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 동전의 양면이다. 개인적으론 미래의 안전판 역할을, 기업의 입장에선 투자를 촉진시키는 ‘경제혈액’의 역할을 하지만 때로는 소비를 막아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저축은 시대적 상황, 경제발전 정도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어느 경우에는 저축이 미덕으로 권장되지만, 또 다른 경우에는 소비가 경제성장의 원동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에서는 저축이 권장되고, 선진국에서는 소비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다. 연금 등 복지시스템도 저축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미래를 보장해줄수록 저축하려는 심리가 약해진다. 경제학에서도 때로 저축에 대한 상반된 주장이 충돌한다.
# 저축 권장하는'세이의 법칙'
우리나라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60~80년대에 저축은 절대적인 미덕이었다. 저축은 기업들이 외자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으로 자본을 충당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줬다. 미국의 무상원조 종료를 앞두고 저축으로 자립하자는 대국민운동은 1970~80년대 고속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1964년 ‘저축의 날’이 지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 주도 경제개발 시대에 막대한 정책적 투자자금이 필요했던 만큼 정부 차원에서 개인들의 저축을 장려한다는 취지였다.
이처럼 ‘저축이 좋다’는 논리는 이른바 ‘세이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세이의 법칙은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Jean Baptiste Say·1767~1832)가 처음으로 주장한 경제학 법칙으로 ‘생산에 참가한 생산요소는 똑같은 소득을 시장에 가져오며 생산물 수요가 소비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낳는다’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 골자다. 세이의 법칙을 저축에 적용해보면 자금의 공급증가는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저축이 늘어나면 기업들의 금융권 대출이 쉬워지고, 이를 통해 투자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변수가 많은 경제에서 저축이 늘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경제가 ‘투자-고용-소득증가-소비증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 저축 경계하는 '절약의 역설'
개인적·부분적으로는 성립하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잘 보이려고 발뒤꿈치를 들면 뒷사람 역시 뒤꿈치를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리만 아플 뿐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경우 등을 일컫는다. 경제학에서 대표적 구성의 오류는 바로 저축이다. 저축은 개인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저축의 역설(paradox of saving)’ 또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가 제기한 ‘저축의 역설’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부(富)를 축적하는 과정이 오히려 내수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저하시켜 경제를 총체적으로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예컨대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면 소비가 감소하고 총수요가 줄어든다. 총수요가 감소하면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하며 이에 따라 고용도 줄어든다. 이처럼 저축이 결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저축이 악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특히 경기불황일 때 더욱 심해진다. 경기가 불황일 때 정부가 신용카드 활성화 등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펴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마중물 vs 소비의 걸림돌
저축의 역설이 발생하는 핵심은 저축한 돈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저축의 역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학파 대부시장 이론에 의하면 저축한 모든 돈은 투자자금으로 전용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대부자금의 가격인 이자율의 조정이다. 즉 개인이 저축한 돈이 자금시장으로 흘러가면 공급이 늘어나고, 자금 공급이 늘어나면 이자율이 하락한다. 이자율 하락은 결국 금융비용을 낮춘다는 의미여서 기업의 투자는 촉진된다. 이런 이론이 성립하려면 저축이 늘어나면 임금과 가격이 하향조정되고, 물가하락으로 총수요가 증가해 생산이 늘어나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고전학파가 제시한 이런 전제조건이 항상 충족되는 건 아니어서 저축의 역설이 생겨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축은 경제·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자본’이라는 의미와 ‘소비의 걸림돌’이라는 양면성이 그것이다. 저축과 소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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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강조한 박제가…"우물물은 퍼쓰지 않으면 썩는다"
박제가(1750~1805)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다.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전통적인 양반 교육을 받았으나 신분 제약으로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봉건적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주창한 것도 그의 출생 배경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스승은 연암 박지원이다.
따라서 박제가는 누구보다도 국내 상업과 외국 무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의 사상도 당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도시 상공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기 실학, 이용후생학파와 시기를 같이한다.
그는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받아들여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공업 발전을 위해 국가는 수레를 쓸 수 있도록 길을 내고, 화폐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등의 중상주의적 국가관을 내세웠다. 북학의(北學議)는 그의 대표적 저서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비단을 입지 않으니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고, 그릇이 비뚤어지든 어떻든 간에 개의치 않으므로 예술의 교묘함을 알지 못하니 나라에 공장과 도야(陶冶·질그릇을 굽는 곳과 대장간)가 없어지고 기예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요한 소비가 부족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특히 “우물물은 퍼 쓸수록 맛이 있다”는 그의 이른바 ‘우물론’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소비임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말처럼 우물물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 퍼 쓰지 않으면 물이 고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재물(돈)도 이와 같다. 소비가 없는 생산은 상품 재고를 증가시키고 실업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경기침체와 공황을 야기한다.
