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경제혈액 vs 소비장벽…저축은 '동전의 양면'
6·25전쟁의 상흔으로 폐허 속의 1950~60년대 대한민국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무상원조가 줄어들면서 자립으로 경제를 일궈야 한다는 절박감도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저축은 사회적 미덕이었고 1970~80년대 고속 성장의 디딤돌이었다. “국민 한 명이 하루 10원씩 저축하면 1000억원이 국가에 쌓인다”(박정희 대통령·1969년 저축의 날 기념식)는 말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당시 저축이 한국 경제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잘 함축한다.

국민경제에서 저축이란 일정 기간 번 돈에서 미래에 대비해 쓰지 않고 남긴 부분을 말한다. 가계가 남은 돈을 예금으로 적립해 두면 경제 순환에 도움이 된다. 기업이 외채에 의존하지 않고 투자와 생산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가 성숙해지면 금리가 하락하면서 저축의 유인이 약해지는 성향이 있다. 세금이나 보험·연금 등 사회부담금을 제외하고 가계가 쓸 수 있는 전체 소득(가처분소득)에서 저축이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하는 한국의 가계순저축률은 1988년 24.7%에서 지난해에는 3.4%로 크게 낮아졌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빚이 저축률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진단이 우세하지만 일부에선 확대되는 연금과 복지도 저축심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다. 한국의 지난해 가계저축률(3.4%)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3개국 평균(5.1%), 유로존 17개국 평균(7.2%)보다 훨씬 낮다. 저축률이 지나치게 하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물론 저축을 위해 소비를 무조건 줄이는 것도 경제 발전에 정답은 아니다. 지나친 소비 억제는 이른바 ‘돈맥경화’를 심화시켜 경제에 부담을 준다. 케인스가 ‘절약의 역설’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저축을 소비의 반대 개념보다 ‘마중물(펌프에 물이 나오도록 먼저 붓는 물)’로 보는 인식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난달 29일은 ‘저축의 날’이 만들어진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 발전에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던 ‘저축’은 의미가 많이 바뀌었다. 저축이 투자를 활성화하는 ‘경제 혈액’이 되지만 때로는 소비를 막는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이른바 ‘동전의 양면’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다. 소비와 저축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지혜가 필요한 셈이다. 4, 5면에서 각국의 저축 상황과 ‘저축의 역설’ 등 저축에 관한 다양한 이론 등을 상세히 살펴보자.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