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비관론 "석유 고갈"  vs  낙관론 "대체에너지 등장"
‘석유가 고갈돼 인류는 망할 것이다.’ ‘석유는 고갈되지 않으며 인류는 진보할 것이다.’ 지구 에너지와 인류문명을 바라보는 비관론자와 낙관론자의 시각은 정반대다. 만일 대학입시 논술이나 면접 때 이와 연관된 질문이 나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우리는 대개 비관론자 쪽에 기울어 있다. “자원은 고갈될 것이다. 환경은 악화된다. 따라서 인류의 운명은 풍전등화다.” 석유 고갈론을 너무 자주 들어온 탓에 인식구조는 이렇게 굳어 있다. 이 흐름은 상식일까, 편견일까. 에너지 비관론과 낙관론을 좇아가보면서 논리를 갖춰보자.

#중국 등 산업화…석유 부족?

석유 고갈론은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이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수백만년 전에 죽은 식물과 플랑크톤이 분해돼 만들어졌다. 화석연료라고 부르는 이유다. 석탄은 대개 3억~4억년 전에 살다가 죽은 식물이 이탄으로 변화됐다가 높은 압력과 온도로 인해 습기가 빠져나간 결과물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주로 약 200만~1억4000만년 전에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은 플랑크톤으로 구성돼 있다. 역시 높은 압력과 온도가 도왔다.

비관론자들은 말한다. “수백만년에 걸쳐 만들어진 석탄, 석유, 천연가스는 장기적으로 우리가 다 쓰고 미래 세대엔 남지 않을 것이며 인구 16억명을 가진 중국이 미국 수준으로 산업화되면 석유는 모자라고 결국 지구에 매장돼 있는 것을 모조리 파내게 될 것이다.” 여기에다 인도, 브라질, 러시아, 아프리카까지 경제성장으로 석유를 많이 쓰게 된다면 석유는 구하기조차 힘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1769년 와트가 증기엔진을 발명한 이후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써왔기 때문에 에너지 위기는 피할 수 없다는 점도 이들은 덧붙인다.

이들은 지구가 둥근데서도 고갈론의 근거를 찾는다. 지구가 무한대로 평평하지 않은 만큼 지구가 품을 수 있는 자원의 양에도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자원 일부를 사용하면 다음 해에는 적은 양의 자원이 남게 될 것이며, 그 결과 소비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는 논리구조다. 1972년 지구촌의 위기를 경고한 로마클럽의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인류가 ‘지금’(당시)과 같은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한 인류 문명은 100년밖에 존속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1992년 발간된 개정판 ‘성장의 한계를 넘어서’는 구체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가 각각 2031년과 2050년에 고갈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가스소비량이 20년마다 두 배씩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한 분석이다.

#석기시대 종말이 돌이 없어서?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비관론자여, 그대들은 바보네”라고 질타한다. 이들은 한 가지 비유를 든다. “석기시대가 종말을 맞은 것은 돌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언젠가는 석유의 시대도 종말을 고하겠지만, 그것이 석유가 부족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쓴 비외른 롬보르는 “인류가 석기 사용을 중단한 것은 청동과 철이 더 뛰어난 재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에너지 기술이 더 나은 혜택을 줄 수 있다면 석유 사용은 중단될 것”이라고 논박했다.

문제는 다른 에너지 기술과 다른 에너지를 발견하느냐 혹은 생산해낼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인류의 에너지 역사를 짚어 보면 흐름을 인지할 수 있다. 처음엔 순수 노동력을 핵심 에너지로 썼다. 산업혁명에선 석탄이었다. 하지만 고갈될 것 같던 석탄은 가스와 석유에 밀렸다. 석탄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수 천미터 깊이에서 석유와 가스를 파낼 인류의 기술과 지식이 20세기에 축적된 결과였다. 석탄은 매장된 상태로 밀려났다. 석유가 운송, 저장, 사용 면에서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격과 비용, 효율의 문제였다.

#석유고갈전 대체에너지

석유는 위기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해보자. 비관론자의 주장대로 석유는 점점 희귀해지고 있는 걸까. 희귀해지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려면 가격추이를 보면 된다. 희귀해지면 공급이 줄고 수요는 늘어 가격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석유가 등장했다는 1870년대부터 2020년까지 가격과 생산량 분석 및 예측그래프(미국 에너지정보국 발표)를 보면 생산량은 계속 늘었고, 가격면에선 등락이 있긴 했으나 급격한 상승추세는 없었다. 생산량을 정치적으로 조절한 1973년 오일쇼크(중동 국가들의 담합) 이후 7년간만 예외였다.

석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는 점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인간의 지식, 기술, 독창성이 석유를 아예 밀어낼 수도 있다고 본다. 이들은 ‘냉장고에 3일치 음식만 있다고 해서 4일 뒤에 굶어죽겠네’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류 문명진화를 얕보는 것이라고 여긴다. 시추와 탐사기술 발전으로 석유의 10분의 1 가격인 셰일가스를 캐내기 시작하면서 석유대체 에너지로 급부상한 것만 봐도 그렇다. 또 머지 않아 원자력보다 더 좋고 안전한 에너지를 인류가 개발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석유는 고갈되기 전에 더이상 안쓰는 에너지로 전락할 수 있다.


북한에 민둥산이 많은 게 에너지 때문이라고?

[Cover Story] 비관론 "석유 고갈"  vs  낙관론 "대체에너지 등장"
가난한 나라의 산이 푸를까, 산업화된 나라의 산이 푸를까? 이 질문은 에너지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고전적인 물음 중 하나다. 정답은 ‘산업화된 나라의 산이 푸르다’다.

왜 그럴까? “가난한 나라는 나무를 많이 심지 않아서 그렇고, 산업화된 나라는 식목을 잘해서 그렇습니다.” 그럴 듯한 대답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가난한 나라는 나무를 땔감으로 써 나무가 자랄 틈이 없지만, 잘 사는 나라는 나무 대신 다른 에너지원을 쓰기 때문에 산이 살아남을 수 있어 그렇습니다.” 100점짜리다. 아무리 식목을 잘해도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한 민둥산을 면할 길이 없다. 북한과 우리나라를 비교하면 딱 떨어진다. 북한의 산은 민둥산인 반면 우리나라 산은 울창하다. 에너지 자립 여부가 북한과 우리나라 산의 운명을 갈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옛날 외국 선교사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면 우리나라 산도 벌거숭이었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실천, 민둥산에서 벗어났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은 식목일에 대대적으로 나무를 심는 정책을 실시한 동시에 석탄, 연탄, 전기 등의 에너지원을 발전시켰다. 경제성장과 함께 연탄이 보급됐고, 이어 전기가 가정에 들어갔다. 나무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떨어뜨렸다. 북한도 우리나라를 따라 하면 된다. 하지만 북한은 경제성장 한계에다 거의 모든 자원을 군사력 증강에 써 땔감을 대체할 석탄은 물론 전기조차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