# 저축 권장하는'세이의 법칙'
우리나라가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1960~80년대에 저축은 절대적인 미덕이었다. 저축은 기업들이 외자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적으로 자본을 충당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줬다. 미국의 무상원조 종료를 앞두고 저축으로 자립하자는 대국민운동은 1970~80년대 고속성장의 디딤돌이 됐다. 1964년 ‘저축의 날’이 지정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 주도 경제개발 시대에 막대한 정책적 투자자금이 필요했던 만큼 정부 차원에서 개인들의 저축을 장려한다는 취지였다.
이처럼 ‘저축이 좋다’는 논리는 이른바 ‘세이의 법칙’으로 설명된다. 세이의 법칙은 프랑스 경제학자 세이(Jean Baptiste Say·1767~1832)가 처음으로 주장한 경제학 법칙으로 ‘생산에 참가한 생산요소는 똑같은 소득을 시장에 가져오며 생산물 수요가 소비를 통해 발생하기 때문에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낳는다’로 요약된다. 한마디로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 골자다. 세이의 법칙을 저축에 적용해보면 자금의 공급증가는 수요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즉 저축이 늘어나면 기업들의 금융권 대출이 쉬워지고, 이를 통해 투자도 자연스럽게 증가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변수가 많은 경제에서 저축이 늘어난다고 해서 곧바로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경제가 ‘투자-고용-소득증가-소비증가’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고 장담하긴 어렵다.
# 저축 경계하는 '절약의 역설'
개인적·부분적으로는 성립하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성립하지 않는 경우를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잘 보이려고 발뒤꿈치를 들면 뒷사람 역시 뒤꿈치를 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리만 아플 뿐 별다른 효과가 없는 경우 등을 일컫는다. 경제학에서 대표적 구성의 오류는 바로 저축이다. 저축은 개인을 부유하게 만들지만 모든 사람이 저축만 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부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저축의 역설(paradox of saving)’ 또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바로 그것이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1883~1946)가 제기한 ‘저축의 역설’은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 부(富)를 축적하는 과정이 오히려 내수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저하시켜 경제를 총체적으로 불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예컨대 사람들이 저축을 늘리면 소비가 감소하고 총수요가 줄어든다. 총수요가 감소하면 기업은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하며 이에 따라 고용도 줄어든다. 이처럼 저축이 결국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저축이 악덕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특히 경기불황일 때 더욱 심해진다. 경기가 불황일 때 정부가 신용카드 활성화 등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펴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 마중물 vs 소비의 걸림돌
저축의 역설이 발생하는 핵심은 저축한 돈이 투자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학파 경제학에서는 저축의 역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전학파 대부시장 이론에 의하면 저축한 모든 돈은 투자자금으로 전용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리는 대부자금의 가격인 이자율의 조정이다. 즉 개인이 저축한 돈이 자금시장으로 흘러가면 공급이 늘어나고, 자금 공급이 늘어나면 이자율이 하락한다. 이자율 하락은 결국 금융비용을 낮춘다는 의미여서 기업의 투자는 촉진된다. 이런 이론이 성립하려면 저축이 늘어나면 임금과 가격이 하향조정되고, 물가하락으로 총수요가 증가해 생산이 늘어나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지만 고전학파가 제시한 이런 전제조건이 항상 충족되는 건 아니어서 저축의 역설이 생겨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저축은 경제·시대적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자본’이라는 의미와 ‘소비의 걸림돌’이라는 양면성이 그것이다. 저축과 소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동열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shin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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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 강조한 박제가…"우물물은 퍼쓰지 않으면 썩는다"
박제가(1750~1805)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실학자다.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전통적인 양반 교육을 받았으나 신분 제약으로 사회적 차별을 감수해야 했다. 봉건적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주창한 것도 그의 출생 배경과 연관이 깊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의 스승은 연암 박지원이다.
따라서 박제가는 누구보다도 국내 상업과 외국 무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의 사상도 당시 새로운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던 도시 상공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중기 실학, 이용후생학파와 시기를 같이한다.
그는 청나라의 선진적인 문물을 받아들여 상공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공업 발전을 위해 국가는 수레를 쓸 수 있도록 길을 내고, 화폐 사용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등의 중상주의적 국가관을 내세웠다. 북학의(北學議)는 그의 대표적 저서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비단을 입지 않으니 나라에 비단 짜는 사람이 없고, 그릇이 비뚤어지든 어떻든 간에 개의치 않으므로 예술의 교묘함을 알지 못하니 나라에 공장과 도야(陶冶·질그릇을 굽는 곳과 대장간)가 없어지고 기예도 없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요한 소비가 부족함으로써 생기는 경제적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특히 “우물물은 퍼 쓸수록 맛이 있다”는 그의 이른바 ‘우물론’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소비임을 강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말처럼 우물물을 일정한 속도로 계속 퍼 쓰지 않으면 물이 고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썩게 마련이다. 재물(돈)도 이와 같다. 소비가 없는 생산은 상품 재고를 증가시키고 실업을 일으켜 궁극적으로 경기침체와 공황을 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