리를 번뇌한다.
재앙에 직면한 사람들의 모습은 다양하게 그려진다. 이를 통해 카뮈는 절망과 맞서는 것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의지임을 강조한다. 또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깨닫게 해준다. ‘부조리 3부작’이라고 일컫는 이방인, 시시포스 신화, 페스트는 학창시절 꼭 시간을 내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다.
카뮈는 왜 ‘절친’ 사르트르와 갈라섰나
실존주의 문학의 거장인 알베르 카뮈와 장폴 사르트르는 왜 갈라섰나. 아주 친한 사이였던 프랑스의 두 지성은 이념의 시대였던 1950년대 맞부딪쳤다. 구체적으론 1952년 소련에 강제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카뮈는 공산주의를 맹렬하게 비판했고, 사르트르는 반공산주의 자체를 반대했다.
이들의 대립은 스위스 출신 철학자 에릭 베르네르가 1972년 쓴 ‘폭력에서 전체주의로’에서 잘 표현됐다. 저자에 따르면 폭력을 두고 의견이 극명하게 갈렸다. 카뮈는 진보를 위한 폭력과 혁명의 정당화를 거부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테러주의도 반대했다. 카뮈는 인간이 역사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혁명론자들의 생각은 현재를 무시하는 시도로 우상 숭배와 같다고 봤다. 인간의 비참함은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본질적인 조건이라고 본 ‘부조리론’을 강조했다. 자연상태를 긍정한 루소의 전통은 물론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라고 본 홉스의 생각도 일축했다.
반면 사르트르는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이기 때문에 ‘나’는 ‘우리’로 자발적으로 옮겨갈 수 없다는 홉스의 생각을 이어받았다. 결국 자연상태가 아닌 ‘사회상태’, 곧 정치적인 삶을 만들려면 ‘우리’를 강제할 수 있는 매개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는 개인들이 매개자에게 복종하는 것만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식의 ‘복종 계약’ 논리를 지지했으며, 전제주의도 긍정했다. 사르트르는 ‘전체성’과 진보적 폭력의 필요성을 중시한 셈이다. 카뮈의 말이 맞았을까. 공산주의는 결국 전체주의적 속성 때문에 몰락하고 말았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